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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에게 길을 묻다 - 프랑스 중위의 여자
카렐 라이츠 감독, 메릴 스트립 외 출연 / 유비윈 / 2010년 4월
평점 :
어제 있었던 일이다. 야간 근무로 홀딱 밤을 세고 두시간 남짓 눈을 붙인 다음 오후 1시에서야 집에 왔다. 간단하게 초코파이로 점심을 때우면서 TV채널을 돌리다가 오늘의 방송안내를 보니 EBS 세계의 명화 시간에 [프랑스 중위의 여자, 1981]를 방송한다는 정보를 접했다. 이게 웬 행운인가. 사실 이 영화뿐만 아니라 존 파울즈의 동명 원작소설도 차기 독서 목록의 상위권에 기록해 두던 차였다.
영화는 독특하게 시작한다. 화면은 영화촬영장 전체를 비추더니 촬영시작을 알리는 슬레이트가 내려오고 나자 서서히 메릴스트립이 분한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초점이 맞춰진다. 마치 영화 속 영화같은, 소위 액자 구성을 따랐구나고 섣부른 단정을 해버리고 영화에 몰입하는데 중간 중간에 원작과는 별도로 사라 우드러프 역을 맡은 배우 안나(메릴 스트립 분)와 찰스 스미슨 역을 맡은 배우 마이크(제리미 아이언스)의 불륜 드라마가 병렬 형식으로 전개된다. 즉 이 영화는 존 파울즈의 원작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의 스토리와 별개로 이 소설을 영화화면서 사랑에 빠지는 두 주연 배우의 애정행각이 교차하면서 원작 소설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영화의 핵심은 역시 사라와 찰스의 이야기임을 부인할 수 없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의 날씨만큼이나 우중충한 억압의 문화를 수단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여성에게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기고 있다. 제목에 전면으로 등장하는 '프랑스 중위'는 화면에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지만 사라는 그 외국인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이유만으로 '프랑스 중위의 창녀'로 지목되며 뒷 담화의 소재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성의 정숙을 숨막히도록 강조하면서도 '하인과 노예를 구분 못하는' 폴트니 부인이라는 상징적인 인물을 통해 여성에게 엄격한 도덕적 굴레를 씌우는 시대적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다음은 EBS에서 정리해 놓은 줄거리.
1867년 영국의 작은 해변 마을 ‘라임’. 런던 출신의 아마추어 고생물학자 찰스 스미슨(제레미 아이언스)은 약혼녀 어네스티나 프리먼과 해변을 산책하던 중 파도가 휘몰아치는 방파제에 한 여자가 서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약혼녀의 만류에도 방파제로 뛰어가 여자에게 위험하다고 소리친다. 여자의 이름은 사라 우드러프(메릴 스트립).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고 경멸하지만 찰스는 사라의 강렬한 첫인상에 마음이 끌리고, 그녀가 몰인정하고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함을 강조하는 폴트니 부인의 가정교사가 되자 연민을 느낀다. 찰스의 이런 감정을 눈치챈 사라는 처음에는 약혼녀가 있는 찰스를 밀어내지만 어느덧 해변 으슥한 곳에서 만나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털어놓는다. 사라는 한 프랑스 중위를 사랑했지만 자신은 중위에게 그저 즐기기 위한 여인 중 한 명이었음을 깨닫고 스스로를 벌하기 위해 오명을 쓰고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찰스는 부유한 사업가의 외동딸 어네스티나 프리먼과 자신의 마음을 통째로 뒤흔들어놓는 사라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가 라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찰스는 사라를 돕기 위해 그녀를 런던으로 보낸다. 런던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라임으로 돌아온 찰스는 약혼녀와 파혼한 후 다시 사라에게 돌아가지만 사라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다. 그로부터 3년 후 사라의 행방을 찾았다는 연락이 온다. 알고 보니 미술가로 성공해 온전히 살아가고 있는 사라가 자신이 있는 곳을 일부러 알려온 것이다. 찰스는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이용했던 사라에게 분노를 쏟아내지만, 자신을 아직도 사랑한다면 용서해 달라는 사라의 간청에 그녀를 용서한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묘사되지만 영국 최고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존 파울즈의 원작과는 다른 결말이라고 한다. 원작의 묘사되는 결말이 궁금하다. 그리고 또다른 커플, 안나와 마이크의 불륜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듯하다. 마이크의 가정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이고 안나 역시 애인과의 관계를 청산할 마음이 없다.
이 영화는 1982년 메릴 스트립에게 영국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별로 예쁘지 않지만 연기력 만큼은 발군인 이 여배우는 예나 지금이나 작품에 신뢰감을 주는 몇 안되는 배우이다. 젊은 메릴 스트립의 신비스러운 매력을 느낄 수 있는데, 특히 방파제 위의 메릴 스트립은 강렬하면서도 묘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젊은 제레미 아이언스 역시 두 여인 사이에서 방황하는 영국 신사를 훌륭하게 연기하면서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