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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자칼의 날 1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강혜정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7월
평점 :
1993년에 영화 [클리프행어]가 국내에 개봉했을때 누구에게라도 뒤질세라 극장으로 달려갔었다. 영화는 말 그대로 쫄깃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두시간 남짓 적지않은 시간을 나의 온 신경과 시선을 빼앗았다. 시원한 극장에서 시야 가득 설원을 배경으로 통쾌한 액션을 보는 재미에 6월 무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나중에 영화제목 'Cliffhanger'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명사로서 두가지 의미가 설명되어 있다. 첫번째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사건'이라는 의미와 두번째 '매회 아슬아슬한 장면에서 끝나는 텔레비전 드라마'라는 뜻이 있다고 설명한다. 단순히 단어를 해부해서 '벼랑에 매달려 있는 사람' 쯤으로 이해한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하긴 맨손으로 벼랑에 매달려 있으면 손에 땀 좀 나긴 날 것이다.
벼랑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사건하면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바로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1971년 소설 [자칼의 날] 이다. 이 흥미진진한 소설을 거의 20년 전에 읽었었다. 이후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동명의 영화도 정말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최근 작가가 실제로 첩보활동을 했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이 소설을 다시 읽기로 마음 먹었다가 이제야 읽었다. 20년 전 읽었던 책은 단권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 것은 국일미디어에서 출간한 2권 짜리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암살 미수 사건을 소재로 베일에 싸인 암살범 '자칼'과 그를 쫒는 베테랑 형사의 추격전을 다루었다. 시작은 이렇다.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 프랑스는 식민지 알제리 문제로 국론이 분열되어 있었다. 알제리 독립을 위해 투쟁하던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의 저항을 억제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정계에 다시 등장한 샤를 드골은 1957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하고, 1962년 4월에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골치아픈 알제리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다는 찬사 이면에 이런 조치에 배신감을 느낀 군부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내 극우주의자들은 비밀결사조직 OAS를 결성하고 드골 암살계획을 세운다. 여섯 차례나 시도한 암살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암호명 외에 어떤 실체도 드러나지 않은 최고의 전문 암살꾼을 고용하기로 결정한다.
30대 후반의 건장하고 잘생긴 암살자 '자칼'은 모든 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혼자 움직인다. 치밀함, 무기에 관한 해박한 지식, 뛰어난 변장술, 무엇보다도 어떤 순간에도 냉정을 잃지 않는 침착함으로 사상 최대의 '표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자칼'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심장이 오므라들것 같다. 작가는 무기, 프랑스 정부 조직, 형사들의 습성 등 소설 속 세상에 대한 사실적이고 디테일한 묘사와 함께 빠른 전개를 통해 흡입력을 높이고 있다. 또한 '악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으면서도 '1:프랑스 정부'라는 불균형한 대결구도를 설정함으로써 오히려 악인에게 동화되는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효과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드골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없으니 '자칼'의 계획은 실패할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역시 작가가 창조한 뛰어난 캐릭터의 힘이 아닐까.
오랜만에 다시 읽은 [자칼의 날], 역시 명불허전이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양 손을 흥건하게 적신 땀, 벼랑에 매달려 있다가 이제야 벗어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