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양장) - 우리의 일기장을 채울 따뜻한 일상의 조각들
탄줘잉 엮음, 김명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일이 어찌 49가지 뿐이겠나마는, 이런 책도 있다. 책장 한켠 아내가 나를 만나기 전에 소장하고 있던 책들 틈에 이 책이 있었다. 좀 가볍게 읽을 것이 없을까 하던 차에 잘 되었다 했다. 중국의 젊은 에세이 작가가 일상에서의 소소한 에피소드나 기존부터 있었을 법한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둔 것인데 이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종의 버킷리스트 같은 '나만의 취미 갖기', '소중한 친구 만들기', '고향 찾아가기' 등 49가지의 목록이 나름 심상치 않은 생각의 꼬리물기를 자극했지만 내용은 그야말로 평범했다. 아니 잔잔했다고 하는 편이 더 좋겠다. 오히려 이 책의 미덕은 책 내용에 있는 에피소드가 아니라 각각의 목록이 나만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마중물 역할을 해주는 것에 있다는 생각이다.

 

가령  '혼자 떠나 보기' 대목에서 고등학교 까까머리 때 낯선 시외버스를 집어타고 무턱대고 어디론가 떠났던 추억이 떠오르는 식이다. 당시 나는 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 버스는 나를 옥천의 어느 5일장 한복판으로 안내했다. 지금으로부터 25년전 90년대 초반의 시골 장터는 그야말로 정겨운 풍경으로 남아있다. '쌍두사'를 보여주겠다며 사람을 유혹해 놓고 감질맛나게 애간장을 녹이던 약장수며, 한여름 들에서 달구었을 붉은 얼굴의 촌부들, 그리고 '뻥이요'를 외치던 뻥튀기 장수의 목청이 참으로 우렁차다고 느꼈었다. 장터 끝마루 쯤 자리잡은 시골 영화관의 촌스러운 그림 간판도 불명확한 윤곽으로 떠오른다. 그때 나는 그 낯선 공간에서 무엇을 가지고 돌아왔는지  다시 생각에 잠겨 본다. 그게 무엇이었지? 무엇이었더라? 잘 떠오르지 않는다. 글로 잘 표현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다음날 학교가는 발걸음이 꽤나 가볍게 느껴졌었다는 것 뿐... 맞다. 혼자 떠나 본다는 것은 익명의 공간에 나를 떨구어 놓고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것과 같다. 안해본 것을 해보고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고 익숙치 않은 느낌에 젖어보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아마도 다른 많은 독자들도 이 책을 읽을 때, 49가지 할 일 중에서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한 추억과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아쉬움, 몇가지는 앞으로 꼭 해보겠다는 다짐들이 동시에 떠오르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렇게 좋은 느낌으로 리뷰를 작성하는 중에 인터넷에서 아쉬운 뉴스가 하나 검색된다. 요즘도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표절과 관련한 소식이다. 아무래도 아래 기사 전문을 옮겨 놓는 것으로 리뷰를 마쳐야 할 것 같다.

베스트셀러 서적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에 대해 법원이 저작권 침해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민사5부(부장판사 황한식)는 중국 출판사인 선양원류사가 위즈덤하우스와 교보문고 등 대형 서점 8곳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금지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위즈덤하우스와 각 서점은 책의 판매를 중단하고 선양원류사에 4억원을 배상하라”며 “위즈덤하우스가 선양원류사의 허락 없이 45개 이야기를 선별해 출판한 것은 이야기 각각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말했다.

중국 작가 탄줘잉·왕징은 전래 미담과 창작 이야기를 묶어 2003년 선양원류사에서 ‘일생에 해야 할 99가지 일’을 출판했다. 한국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는 선양원류사와 출판권 계약을 맺은 북경공대출판사와 판권 계약을 체결하고 2004년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를 펴냈다. 책의 이야기 중 45가지는 탄줘잉·왕징의 책에서 발췌한 것이었다.

이 책은 110여만부가 팔렸고, 선양원류사는 ‘위즈덤하우스와 한국의 서점이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소송을 냈다. 위즈덤하우스 측은 ‘일생에 해야 할 99가지 일’이 기존에 있는 이야기를 수집한 것이기 때문에 창작물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0.7.5. 쿠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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