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4월
평점 :
판매중지


전설의 쿵후 스타 브루스 리(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The Game of Death, 1978)]는 미국 프로농구 NBA의 스타 카림 압둘자바와의 결투 장면으로 유명하다. 김태정씨, 황인식씨가 출연하여 더욱 친근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온전한 이소룡의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주요 장면만 찍어 놓고 주연배우인 이소룡이 사망하는 바람에 영화의 대부분을 대역배우(한국의 김태정씨)와 다른 영화 장면을 짜깁기하여 완성했기 때문에 한편으론 괴기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하는 안스러운 동정론까지 일었던 영화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은 소설가, 번역가이자 신화 전문가인 고 이윤기 선생의 유작이다. 선생의 책을 읽을때마다 느꼈던 경이로움, 고마움 이런 감정은 사라지고  영화 [사망유희]가 떠올랐다. 영화 [사망유희]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은 이 책의 시리즈 1권의 내용(외짝신 사나이, 오르페우스 에피소드 등)이 거의 그대로 다수 포함되어 있고 에필로그 역시 선생의 따님인 이다희씨에 의해 쓰여졌다. 모를 일이다. 하지만 본문에서 선생은 아르고 원정대를 이해하자면 흐름상 1권의 책을 인용하는 것이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언급하면서 "독자들에게 퍽 미안하고... 양해를 구한다."고 하였다. 선생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한 편집은 아닐 것으로 믿기로 했다.

 

처음부터 옆길로 샜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오자. 그 동안 단편적으로만 이해되었던 영웅 이아손과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에 대해 이해하게 된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제 흔한 주제가 되어버린 '늙고 힘없는 왕, 어린 왕자, 야망에 찬 왕자의 숙부, 숙부의 왕위찬탈, 왕자의 고난과 성장, 그리고 복수' 스토리 구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자칫하면 다소 진부할 수 도 있었지만, 신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상징과 은유, 다양한 인물들의 독특한 개성,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의 현란한 글재주로 인해 책을 펼친 자리에서 덮을 수 있었다.

 

상상해 보라. 이제 갓 약관의 청년이 아무도 가보지 못해 그 곳이 어디인지도 막연한 미지의 세상으로 떠나자고 유럽 전역의 내로라하는 영웅들 50명을 선발하여 원정대(심지어 여기에는 헤라클레스도 포함되어 있었다)를 결성하는 장면을. 눈에 그려 보라. 15년이나 산속에서 활쏘기, 수금타기, 뱃길 보기 따위 등을 배운 청년이. 설사 현자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사사받았다 하더라도 영웅들이 탈 아르고선을 건조하여 몇년 동안이나 '적대적인 바다'위를 헤치며 갖은 모험을 하는 장면을. 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단 하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것,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깨닫기 위한 것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바로 '금양 모피'의 메타포는 자기 자신이었다.

 

아침에, 어떤신의 조화인지 모르겠으나 50미터 밖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하게 낀 안개를 헤치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운전을 하면서 아르고 원정대의 첫 항해가 이러지 않았을까하는 짐작을 해봤다. 기상은 헤라신의 은총과 포세이돈 신의 자비로 화창했을지는 모르나 무지의 두려움, 부지불식간에 돌발할 줄 모르는 위험에 대한 공포감, 즉 미지의 안개 속이 아니었을까. 신화는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신화의 교훈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고대 천상의 우리를 닮은 신과 신과 버금가는 신인들, 신의 은총을 입은 영웅들의 속살깊은 이야기들은 이곳 저곳에서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다. 때로는 이정표가 되고 가끔은 쉼표도 되었다가 잊혀질때가 되면 일기장도 된다.

 

안타깝다. 이윤기 선생의 신화이야기는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선생의 작품을 모두 읽어보지는 않았다. 차차 기회가 되겠지. 여전히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선생의 지휘를 기다리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주인을 잃고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겠다는 염려다. 어쩌랴.

 

영화 [사망유희] 는 짜깁기에 짝퉁 배우를 기용해서 영화의 50% 이상을 땜질했다. 이소룡의 호쾌한 액션을 기대했던 많은 관객들을 러닝타임 내내 열받게 하고 인내심의 끝을 시험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이 괴작은 이소룡의 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지막 5층 탑에서 단계적으로 벌이는 이소룡 액션 장면만으로 이후 수많은 후세 영화인들의 오마쥬 대상이 되었다.(지금 잠깐 그의 3층 격투 장면을 보고왔다.) 이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노란색 트레이닝 복은 2013년 어느 경매에서 1억 660만원에 낙찰되었을 정도다.

 

[사망유희]와 이 책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을 비교하는 것은 넌센스다. 처음에 가졌던 의구심은 섣부른 예단이었다. 공통점은 유작이라는 점뿐, 짜깁기도 아니고 짝퉁 작가도 없다. 그의 손길을 탄 '오딧세이아'를 읽을 수 없다는 진한 아쉬움만 남는다.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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