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선물 14일 1 - 무삭제 오리지널 대본집
최란 지음 / 소네트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훌륭한 대본이 너무나 많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시그널> 대본과 <태양의 후예> 대본을 읽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지만 두 작품뿐만 아니라 멋진 대본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이다. 그 중 정말 재미나게 봤던 드라마 중 "신의 선물14일"이라는 명드라마의 대본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그것도 무삭제 오리지널 대본집에 +알파처럼 붙은 17회 대본이라니....!

 

 

처음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건 캐스팅 때문이었다. 연기귀신 '이보영','조승우'의 미친 연기를 함께 볼 수 있다는 작가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1회부터 시청했다. 하지만 딱 2회를 보고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이 작가, 예전에는 뭘 썼던 작가였을까? 라는.

 

 

물론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동서양으로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딱 한 번쯤은 돌아가고 싶은 한 때가 있을 것이다. <신의 선물 14일>에서는 그 누구보다 간절하고 절절한 엄마 "수현"이 등장한다. 몸이 약해 부모의 손길이 필요했으나 재혼한다며 자신을 버린 엄마의 기억과 고아여서 사랑을 놓아야했던 상처를 가진 시사 프로 10년차 베테랑 작가 수현의 딸이 납치 되었다. 최근 납치된 아들을 위해 범인과 방송으로 줄다리기를 하는 배우 엄마가 나온 드라마도 있었지만 <신의 선물 14일>에서 수현은 이미 그 전에 딸을 살리기 위해  미친듯이 싸우는 엄마의 모습을 그려낸 바 있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누구든 이렇게 미친듯이 매달리게 되지 않을까. 그것도 죽어버린 딸의 환생 앞에서...하지만 그 딸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은 단 14일 뿐이다. 타임라인이 정해졌다는 점이 드라마의 절박성을 더 부채질해댄다. 14일 후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이미 알고 있는 '수현'과 독자(혹은 시청자)들만 안절부절 상태.

1회 111씬 속에서 수현의 딸 샛별이는 유괴된 상태다. 2회 104씬만에 샛별이는 죽었다가 되살아났다. 드라마를 본방사수하던 당시 빠른 전개에 혹시 한 씬이라도 놓칠까 tv앞에 딱 앉아 일절 다른 일에 한 눈 팔 수 없었던 그 모습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지어지기도 했다.

 

 

 

 

영상으로 이미 보아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글로.. 그것도 대본으로 다시 보는 일은 꽤 즐거운 일이다. 이 씬이 그때 이렇게 연출되었구나 ! 이 씬은 없던 씬인데?? 어, 삭제 된 씬도 있네...찾아내는 일도 즐겁고, 다시금 그때의 그 감동을 머릿 속으로 재현해 보는 재미도 쏠쏠한 편이다.

 

 

그러다 읽고 있던 대본과 드라마 영상을 맞춰 볼 수 있는 기회라도 얻게 되면 그날은 밤잠 다 잤다. 이 재미에 10년간 빠져 지내고 있다. 나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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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살인 2 발란데르 시리즈
헤닝 만켈 지음, 권혁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발란더(혹은 발렌데르) 시리즈 중 한 권인 <한여름의 살인>은 총 2권이다. 애초에 1권짜리인 줄 알았다가 1권의 끝에서 "2권으로 이어집니다"라는 글을 보고 눈에 쌍심지를 키고 말았지만 두 권짜리인 줄 알고 봤어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을 것 같긴하다. 재미가 한참 무르익었을 때 그 흐름이 뚝! 끊겨 버린다면 누군들 화내지 않겠는가.

 

 

묵직하게 자신의 일을 해 오던 형사 한 명이 그의 집에서 산탄총에 맞아 죽었다. 그가 쫓던 사건 때문이었는데, 그 범인이 지인이었다. 황당하게도. 그에게는 사랑이었으나 범인에게는 이용이었을 뿐인 관계 같아 보여 마음이 씁쓸해진다. 물론 독신으로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던 스베드베리의 개인적인 성적 취향은 동료 경찰들도 몰랐던 일이었지만.

 

 

반면 자신을 전지전능하게 여기던 범인도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안전하게 계획대로 진행하던 그가 아홉번째 표적은 성급하게 골랐던 것. 막 결혼한 신혼부부와 그들을 찍던 사진사를 살해한 후, 1년 정도 기다렸다가 살해 대상을 고르려했던 계획을 전면 수정하면서까지 발란더를 죽이려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살인자는 냉정을 잃었다. 흥분에 휩싸였고, 성급했다.

 

 

 

그리고 잡혔다. 변장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그드에게서 웃음을 추방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연쇄살인범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죽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있겠냐'며 말도 안되는 소리로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려했다. 단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의 목숨을 너무나 쉽게 빼앗아 가면서 정당화하는 말치고는 너무 작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신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선택권을 빼앗아 버린 것으로 모자라 가장 행복한 순간에 죽여 버리다니.....!

