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낮이 가고 밤이 오고, 다시 밤이 가고 낮이 오기가
몇 번을 거듭하도록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내리는 비에 몸속까지 흠뻑 젖어도 보고, 지쳐 길거리에 쓰러지기도 했다.
어느 날, 커다란 소용돌이가 쳤고 눈을 떴을 때는 사방은 어둠뿐이었다.
마치 안대를 한 술래처럼 먼지는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한발 내디디면 천길 낭떠러지일 것만 같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못생겼다고 놀이에 끼워주지도 않던 동네 아이들, 돌을 던지며
놀려대던 사람들이 악몽처럼 눈앞을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추웠지만 이마와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여행은, 특히 혼자서 하는 여행은 참 외롭다.
바람만 뒹구는 거리에서 뚜벅 뚜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라치면
내가 걷는 것인지 길이 나를 삼키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작렬하는 햇빛아래 개구리 한 마리 도로를 횡단하다가 차바퀴에 깔려 압사당하는 비극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먼지는 이제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바탕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것도 같았다.

잠시 허리를 굽혀 신발 끈을 고쳐 맸다. 구멍 난 운동화 틈사이로
때 절은 새끼발가락이 생뚱맞게 나와 있었다.

모퉁이를 돌자 은은한 백합 내음이 콧속을 간질이는 것을 느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향기가 시작되는 곳이 어딘지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인기척 없이 냄새만 유혹처럼 먼지의 발걸음을 잡았다.
분명 사람의 냄새였기에 기다리기로 하고 길가 풀 섶에 누워 눈을
감았다. 집을 언제 떠났는지 어림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 고되고 외로운 여정이었다.

 

“자니?”

 

먼지는 자신의 어깨를 잡은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따뜻한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향기의 주인인 듯 달콤한 내음이 공기 중에 있었다.

 

“피곤한가 보구나. 곧 일어나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한참 동안이나 곤하게 자더구나.”

 

먼지는 깜빡 잠이 들었음을 알고 코를 골지는 않았는지,
침을 흘리지는 않았는지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니?”
“그래...”

 

정말 수수하게도 생겼다고 먼지는 생각했다.

 

“난 먼지야, 내게 할 말이라도 있니?”
“너 친구를 찾고 있지?”
“...”
“어떻게 알았냐구? 네가 자면서 말하더라. ‘친구야 어딨냐’구.”

 

먼지는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지 몰라도 기분이 좋아졌다.

 

“난 달이야.”

 

달이 손을 내밀며 자기소개를 하자,

먼지도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달은 먼지 옆자리에 앉아서 한참동안 아무 말 없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엷은 미소가 있었고 눈은 바라보는 거리만큼 깊고 고요했다.
먼지는 그런 달의 옆모습을 침을 삼키며 바라보았다.
'꿀꺽' 먼지가 침을 삼기는 소리다.

 

“외롭니?”

달은 시선을 옮기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외로워.”

먼지는 어렵지만 솔직하게 말했다.

 

“누굴 사랑하고 있니?”
“난 사랑이 뭔지도 몰라.”
“먼지라고 했지? 
 내가 얘기 하나 해줄 테니 괜찮다면 들어볼래?”

 

먼지는 달이 참 진지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토록 진지하게 말을 건넨 기억이 없었다.

 

달이 말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