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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컬럼니스트 정윤수 씨가 소개해 준 소설이다. 2006년 발표된 코맥 매카시의 이 묵시록 적 소설은 2010년에 존 힐코트 감독의 연출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정윤수 씨는 소설과 영화 모두 보고 나서 "영화도 재미있었지만 소설은 약 3,000배는 더 재미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세 배가 아니라 3,000배라고 했다.
일단 덮어 놓고 책을 사서 펼쳤다. 책 표지 날개에 소개된 코맥 매카시는 알고 보니 알만한 사람은 죄다 알만큼 유명한 사람이었다. 이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5], [카운슬러, 2013] 같은 작품들은 문학적 성공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스톤 메이슨], [선셋 리미티드] 등 몇 편의 연극과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도 했다. [로드]로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 했다.
소설은 원인은 모르겠지만 이미 몽땅 폐허가 된 미래의 어느 도시에서 시작한다. 부자 지간의 한 남자와 소년이 잿빛 거리를 지난다. 카트를 끌고 방수포를 뒤집어 쓰고서. 작가는 부자간의 대화를 건조할 정도로 짧게 표현하고, 전체적인 묘사도 우울하고 절망적으로 표현하지만 묘하게도 가슴 속에 큰 울림을 만드는 기술이 있다.
넌 나쁜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다고 했지. 이제 알게 됐잖아. 그런 일이 또 벌어질 수도 있어. 내 일은 널 지키는 거야. 하느님이 나한테 시킨 일이야. 너한테 손을 대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죽일 거야. 알아 들었니?
네.
소년은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앉아 있었다. 한참 후에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지금도 좋은 사람들인가요?
그래. 우린 지금도 좋은 사람들이야.
그리고 앞으로도요.
그래. 앞으로도.
알았어요.
90 p.
오로지 생존만이 목적이 된 세상에서는 낯선 사람은 그 자체가 위협이다. 살기 위해서 사람도 삶아 먹어야 하는 극한의 불모지에서는 경계의 시선이 우선이다. 거리에서 만난 낯선 사내가 소년의 목에 칼을 대자 남자는 총을 쏘아 소년을 구했다. 그런데 소년은 그 이유로 한참이나 시무룩하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지금도 좋은 사람들인가요?"
밤에 잠을 깬 남자는 누운 채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생각에 남자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남자가 말했다.
왜 그래요. 아빠?
아무것도 아니야. 우린 괜찮아. 자거라.
우린 괜찮은 거죠. 그죠 아빠?
그래. 우린 괜찮아.
우리한텐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죠.
그래.
우리는 불을 운반하니까요.
그래. 우리는 불을 운반하니까.
96 p.
남자와 소년은 어디를 가는 것일까? 어디로 불을 운반하는 것일까? 운반한다던 불은 어디 있나? 두 부자가 향하는 곳은 해안가였다. 모든 것이 파괴된 세상에 '좋은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 걷고 걷고 또 걷는다. 그러면서 몇몇 생존자들을 만나지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구별은 불가능하다. 이미 병을 안고 있는 남자는 설상가상으로 소년을 보호하려다가 부상까지 입게 된다.
그리고 도착한 해안가. 그러나 바다는 파란색이 아니었다. 그들은 과연 '좋은 사람'에게 불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스톱. 더 나가면 스포일러가 될 듯하다.
'서부의 세익스피어'라는 코맥 매카시. 윌리엄 포크너, 허먼 멜빌,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계승했다는 평을 들으며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까지 올랐다는데, 그 수준이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낯선 그의 스타일이 갖고 있는 흡입력은 대단하다는 것이다. 어렵게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신선한 문체가 독특한 상상력을 만나서 아주 절제된 느낌을 준다. 어떤 표현들은 대단히 시적이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토피아적이냐 디스토피아적이냐. 미래를 다루는 두가지 방식이다. 당연 [로드]는 후자에 해당한다. 그러나 절망뿐인 상황에서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는 과정을 부성애를 통해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 된다. 울컥! 두 눈에 압력을 느끼는 순간 소설은 긴 여운을 남긴 채 마무리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