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가족이 가장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가 '복면가왕'이다. 노래 좀 한다하는 사람들이 서로 경연을 벌이는 흔한 컨셉의 음악방송인데 특이하게 얼굴을 가리고 노래한다. 패널들이 복면 뒤에 숨겨진 가수가 누군지 추측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복면을 벗었을때 의외의 인물이 등장하면 '저 친구가 저렇게 노래를 잘했어'하는 감탄사가 나오기도 해서 반전의 묘미도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미덕은 유명세나 외모가 아닌 진정한 노래 실력만으로 평가한다는데 있다. 잘생기고 춤만 출줄 아는 '아이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을 울리는 가창력을 마음껏 뽐내는 것을 보고 이제껏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느끼기도 한다.
가면(복면)은 사전적 의미로 '얼굴 형상으로 만들어 변장이나 방호를 위해 사용하는 조형물'이다. 머리 전체를 감싸거나 온몸을 가릴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보통 공연에서 활용되는 가면은 풍자극이나 역할극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주로 신분을 표시하거나 감추기 위해서 사용한다. 현실에서는 못된 짓을 할때 자기의 신분을 감추기 위하거나 아이들 놀이용으로 쓰여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좀 더 구체적인 것은 아래 다음 백과사전을 참조하자.
가면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랜 기원을 지닌 주술적·종교적·예술적 표현물로서, 원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왔다. 가면의 재료로는 목재·금속·돌·종이·찰흙·가죽·모피·뼈·천·잎·줄기·깃털·조개·상아·산호 등 거의 모든 자연물이 사용되며, 보석이나 헝겊조각 등으로 장식을 하기도 한다.
초자연적 존재, 인간, 사자, 동물 등 여러 가지 대상을 표현하는 가면은 그 사회적 역할 또한 다채로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성인식·제사·풍년기원·의료·장례 등의 종교의식을 주관하는 상징적인 존재의 역할이다. 그밖에도 호부·장식·호신용 수단·장난감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며 연극이나 무용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면의 본질적 기능은 표정을 바꾸는 데 있다. 인간은 스스로가 단순한 자연물로 그치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내면에 어떤 초월적 대상을 느끼고자 한다. 가면은 이처럼 모순된 이중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그 상징적 대상과 인간 사이를 잇는 매체역할을 해왔다.
Daum 백과사전
포스터좀 보자. 물론 오늘의 주제는 '가면 스타일(mask style)'이다.
[마를레네, 1984]의 포스터
우리 아버지 세대의 올드팬에게는 너무나도 유명한 독일 태생의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1901. 12. 27. – 1992. 5. 6.)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의 포스터다. 마를레네는 베를린에서 출생하여 캬바레 가수, 합창단원과 영화의 엑스트라를 거쳐, 1920년대 베를린에서 유성영화 초기의 작품 [슬픔의 천사]로 각광을 받아, 미국으로 갔다. 1930년대에는 할리우드에서 [모로코] 같은 영화에 출연해서 배우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는 전선에서 공연하는 공연자로 활동하였다.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는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였다. 그녀는 자신을 끊임없이 새로 개발하여 마침내는 20세기의 엔터테인먼트 아이콘이 되었다. 미국 영화 연구소는 디트리히를 역대 여자 영화 스타 9위로 선정하기도 했다.(위키백과 참조)
가면의 또다른 사전적 의미는 '거짓으로 꾸민 얼굴'이다. 배우만큼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또 있을까? 포스터에 드러난 가면은 원래의 얼굴 크기보다 무척이나 커 보인다. 화려한 화장에 눈동자는 초롱초롱 빛이 나지만 어딘가 슬퍼 보인다. 가면 뒤에 있는 얼굴은 깊은 음영에 표정이 없다. 57년간(1922~1979) 무대에서 은막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며 울고 웃기고 했던 그녀의 화려한 모습 뒤의 쓸쓸한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어찌 비단 배우들만의 얘기일까. 우리는 누구나 인생이라는 무대위에 내몰린 배우가 아닌가. 솔직한 자아는 가면 속에 감추고서는 더 좋게 보이고 더 인정받으려고 거짓으로 얼굴을 꾸민 채 '가면현상'*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말이다.
