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여신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신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난 아테네 여신을 꼽을 수 밖에 없다. 지혜·전쟁·직물·요리·도기·문명의 여신으로 로마에서는 미네르바로 통하는 아테네는 제우스와 메티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투구, 갑옷, 창, 아이기스 방패(메두사의 머리가 달린 방패), 올빼미, 뱀이 대표적 상징물이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그녀의 집인데, 이 신전은 건축사적으로도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여신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페르세우스, 오디세우스, 이아손, 헤라클레스 같은 영웅들을 도우며 그들을 수호하고 승리를 안겨주는 신이기 때문이다. 아테네 여신이 없었던들 우리가 지금 어떻게 영웅들의 고난극복과 활약상을 맘편히 보고 즐길 수 있겠는가.

 

뭐 다른 신이나 영웅들도 그렇지만 아테네 여신도 출생부터 범상치 않았다. 오늘 아테네 여신으로 말머리를 잡은 것은 그 출생과정 때문이다. 제우스는 장차 자신과 메티스 사이에서 태어날 아들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가이아의 신탁을 듣고 아버지 크로노스가 자신과 형제들을 집어 삼킨것처럼 임신한 메티스를 꿀꺽 삼켜버렸다. 이때 제우스는 일을 쉽게 하기 위해 자신은 개구리로 메티스는 파리로 변신을 시켰다고 한다. 몇달 후 두통에 시달리던 제우스, 손재주꾼 헤파이스토스는 두통의 원인을 캐기 위해 제우스의 머리를 도끼로 쪼갠다. 짜~잔, 갑옷으로 완전무장한 미모의 여성이 칼을 손에 들고 튀어나왔는데 이 여성이 바로 아테네 여신이었다는 것이다.

 

역시 신들의 세계라 그런지 우리의 상상을 넘는다. 머리가 아프다고 도끼로 머리를 쪼개다니... 바꾸어 말하면 두통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뚜껑을 열었다'는 이야긴데, 그런 장면이 하나 떠오른다. [양들의 침묵]의 속편인 [한니발]에서 식인을 즐기던 렉터 박사가 영화 끝물 무렵 레이 리요타의 머리뚜껑을 따고 '뇌'를 먹는 장면 말이다. 레이 리요타는 무슨 약에 취했는지 렉터가 자기 뇌를 먹는데도 눈을 껌벅껌벅 하면서 횡설수설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오늘 볼 포스터는 바로 '뚜껑열린 머리 스타일(open head style)'이다. 근데 생각보다 그리 끔찍하지 않으니 미리 겁먹지 마시길.

 

 

 

 

[전자 두뇌 인간, 1983]

 

 

 

도끼는 아니고 예리한 외과 수술용 메스로 처리했을 것 같다. '뚜껑'이 열렸는데 고통스럽기는 커녕 스티브 마틴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과의사 스티브 마틴, 나사마개와 집록식 뇌 수술법을 개발했으니 그를 믿으세요. 통증 걱정 끝~'이라고 광고하는 병원 전단지 같지 않은가. 영화 줄거리가 궁금하다. 

 

아름답지만 사악한 여인 돌로레스(캐서린 터너 분)는 세계 최고의 두뇌 이식 전문가인 마이클(스티브 마틴 분)의 차에 들이받히게 된다. 마이클은 그녀를 치료해 주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신혼 여행을 겸해서 비엔나로 학술 강연을 가는데 이곳에서 계속해서 엘리베이터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끔찍한 것은 살해된 시체의 뇌가 도난되는 것이다. 그곳의 두뇌 전문의인 네세시터가 마이클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뇌를 훔친 사람은 바로 네세시터임이 밝혀지는데, 그가 만든 주사약을 이용하면 몸은 죽지만 뇌를 죽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마이클은 그곳에서 앤이라는 이름의 여자 뇌와 텔레파시로 대화를 하면서 돌로레스에게 없는 정신적인 평화와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앤이 얼마 못살게 된다는 얘기를 들은 마이클은 두뇌만 있는 앤을 이식할 여자를 찾으러 다닌다. 한편 마이클이 뇌와 사랑에 빠진 것을 안 돌로레스는 분노를 느끼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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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의 상상력이란... 코미디 배우 스티브 마틴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기대되긴 하지만 글쎄, 그닥 보고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붉은 해적단, 1983]

 

 

 

무수히 많은 해적 영화가 있지만 [캐리비언의 해적]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성공한 경우가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문게 사실이다. 이 영화도 그러저러한 해적 영화 중에 하나인데 포스터 만큼은 무척 인상적이다. 노란 수염의 '뚜껑'을 열었더니 무려 12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각자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잘려나간 '뚜껑'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고 멀리 해적선(?) 한 척이 항해를 하고 있다. 온갖 잡스러운 생각의 원천인 '머리'를 별의별 사건이 다 일어나는 '세상'과 갖지 않느냐고 운을 떼는 것 같다. 코미디 영화가 분명할 것 같은 이 영화의 줄거리를 찾아 보았다.

