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26년 동안이나 고향집 책장에 꽂혀 있던 책,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민예사에서 1991년에 재판 발행되었던 책이니 내가 고등학교 어느 때 우리 집에 온 책이다. 책 위에 형의 막도장이 찍혀 있는 걸로 봐서 형이 대학에 들어가서 산 책이리라. 당시 공대에 다니던 형은 문예학회에서 꽤 열심히 활동했던 걸로 기억된다.

 

얼마전 고향집에 방문했을 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하두 오래 봐왔던 책이긴 한데 읽었었는지 여부가 불분명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내용을 어렴풋이 알고있었던 것이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읽었던 것이건 아니건 그게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일단 돌아오는 짐속에 책을 넣어왔다. 그리고 틈틈히 읽으면서 '이 구절이 여기에 나왔던 것이었구나!' 하는 탄식을 하며 읽은 책이다.

 

'카인과 아벨'의 은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는 대목에서는 '두번째 스무살'이 한참 지난 지금에도 가슴을 크게 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두개의 세계'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싱클레어를 통해 우리 모두의 자아가 투영된 듯한 생각마저 하게 되는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 한다.'

p. 105~106

 

이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책갈피 속에 끼워둔 쪽지에 써있던 글귀다. 이 글귀를 읽은 싱클레어는 '내 가슴은 심한 추위를 만난 듯 운명 앞에 움츠려들었다'고 심정을 밝힌다. 알이 스스로 깨지면 아름다운 새가 되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되면 '달걀후라이'가 될 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생각난다.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가 47세가 되던 해인 1919년에 나온 책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지만 헤세의 어릴적 추억이 깃든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데미안] 뿐 아니라, [수레바퀴 아래서], [청춘은 아름다워라], [지와 사랑(나르찌스와 골드문트)] 등 그의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가히 청춘의 멘토라 칭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청춘의 고뇌를 많이 다루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데미안] 열풍이 대단했다고 하는데 싱클레어로 투영된 대한민국의 청춘들의 자화상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전통과 관습에 매몰된 우리들의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 지금이라도 나를 억압하고 발돋움을 가로막는 모든 낡은 세계를 깨 보자고 응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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