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불을 지피다
잭 런던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모닥불]은 참 절실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잭 런던(Jack London)의 주목할 만한 단편중에 하나인 이 소설의 배경이 알래스카의 극한이라는 것과 추위와 고독이 우리가 숨쉬고 있는 곳곳에 스며있는 외면적이자 내면적이기도 한, 사실은 최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이 아닌가하는 인식때문이다.

 

 

   한 사나이가 영하 50도의 혹한 속에서 홀로 길을 가고 있다. 그의 유일한 동반자는 주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한 마리의 늑대개 뿐이다. 사나이는 단순한 성격으로 어떤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여러 가지 성격적 결함은 그의 비극적 종말을 예감케하는 메타포가 된다. 사나이는 실수로 눈 덮인 얼음을 밟아 다리를 적시게 되는데 이미 기온은 그의 상상 이상으로 내려가 불을 피워 발을 말려야만 했다. 시시각각으로 얼어오는 팔다리를 의식하며 가까스로 불을  피우는데는 성공하지만 전나무 아래에서 피운 불은 나무위의 눈덩이가 쏟아지는 바람에 꺼지고 만다. 생명을 상징하는 불이 꺼지자 사나이는 허겁지겁 다시 불을 피우려 하지만 이미 손과 발은 감각을 잃은 후였다. 그는 처절하게 몸부림치지만 이내 소용없음을 깨달은 후 '모가지가 잘린 수탉(a chicken with its head cut off)'처럼 볼쌍사납게 죽어가느니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눈밭에 주저앉고 만다. 사나이는 죽음을 맞이하고 홀로 남은 늑대개는 새로운 불씨를 찾아 남은 여정에 나선다.

 

 

   참 단순한 줄거리다. 하지만 주인공이 장벽에 부딪혀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는 처절한 과정이 그대로 삶의 모습이라 할 만 하다. 영화로 만든다면 틀림없이 '로드무비(road movie)'가 될 것이다. 여기서 길은 삶을 의미하는 인생행로라는 것은 이미 일반화된 사실이다.  주인공이 캠프로 가는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갖가지 장벽들(추위, 고독 등)은 실제 삶에선 훨씬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이런 장벽들과 처절한 투쟁을 하며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 하지만 대다수는 자신들의 나약함, 혹은 장벽의 거대함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좌절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도 그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주인공 자신은 스스로를 과대평가 한다. 이런 추위에서는 절대로 혼자 여행해서는 안된다는 어느 고참자의 충고에는 아랑곳 없이 길을 나선다. 이미 그는 이런 혹한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온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떨어졌고 그의 준비는 미흡했다. 그가 첫번째 불을 피웠을 때 그는 고참자를 비웃는다. 결코 사교적이지 못한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데 이점은 이런 위험한 여행에서 혼자 길을 나선 점에서도 확인된다. 심지어 그가 데리고 다니는 개조차도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Ths trouble with him was that he was without imagination.

 

 

   그는 물질적인 것은 빈틈이 없으나 누군가에게 감명을 줄 수 없다는 결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점은 그의 결점이 타인에 의해 부과된 혹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대중속에 있는 개인의 소외현상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회현상이 아닌가. 주인공의 고독은 그의 결점을 구실로 한 대중들의 묵시적인 담합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나이의 고독은 생명의 불이 꺼졌을 때 더 절실해 진다.

 

 

   The old-timer on Sulphur Creek was right. he thought.......

  after fifty below, a man should traveled with a partner.

 

 

    사나이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누군가를 찾게 된 것이다. 얼어붙은 손발로는 불을 피울 수도, 개를 죽여 그 배속에 손을 넣어 녹일 수도 없기 때문에 혼자임을 후회하고 고독의 절정을 맛본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동안 그는 자신의 나약함에 울부짖는다.  

 

 

   The warmth and security of the animal angered him,

  and he cursed it till it flattened down its ears appeasingly.

 

 

   인간은 어쩌면 나약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동물처럼 털이나 발톱도 없고 좋은 시각이나 후각을 가추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해 오는 과정에서 현대사회와 같은 거대한 문명이 태동했고, 그 대가로 고독이라는 정신병을 부여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 잭 런던이 정착을 못하고 여기저기로 방랑한 것도 그런 정신병적 증상이 아니겠는가.

 

 

   Then the man drowsed off into seemed to him the most  

 comfortable  and satisfying sleep he had ever known.

 

 

   사나이의 고독은 죽음 앞에서 비로소 해소된다. 표면적으로 그의 죽음 자체가 고독하게 진행되지만, 사나이는 죽음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에서 고독을 초월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잭 런던의 모닥불을 한 인물의 고독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상주의 소설가 잭 런던은 이 짧은 작품에서 고립된 주인공이 삶과의 투쟁에서 인간의 내면적 약점(비사회적 성격)과 외면적 약점(나약한 신체조건)때문에 좌절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날 때부터 나약한 존재이며 또 사회화 과정에서 서툴렀던 한 인물을 통해 인간의 고독은 어디에서 왔는가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삶의 끝까지 짊어지고 가야할 마지막 동반자라는 역설적인 결론을 가져오고 있다.

 

 

 

이글은 한창 푸르렀던 1997년 11월 26일에 썼던 것이다. 여기저기 흘러다니다가 흩어질까 두려워 나의 서재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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