 

모두가 무서워하는 해적 옐로비어드(그레엄 채프먼 분)는 영국군에게 잡혀 20년의 징역살이를 한다. 그러나 영국군들의 생각과는 달리 옐로비어드가 20년 후에도 말짱하자 영국군은 140년 연장을 명령한다. 20년을 참고 살아온 옐로비어드의 분노가 폭발, 그는 감옥에서 뛰쳐 나온다. 그는 감춰둔 보물을 찾기위해 애를 쓰는데 그를 추격하는 영국 군인들에 의해 그의 아들이 잡히게 되어 노예로 끌려간다. 배에 잠입한 옐로비어드의 숨은 도움 때문에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의 아들을 대장으로 추대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의 부인을 협박하여 뒤쫓아온 영국군에게 보물들이 넘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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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크리스찬, 1970]

 

 

 

코미디의 대가 피터 셀러스와 비틀스 멤버 출신 링고 스타가 함께 공연한 [매직 크리스찬]의 포스터에도 '뚜껑'열린 머리가 나온다. 우연인지 몰라도 [옐로우비어드]에도 출연했던 존 클리즈, 그레이엄 채프만이 이 영화에도 출연했다.  제우스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는 아테네 여신이 모습이 저랬을까?

 

 

 

 

[브라질(여인의 음모), 1985]

 

 

 

 

가상현실을 다룬 테리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은 국내에서는 [여인의 음모]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로버트 드니로, 조나단 프라이스 출연했다. 여기서는 뚜껑이 아예 날아가 버렸는지 보이지 않고 머리 안에서 일본식 무사와 날개를 단 용사가 솟구쳐 나오는데 표정은 천연덕스럽다. '이것은 단지 마음 상태'라는 카피가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포스터와 달리 상당히 묵직한 메세지를 전한다.

 

모든 것이 문서화되어 통제되는 시공간이 애매한 어느 도시, 인간미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회색빛 건물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일거수 일투족까지 감시하는 권력과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개인. 말단 관리 샘(조나단 프라이스 분)의 무기력한 삶 속에서 유일한 판타지는 바로 상상 속에서 펼쳐진다. 그가 상상하는 꿈 속에서는 자신은 무적의 수퍼히어로가 되서 무시무시한 악당으로부터 미녀와 세상을 구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단지 상상일 뿐이었을까? 전체주의 사회에서 놓여진 개인의 저항을 시니컬하면서도 통렬하게 풍자한 수작, [브라질]이었다.

 

 

 

 

[달 위의 아마존 여인, 1987]

 

 

 

 

제목이 1964년 영화 [first man in the moon]과 유사한 이 영화는 미국의 저예산 영화나 TV 심야프로그램에 대한 인정사정 없는 패러디 영화이다. 조 단테, 존 랜디스 등 5명의 감독이 참여했고 낯익은 배우 미셸 페이퍼, 로잔나 아퀘트, 스티브 쿠텐버그, 캐리 피셔 등의 이름도 보인다. 흑백 텔레비전 시대의 다양한 캐릭터가 역시 투명인간 캐릭터처럼 보이는 머리 안에서 빡빡하게 비집고 나오고 있는 포스터 처럼 영화 역시 여러 에피소드들이 광고, 토크쇼, 단막극 등의 형태로 어지럽게 왔다갔다 한다. "염치없는!(shameless!)"이라는 평가가 딱 어울리는 영화다.

 

 

지금까지 다소 끔찍한(?) '절개된 머리' 또는 '뚜껑열린 머리'를 활용한 영화 포스터 몇 가지를 보았다. 문자의 느낌과 달리 하나같이 다소 황당하지만 유쾌한 코미디나 판타지 영화라서 다행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서두에 소개한 아테네 여신의 탄생 신화 역시 얼마나 황당한가. 그러나 이미 주지하다시피 그런 신화로부터 우리는 무수한 상상력의 원천을 제공받는다. 소설가이자 신화 전문가 고 이윤기 선생은,

 

"우리 정신을 드높이는 데  필요한 건 상상력이다. 신화가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이 상상력의 있고 없음에 따라, 가멸한지 가난한지에 따라 피흘리며 괴물과 싸우는 영웅의 자리와 손뼉치며 환호하는 구경꾼의 자리가 갈린다."

 

고 말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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