*가면현상 :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정체성 상실 현상. 회사의 중역이나 의사, 변호사 등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위와 신분에 이르렀으면서도 끊임없이 '이것은 나의 참 모습이 아니다. 언젠가는 가면이 벗겨질지 모른다' 등과 같은 망상으로 괴로워하는 현상을 말한다.
Daum 백과사전
[카사노바, 2005]
음흉한 표정의 히스 레져, 아~ 히스 레져! 18세기 베니스 최고의 바람둥이 쟈코모 카사노바를 연기했다. 알랑 드롱, 리처드 챔버레인, 토니 커티스, 도널드 서덜랜드 등 카사노바를 연기한 많은 배우들 중 히스 레져의 눈빛만큼 호색한의 느낌을 잘 표현해낸 배우도 없다. 적어도 포스터에서 만큼은 말이다.
카사노바는 어떻게 수많은 여인들을 유혹할 수 있었을까? [미스터리와 진실]의 저자 이종호 씨는 두번째 권에서 "카사노바가 바람둥이 자체로 평생을 살았다면 결코 오늘날까지 그의 이름이 기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보다 더한 호색한이 한두 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그는 모험가이자 작가이고, 시인이면서 소설가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성직자, 바이올린 연주자, 병사, 도서관 사서, 번역가, 스파이, 철학자, 도박꾼, 복권의 창안자, 연금술사가 그에게 붙는 수식어다. 이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사람인지 알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만능 재주꾼이다. 도대체 카사노바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있었단 말인가? 내가 여자라도 그에게 넘어갔겠다.
[팝콘, 1990]
우리나라에서는 1993년에 개봉한 영화 [팝콘]의 포스터다. 시골 학교 영화과 학생들이 개최한 '공포영화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상황을 다룬 공포 영화다. 포스터는 약간의 힌트를 제공한다. "15년전 그는 무대에서 그의 가족을 살해하고 극장을 불태웠다. 오늘밤 앙콜 공연을 위해 그가 돌아온다." 돌아온 '그'가 펼칠 앙콜 공연은 아마 아무도 보고 싶지 않을 내용일텐데 누가 '앙콜'을 외쳤을까?
가면 스타일의 포스터를 정리하다 보니 이 스타일은 거의 대부분 공포영하 장르에서 애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영화속 캐릭터가 끔찍한 살인마고 그들이 가면을 쓰고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에 포스터에서도 그 모습 그대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헐리우드의 대표 프랜차이즈 공포 영화 시리즈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의 전기톱 살인마,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등이 대표적이다.
[텍사스 전기톱 학살 2, 1986] [텍사스 전기톱 학살 3 : 레더페이스, 1990]
[13일의 금요일 6 : 제이슨은 살아 있다, 1986]
[할로윈 4 : 마이클 마이어스의 귀환, 1988] [할로윈 5 : 마이클 마이어스의 복수, 1989]
그밖에 많은 공포영화에서 가면이 등장한다.
[오페라의 유령, 1989]
[테러 트레인, 1980]
한편으로 '가면'하면 역시 수퍼히어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배트맨,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등, 수많은 히어로들이 가면속에 숨어 있다. 요즘은 수퍼히어로가 나오는 영화만큼 흔한 것도 없으니 구지 포스터를 소개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악당도 영웅도 가면속에 숨어있다?'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어서?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고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가면을 쓰고 있는가'가 아니라 '자기에 맞는 가면을 썼는가'여야 하지 않을까. 변호사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은 '정직한 변호사 가면'을, 의사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의사 가면'을... 이렇게 모두가 '거짓'의 가면이 아니라 '진실'의 가면을 쓰고 있다면 어떨까?
괜한 소리 말라고 한다. 그게 가능하냐고 말한다. 상관없다. 그저 그런 바램이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면 스타일' 포스터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포스터를 소개하면서, Good bye!
[엑스칼리버,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