 

 

 

이런 생각을 가진 연쇄살인범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에 함께 뒤섞여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과연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캐릭터일까. 발란더같은 용감한 형사를 만나보진 못했지만 귀로 들리고 눈으로 보고 있는 뉴스 속 범죄자들은 이야기 속 인물들보다 결코 착하지 않았다.
오늘도 한숨 쉬어지는 뉴스들이 많이 속속 들려오고 있는 가운데 제발 이런 이야기들은 책 속 이야기로만 읽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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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살인 1 발란데르 시리즈
헤닝 만켈 지음, 권혁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북유럽 작가 헤닝 만켈의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다. 몰입도가 최고!! 읽는 재미 최강!!! 수식어를 따로 갖다 붙일 필요가 없는 작품이 바로 그의 소설이다. 밑바닥부터 꽉 차 올라오는 그 울림부터 다른 이야기를 채 10권도 읽지 못했지만 어느새 나는 그의 매니아가 되어 있었다.

 

 

7.8월이 한여름인 우리와 달리 북유럽의 한여름은 6월 22일 경을 의미한다는 이제사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일년 중 해가 가장 긴 한여름 80여일 동안 쿠르트 발란더 형사에게 최악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연쇄살인범의 손에 동료 스베드베리를 잃고 만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10대 셋의 실종 사건을 파헤치던 스베드베리는 어이없이 면식범의 손에 살해당했고, 이후 사건을 정식 수사하던 발던더는 실종 청소년 셋의 시체까지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원래는 넷이어야 했다. 이사 에덴그렌이 빠졌다. 축제에 참석하려 했으나 당일 갑자기 몸이 아파 빠졌던 이사는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과연 위험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것일까. 이사에게 드리워졌던 죽음의 그림자는 완전히 걷혀진 것일까. 여전히 살인범의 윤곽조차 잡지 못한 발란더와 달리 독자들에게는 살짝살짝 살인범의 옷깃(?)을 펄럭여주며 그 궁금증을 더하게 만드는 작가의 노련함이란....!!! 혀를 두르게 만든다. <한여름의 살인>은!!

 

 

보통 범인의 정체를 알고 보면 긴장감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마저 계산한듯 아슬아슬하게 독자와 밀당에 나선 그는 뛰어난 카사노바 같았다. 이 노련한 작가의 빠른 타계로 더이상 이런 수준의 소설을 읽을 수 없다니....!!!
1권을 읽고 잠시 숨고를 틈도 없이 곧바로 2권을 펼쳐들었다.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대체 똑똑한 헤닝 만켈이 준비해 놓은 범인은 어떤 캐릭터라는 말인지....! 개인 소유의 섬에 홀로 숨죽여 숨은 마지막 소녀 이사마저 죽이고야만 범인을 발란더는 어떻게 뒤쫓을지....나는 너무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 땀냄새보다 더 퀴퀴한 살인사건을 쫓는 형사의 두 눈은 붉었다. 동료의 죽음과 바로 그의 눈 앞에서 죽어간 소녀의 복수를 멋지게 해 주길 기대하는 독자의 앞에 선 발란더의 어깨는 무거울 수 밖에 없다. 이 시점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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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0-16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지 좀 되긴 했는데, 이 시리즈 넘 좋아해요 ..^^
책 디자인도 맘에 들고 , 미친 가독성 아닌가요?

마법사의도시 2016-10-17 17:13   좋아요 1 | URL
정신없이 읽고 있어요. 몰입도 최고입니다
이제 몇 권 남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죠~^^;

[그장소] 2016-10-17 17:36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에 새로 번역되서 들어온 사이드트랙만 읽으면 되는데!^^

마법사의도시 2016-10-17 17:43   좋아요 1 | URL
<사이드 트랙>도 멋집니다. 지난 주에 읽었는데 정신줄 놓고 읽었어요 ^^

[그장소] 2016-10-17 17:46   좋아요 0 | URL
전 아직인데 , e - book 으로 볼까 , 어쩔까 ..고민중예요 .. ㅎㅎㅎ 이 하얀암사자 . 미소지은 남자 .방화벽 . 다섯번째여자 .등을 다 책을 가지고 있으면 망설임없이 사서 봤을건데 , 대출해봐서 ..

마법사의도시 2016-10-18 14:44   좋아요 1 | URL
하얀 암사자와 방화벽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재미있나요?

