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길 스타일(road style)' 포스터를 살펴보면서 마지막에 '이정표'를 언급했었다. 인생에 이정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할 때 적재적소에서 '이리로 가세요', '저리로 가면 행복이 나옵니다.'는 식으로 알려준다면 인생 참 편할것 같긴 하다.
영화 포스터에 이정표가 적지 않게 보이는 이유가 혹시 "갈팡질팡하는 현대인들의 방향상실에 대한 보상심리를 상업적으로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주제는 '이정표 스타일(milestone style)'이다.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1989]
이 영화, 보고싶은 영화다. 영화는 1964년에 발표된 휴버트 셀비 주니어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소설이 발표되자 타임지와 뉴스위크지는 각각 "최고로 추잡한 쓰레기 소설", "현대 미국의 모습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내놓으면서 논쟁의 중심에 섰다고 한다. 결국 버트란트 러셀, 사무엘 베켓과 같은 거물들이 "근래 출간된 가장 중요한 책"으로 정리를 하고 나서야 미국내 논쟁이 일단락 되었는데 이후 영국 등 외국에서 출판될 때마다 엇비슷한 논란이 있었을 정도로 문제적 소설이었다. 영화 역시 개봉 당시 상당한 화제를 일으켰다고 하니 도대체 어떤 영환지 궁금하다.
제목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출구'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비상구는 건물이나 열차 같은 곳에서 말 그대로 화재나 테러 등 비상시에 이용하는 출구니까. 브룩클린은 뉴욕의 네 구역 중 한 곳으로 당시 뉴욕에서도 가장 위험한 우범지역이었다고 하니, 영화의 제목을 제대로 해석하자면 우범지역 '브룩클린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진입로' 쯤 될 것 같다. 포스터 속 표지판은 실제로 존 에프 케네디 공항과 브룩클린 중간 지점에 있는 고속도로 출구 표지판이었다고 한다. 당시 표지판을 그대로 활용해서 영화의 '타이틀'을 표현한 것이다.
또 하나 포스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성경 구절이다. "I will arise now, and go about the city; I will seek him whom my soul loves. I sought him, but found him not.(Solomon 3:2)" 한글 성경을 찾아보았다.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아가 3장 2절)"
영화는 제목도 그렇고 인용된 성경구절도 그렇고 역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왜 국내에서는 '출구'나 '진입로'가 아니라 '비상구'라는 제목을 붙혔을까? 계속 제목을 읽어보니 '비상구'로 읽는 것이 비장미도 있고 오히려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비상구(또는 출구)'가 없다면 어떨까? 포스터에는 소요를 일으키는 군중과 진압하는 경찰의 모습을 배경으로 트랄라 역을 맡았던 제니퍼 제이슨 리의 무표정한 얼굴이 보인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이 혹시 아이스크림?

[팔로우 댓 버드, 1985]

[머펫 무비, 1979]
미국의 인기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로 명성을 얻은 짐 헨슨이 실사 영화 두편의 포스터를 보고 있다. 우선 첫번째 영화는 올해로 제작 30주년을 맞은 [팔로우 댓 버드]이다. 1985년에 제작된 뮤지컬 코미디 모험 영화이자 로드무비다. 인형들과 배우들이 연기하는 다양한 '세서미 스트리트'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짐 헨슨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개봉한 '머펫 영화'로 알려져 있다. 포스터는 이정표 모양의 표지판에 제목을 박아 놓은 것이 재밌다. 마치 갈림길에서 이리로 갈지 저리로 갈지 헷갈리다면 고민말고 '저 새를 따라가라'고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것 같다.
두번째 영화는 최초의 머펫 영화인 [머펫 무비]이다. 역시 로드무비의 외형을 갖고 있다. '머펫'이란 '마리오네트'와 '퍼펫'이라는 두 단어를 합성시켜 만든 단어인데 이 영화에는 '커밋 더 프로그', '미스 피기' 등의 머펫들이 등장한다. 헨슨의 머펫들은 고무, 플라스틱, 천 등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팔로우 댓 버드]의 '빅 버드'처럼 사람이 머펫 복장을 하고 연기하는 것도 있지만 '커밋 더 프로그', '미스 피기' 등 대부분 손가락으로 조종하는 꼭두각시 캐릭터들이다. 이 영화 포스터에는 '헐리우드까지 114마일'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 친구들 헐리우드로 가서 뭘 하려는 걸까?
짐 헨슨(1936.9.24~1990.5.16)
미국의 인형극가로 본명은 제임스 모리 "짐" 헨슨이다. '머펫'(Muppet)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꼭두각시 인형들을 고안해 텔레비전과 영화에 등장시켰다.1969년 머펫들을 등장시킨 아동용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가 방영되기 시작하자, 헨슨과 인간을 닮은 그의 동물 인형들은 전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편 1976년 영국에서 제작된 '머펫 쇼'가 100여 개 국가에서 방송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았다. 이에 힘입어 [머펫 무비,1979]·[위대한 머펫 케이퍼,1981]·[머펫들 맨해튼을 차지하다,1984] 같은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1990년 5월 16일 황농성연쇄상구균 감염으로 숨을 거두었다.
다음 백과 및 한국어 위키백과 참고

[홍키 통키 프리웨이, 1981]
[부서진 세월], [미드나잇 카우보이], [마라톤 맨], [퍼시픽 하이츠] 같은 범상치 않은 영화들을 만들었던 존 슐레진저 감독의 코미디 영화다. 영화 자체 보다는 포스터가 멋진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 제목 'Honky Tonk'는 '야한 싸구려 카바레', '사기 흥행사'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교량이 파괴되어 고속도로는 막혀 있고, 트럭 한대가 부서진 교량을 건너뛰기 위해 점프를 하고 있다. 아이 방 벽지처럼 푸른 하늘에 구름이 뭉게 뭉게, 커다란 코뿔소 한마리가 난데 없이 이정표를 들이받아 어디론가 내달리는 그림이다. 다리는 끊어지고 길은 막혔으며 이정표 또한 사라진 고속도로, 상황은 절망적일 것 같은데 분위기는 유쾌하기 그지 없다.

[도날드 덕 : Donald's Better Self, 1938]
마지막으로 보고 있는 것은 월트 디즈니의 고전 영화 중 한편이다. [Donald's Better Self]는 8분 분량의 단편인데 지금은 사라진 R.K.O. 영화사에서 배급했다. 내용은 이렇다. 도날드 덕의 내면에 있는 '선'은 도날드가 학교에 늦지 않게 하려고 빨리 잠에서 깨라고 하지만 또다른 한 축인 '악'이 아무 상관없으니 계속 자라고 유혹한다. 갈등하던 도날드는 결국 선한 양심의 승리로 학교에 가게 된다.
영화 포스터는 이 간단한 스토리를 일목 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도날드를 가운데 두고 뿔과 뾰족한 꼬리를 가진 '악'한 자아와 날개와 후광을 가진 '선'한 자아가 각자 자신들의 수단으로 도날드를 설득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 뒤에 서있는 이정표는 내용이 없다. 단지 '선'이 가리키는 쪽의 이정표는 밝게, '악'이 지시하는 이정표는 어둡게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마지막 영화 포스터에서 보는 것처럼 이정표가 있다 하더라도 '선택'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게 인생인 것 같다. 결국 도로에서건 삶에서건 상황과 조건은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 출구로 빠질 것인지 직진할 것인지, 왼쪽으로 갈 것인지 오른쪽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먼출 것인지 지금 여기에서의 선택이 다소 어렵고 힘들지만, 옳은 선택을 위해 지금 이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좀 더 수월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