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2 -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2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에게 책을 빌려 주었는데 돌려주지 않으면 그만큼 속상한 일도 드물다. 책은, 그 안의 지혜는 가십용 잡지나 소식을 전하는 신문의 역할과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집에 놀러온 불알친구에게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한 책 중의 하나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2 :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이다.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다시 책을 펼쳤다.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고 낯설다. 제목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던 터라 막연히 신화 속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겠거니 했다. '에로스와 프시케'나 '아폴론과 다프네'같은...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의 주제는 지금 시각에서는 일종의 금기에 가깝다. 이를 테면 수간(신들은 다양한 몸바꾸기를 통해서 방탕한 성생활을 즐긴다), 친부모 자식간의 사랑, 동성애, 자기애, 성전환, 양성애자, 원수간의 사랑, 매춘 등 그릇된 자신의 '반쪽이 찾기'의 진열장 같다. 그러나 이야기의 배경은 신들의 시대, 지금의 시각으로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시대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궤도수정 끝에 지금에 이르렀고 신화는 고전중에 고전의 자격으로 교만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 대목 보고 가자.  운전자의 분노, 이른바 '로드 레이지(road rage)'의 가장 오래된 사례인듯 싶어 옮겨 본다. 바로 오이디푸스 이야기다.

 

...'뼈를 준 아비를 죽이고 살을 준 어미로 짝을 삼는다'는 델포이의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바꾸기 위해 자신을 길러준 고국 코린토스를 떠나 보이오티아 땅으로 가기로 했다. 이때 오이디푸스는 단신으로 마차를 몰고 길을 나섰는데 도중에 길이 좁고 험란한 협곡에서 테바이 쪽에서 오는 또다른 마차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다. 누군가 먼저 길을 비켜주지 않으면 안될 상황, 먼저 상대방 쪽에서 '이 마차에 귀하신 몸이 타고 계시다'며 오이디푸스에게 길을 터줄것을 요구했지만, 오이디푸스 또한 왕자의 신분으로 상대방이 물러설 것을 호령했다. 지체높아 보이는 상대방 쪽에서 재차 '이 마차는 신성한 델포이 신전'으로 가는 마차이니 비키라고 하자, 안그래도 신탁 때문에 마음이 착잡한 오이디푸스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마차를 몰아 상대방 마차 옆을 지나가려고 하였다. 그 순간 상대방 마차의 '귀하신 몸'이 채찍을 휘둘러 오이디푸스의 발목을 낚아채자  오이디푸스는 한손으로 채찍을 잡아당겨 그 주인을 끌어내리고 몽둥이로 때려 죽인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괴물 스핑크스를 죽이고 테바이의 왕이 된 오이디푸스가 파멸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왠 뜬금없이 이야기의 중심에서 벗어난 교통시비 이야기냐고? 경비교통과장이란 직업병이랄까. 한 해 적게는 5,000명, 많게는 10,000명까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있는 척박한 교통환경에서 한명이라도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한민국의 교통경찰을 위한 위로가 필요해서이다.

 

로드 레이지는 미국에서 "도로에서 벌어지는 운전자의 난폭 행동"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며 이른바, '공격적 운전'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한다. 1984년 [LA타임스]에 처음 등장했으며, 1987~1988년 LA주변 고속도로에서 총기 발사사고가 많이 벌어지면서 정착된 단어이다. 1990~1996년까지 로드 레이지로 인한 운전자끼리의 싸움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218명이었으며, 심각한 교통사고는 매년 1,200건 이상 보고되고 있다고 하니 이를 일종의 정신 질환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자동차 문화가 지배하는 현대에서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로드 레이지의 원조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유명한 오이디푸스라니 재밌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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