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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ㅣ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 영문판) 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늙어 버렸지만, 그의 두 눈만은 바다색과 꼭 닮아 활기와 불굴의 의지로 빛났다.
책의 표지에도 있고, 소설의 도입부에도 나오는 노인에 대한 묘사이다. 너무나 유명해서 누구나 읽었던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작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으면서 이 대목에 이르러 거울을 바라본다. 내 '눈'이 먼저 나와 '아이 컨택'을 시도한다. 바다색은 아닐지라도 나의 두 눈은 과연 '활기와 불굴의 의지'로 빛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니체는 "그대의 운명이 평탄하기를 바라지 말고 가혹할 것을 바라라"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초인'이 '고난을 견디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난을 사랑하며 오히려 고난이 찾아오기를 촉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노인과 바다]의 제목은 [초인과 바다]라고 바꿔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84일간이나 고기를 낚지 못한 노인이 홀로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청새치와 한 판 사투를 벌이는 과정은 가혹하다. 그토록 어렵게 잡은 물고기를 상어가 공격하려하자 노인은 "좋은 일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 법"이라며 이번에는 상어와의 일전을 준비한다. 가까스로 첫번째 상어의 공격을 막어낸 노인은 "인간은 패배하는 존재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하지는 않지.(118쪽)" 라고 혼잣말로 읊조리며 아직 끝나지 않은 상어떼의 공격에 대비한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어도 패하지는 않는다.'
남자라면 누구나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할 이 문장이 이 짧은 소설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거대한 자연 앞에, 운명 앞에 부서질망정 절대 좌절해서는 안된다는 인간의 각오가 묻어난다. 그런데 그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약한가. 팔씨름에 관한한 한 때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었던 강인한 어부는 이제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받는 '운이 다해 버린 노인'이 되었다. 그의 말상대는 다섯 살때부터 노인과 함께 배를 탄 소년 뿐이다. 그러나 그 소년도 부모의 만류로 다른 어부의 배를 타게되고 드넓은 바다에서 노인은 혼자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애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는 노인의 말에서 외로움이 뚝뚝 떨어진다. 인간이란 이렇게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비겁해지기 쉽다. 그렇지만 노인은 당당히 운명과 맞섬으로써 역경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스스로 뇌까린 '인간은 파괴될 수 있어도 패하지는 않는다.'는 신념을 지켰던 것이다.
상어떼에게 고기를 다 빼앗기고 지친 몸으로 자신의 움막으로 돌아와 아무런 원망도 한탄도 없이 초라한 침대에 누웠을 때 노인은 심정은 어떠했을지 상상해 본다. 편안하지 않았을까? 최선을 다해 온 몸을 던진 사람은 승리와 패배로 규정되지 않는다. 하나의 일상일 뿐이다. 다음 날, 잠에서 깬 노인과 소년의 대화가 특히 감동적인 까닭은, 둘의 대화가 승리(청새치를 잡은 것)의 축하나 실패(상어떼에게 청새치를 빼앗긴 것)에 대한 위로 따위가 아니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과 다름 없이 다음 출어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기 때문이다. 삶은 그렇게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니 별나게 요란떨 필요 없다.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안다. 노인 앞에서 담담한 소년이 노인의 움막을 오가면서 엉엉 울었던 처럼...
p.s. 접어 둔 페이지
노인은 말했다. "너 때문에 이것을 먹는단다." 노인은 순간 물속에 있는 저 물고기에게도 이것을 좀 먹였으면, 노인은 생각했다. 형제니까 말이야. 하지만 나는 그 물고기를 죽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만 해. 67쪽
이 물고기를 쓰다듬어 보고 싶다, 노인은 생각했다. 이 물고기는 내 재산이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만져 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물고기의 심장은 작살을 꽂을 때 이미 느꼈다. 두 번째 작살 자루를 박아 넣을 때 말이다. 자, 이제 끌어들여서 비끄러매자. 저놈을 배에 비끄러맬 수 있도록 꼬리와 허리에 올가미를 하나씩 걸어야 한다. 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