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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쾰마이어의 그리스 로마 신화
미하엘 쾰마이어 지음, 김시형 옮김, 이경덕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읽는다는 18가지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독일 최고의 신화작가라는 미하엘 쾰마이어가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18가지 이야기의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1. 세계의 탄생 2. 신들과 인간들 3. 에우로페와 카드모스 4. 크레타 5. 오이디푸스 6~8.헤라클레스 9. 이나코스 10. 다나이데스 11. 안티오페 12. 암피온과 제토스 13. 탄탈로스와 그의 아들 14.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 15. 아가멤논과 오레스테스 16. 트로이 전쟁 17. 일리아스 18. 오디세이아
'신화'는 그 자체가 '미궁'이라서 독자는 나름의 '아드리아네의 실타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언급한 고 이윤기 선생의 조언이 틀린 말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포와 혈관, 무기물 그리고 유기물 따위가 어우러져 하나의 온전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신화 역시 셀수 없이 많은 사건과 등장인물이 뒤엉켜 있다. 주인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캐릭터가 삶의 주체로서 살아 숨쉬고 있다. 읽을 때마다 읽고 있는 이야기가 어느 지점에서 전개되고 있는지 길을 잃기 일수여서 답답한 나머지 각자의 이야기마다 가계도를 그리고 사건 흐름도를 그려보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크레타 전설권과 티베 전설권의 윤곽이 잡혔다.
수소로 변신한 제우스가 티로스 왕 아게노르의 딸 에우로페(유럽)를 납치하여 데려다 놓은 곳이 크레타 섬이었고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사이에서 난 미노스는 크레타 섬의 왕이 된다. 이렇게 크레타 전설권의 시조가 된 미노스왕은 헬리오스의 딸 파시파에와 사이에 파이드라, 아드리아네 등을 두었다. 파시파에의 어처구니 없는 음욕에 의해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나고 미노타우로스 뿐만 아니라 파이드라와 아드리아네 모두가 불세출의 그리스 영웅 테세우스 모험담의 희생양이 된다.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한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 까지 크레타 전설권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티베 전설권도 시작은 에우로페였다. 제우스에 의해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에우로페의 아버지 아게노르는 아들들을 사방으로 보낸다. 그 중에 영민한 아들 카드모스는 먼저 아폴론을 모시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을 받아보기로 한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신탁의 내용은 '에우로페를 찾지마라! 발길 닿는데로 가다가 소떼를 만나면 반달 모양이 새겨진 소를 따라가라. 소가 쓰러진 곳에 도시를 세워라.'였다. 카드모스는 신탁의 내용대로 도시를 세우니 그 도시가 바로 카드메이아(카드모스가 세운 도시)였다. 그 도시에는 용(뱀)이 한마리 있었는데 그 용을 죽이고 이빨을 모두 뽑아 이것을 땅에 뿌리니 무장을 한 군인들이 솟아나와 서로가 서로를 죽이다가 결국 다섯이 남았는데 이들이 바로 스파르타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카드메이아는 후에 카드모스의 자손들인 암피온과 제토스 쌍동이 형제 때에 이르러 제토스의 아내 이름인 '테베'로 그 이름이 바뀌게 된다. 암피온은 니오베와 결혼했는데 이로써 테베 전설권은 니오베와 그녀의 저주받은 가문까지 확대된다. 니오베는 바로 탄탈로스의 딸이자 펠롭스의 동생이었던 것이다. 니오베, 암피온, 제토스가 연이어 불행한 죽음을 당한 후 테베의 왕위는 오이디푸스의 친부 라이오스 왕에게 이어지면서 거대한 테베 전설권의 이야기는 끝없이 펼쳐진다.
미하일 퀼마이어는 익숙한 이야기에다 다른 책에서 깊이 있게 소개하지 않는 이야기의 전후를 상세하게 소개해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신화 영역의 확장을 도와준다. 이를 테면 프로메테우스를 소개하면서 그가 만든 인간의 재료에 관한 이야기인 '자그레우스' 이야기를 덧붙여 주고, 제우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로 헤라에게 괴롭힘을 당한 이오 이야기를 하면서 이오의 아버지 '이나코스'를 중심으로 어찌하여 그의 후손들이 끔찍한 저주를 받게되었는지 들려주는 식이다. 특히 탄탈로스 손자들이자 펠롭스의 아들들이며 니오베의 조카들인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 형제간의 끝없는 증오와 파멸을 소개하는 부분에 가서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 아트레우스의 동생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는 결국 조카들을 죽이고 그 시신을 토막낸 뒤 동생에게 머리와 팔다리를 조각상이라고 보여준다. 동생 티에스테스는 조각상이 죽은 자신의 아들들임을 깨닫고 충격으로 움직일 수 도 없었으나 이어지는 형의 말은 그 이상이었다. "방금 네가 먹은 그 맛있는 음식은 사라진 몸통으로 만들었어."... 이어지는 티에스테스의 복수. 틀림 없이 수많은 공포영화에 영감을 주었을 이 이야기는 다나오스와 아이깁토스 쌍동이 형제 이야기와 함께 한 집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증오, 복수, 파멸, 몰락의 원형이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바로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이다. 그들의 앞날이 불안한 이유이다. 아시다시피 이 두 형제는 각각 제우스와 레다의 쌍둥이 자매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헬레나와 결혼한다. 헬레나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고,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전쟁에서 돌아온 아가멤논을 정부와 짜고 살해하고 자식들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여인이다. 아-, 이렇듯 신화의 세계는 잔인하단 말인가. 천만의 말씀. 늘 이런 복수극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로 돌아가 아름다운 다프네 이야기나 애틋한 에로스와 프시케 이야기, 아니면 피그말리온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정화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