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북숭이 원숭이 - 여덟 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고대와 근대 인생에 관한 희극
유진 오닐 지음, 손동호 옮김 / 동인(이성모)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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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오닐의 털복숭이 원숭이는 표현주의와 상징주의 수법을 동원하여 인간의 본질과 그 내부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산업사회 이후 기계 등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현대인의 고독과 자아상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고독과 자아상실은 사회 즉 타인과의 이질감에서 비롯된다고 가정한다. 또 이를 드러내기 위해 소속감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주인공 양크를 중심으로 기계화된 사회에서 현대인은 어떻게 소외되어 왔는가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양크는 육체적 우월감을 갖고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그가 선박을 움직이는 기관실의 화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양크에겐 선박의 기관실은 일종의 축소된 세상이며 자신이 그 안에 소속되어 있음을 자랑으로 여긴다. 오히려 허약한 체질의 사람들은, 비록 상류층이라 할지라도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료 화부들은 이런 양크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지만, 의식있는 노동자 롱은 양크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노동자들은 단지 자본가들의 착취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인데 양크에겐 갈등 따위는 관심 밖의 일이다. 왜냐하면 자본가들보다 그가 우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서 양크가 주장하는 소속감의 문제는 앞으로 닥쳐올 그의 고립과 이질감을 암시하는 요소다. 양크는 자신이 소속된 곳은 가족이나 이웃 혹은 친구가 아니라 산업화 이후 물질문명의 상징인 선박의 기관실, 즉 기계문명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와 융화하지 못한다.

 

  사람사회로부터의 소외가 제일 처음 등장하는 것은 밀드레드에 의해서이다. 그녀는 상류사회의 숙녀로 위선으로 포장되어 있다. 밀드레드는 양크를 보자마자 그의 야만성에 놀라 '더러운 짐승'이라고 외치고 기절한다. 밀드레드의 모욕적인 말에 상처를 받은 양크는 분노한다. 그는 복수를 다짐하지만 단지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의 복수일 뿐이다. 사실 작품속에서 양크는 어떤 종류의 사회적 문제도 인식하지 못하는 단순한 인물이고 이성보다는 순간순간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이다. 그는 처음부터 일반적 사회하고는 현저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가 때때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형상으로 고민하는 장면은 그의 고립감의 실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밀드레드의 모욕으로 양크는 자신의 소속감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상처받은 자부심을 빨리 회복하고 자신의 소속처인 기관실로 돌아가는 것이 그의 바램이었지만 거리에서의 난동으로 감옥에 같히게 된다. 사회는 그의 불만을 간단히 무시해버리고 그를 격리하려 한다. 양크는 감옥에서 나와 밀드레드 개인에 대한 복수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녀와 같은 계층사람들에게 복수의 범위를 확대시킨다. 그러나 노동자 단체인 IWW에서 조차도 양크의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는 또다시 고립감을 느낀다.

 

  결국 그는 자신이 속해야 할 곳을 잃고 방황하다가 우리에 갇힌 고릴라에게 비로소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그의 소속처로 생각했던 기관실의 이미지와 우리의 이미지, 그리고 우람한 체격과 강인한 힘의 이미지가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한 양크에게는 반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고릴라로부터 죽음을 당함으로서 동물은 동물일 뿐이며 현대인의 고립은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에 우리에서 죽어있는 양크의 모습은 죽어서까지 제한될 수밖에 없는 소속처를 보여줌으로써 양크의 정신적 한계와 사회적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대학때 써 놓았던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원작을 읽어보아야 겠다. 그때와는 많은 지점에서 다른 느낌으로 읽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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