[그장소] 2016-10-18 17:09   좋아요 0 | URL
하얀 암사자 ㅡ이건 인종차별을 다룬 국제적사건, 이때부터 헤닝만켈이 원래 드러내고 싶어한 주제의식이랄까 ..그게 여기서 처음 잘 보였다고 기억하거든요 . 제3세계 ( 이 표현도 옳지않지만) 약소국이죠 . 아프리카같은 , 나랄상대로 강대국 미국, 영국등이 저지르는 일을 그려내기시작. 다른 눈을 갑자기 개안한 기분 였던거 같아요 . 이책 읽었을때 .. 방화벽도
그때 ATM 으로 이런 거대사기가 가능하다는 발상자체에 놀라고, 아주 작은 단서로 시작하는 것에 더 놀라고 , 그랬던거 같아요 .. 기억이 대체로 맡는지 자신없지만 ..읽어도 후회없을 작품들 , 임에 분명해요!^^ 전 당연 좋았고! ㅎㅎ
 
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지음, 전은경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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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었다.

"손가락으로 사람의 창자를 이리저리 찌르려고 공부하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사람 몸을 여기저기 가위질하면서 인생을 보내고 싶다며 외과의사가 된 남자.

배신당할까 봐 두려워 먼저 배신하고 그녀의 인생에서 도망쳤다가 정확하게 37년만에
예순 여섯의 나이에 병들어 찾아온 예순 아홉의 그녀를 돌보게 된 남자.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에 사는 그녀의 딸을 처음 만난 날 "네 아버지야"라고 소개된,,,
평생 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다가 인생의 어느 날 중년의 딸이 생겨버린 남자.

이 모든 경우의 수에 속하는 남자가 동일인물 .... 단 한 남자다. 범죄소설이겠거니하고 읽기 시작한 <이탈리아 구두>는 이렇게 엉뚱한 관계속에서 시작된다.

 

독특하게도 그들 모두는 특이한 인생을 선택했다. 홀로 섬에서 사는 삶을 택한 남자나 미혼모로 딸을 낳은 후,  평생 애증의 관계로 지내고 있던 여자, 부모와 동떨어져 숲에서 살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택한 이웃들과 더불어 자유롭게 히피처럼, 집시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딸. 평범한 인물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소설 속에서 묘하게 위로받게 되었다면 나는 이상한 독자일까.

그들은 완벽하지 않았다. 수다스럽지도 않았으며 과거의 망령에 어느 정도는 잠식당한 채 살아간다. 늦은 화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마저도 세련된 화해의 형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투박성이, 모자람이, 완벽하지 않음이 도리어 날 것 상태의 인생처럼 느껴져 낯설지 않았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순간도 있겠지만 다른 이에게는 민폐를 끼치며 살기도 하고, 사과의 타이밍을 놓쳐 '에라이 모르겠다'는 식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건 인간이라면 한번쯤은 경험해봄직한 일들이 아닐까. 크든 작든간에.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고 책임져야하는 순간도 있다.

37년 전 남자가 저지른 도망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여인은 그를 원망하기 위해 수소문해서 찾아왔다기 보다는 딸의 존재를 알려주고 그의 곁에서 오랫동안 마음에 묵혀 왔을 체증같은 미움을 스스로 내려 버리려고 온 듯 했다. 그런데 남자가 잘못을 저지른 건 '사랑'앞에서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12년 전, 외과의사 시절 촉망받던  수영선수 앙네스 클라르스트룀의 팔을 잘라 버렸다. 고작 스무살이었던 그녀의 반대쪽 팔을. 수련의가 잘못된 팔을 씻고 수술 준비를 한 오류를 눈치채지 못했던 그는 수술 한 달 뒤, 사회복지부로부터 고발당했다. 어깨 통증이 있던 팔도 재진찰 결과 절단할 필요가 없다는 소견이 나오면서 더이상 수술대에 설 수 없었다.

 

 37년 전에도 도망쳤던 그는 마찬가지로 12년 전 수술과실에서도 도망쳐 섬으로 들어왔다. 이후 조용히 홀로 살고 있던 그에게 하리에트가 찾아오면서 앙네스와도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일까. 많이 늦긴 했지만.

 

묘하게도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고난 상태와 비슷했다. 이상하게도 위로받는 느낌. 희안하게도 치유된 느낌. 그런 분위기가 솔솔 풍겨온다. 민트색 표지의 북유럽 작가 소설에서. 이전에 그가 썼던  소설들과는 사뭇 달랐던 <이탈리아 구두>는 서툴고 비겁했던 어른이 등장하지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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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트랙 발란데르 시리즈
헨닝 망켈 지음, 김현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같은 두께의 책이라도 담고 있는 내용에 따라 읽는 속도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매년 2권씩 읽고 있던 '제프리 디버'의 추리소설의 번역본 출판이 주춤한 가운데 그처럼 공들여 쓴 크라임 소설을 찾다가 발견한 작가가 "헨닝 망켈"이다. 아, 북유럽 작가 중에 이토록 걸출한 필력을 지닌 작가를 왜 놓치고 있었지??!!! '요 네스뵈','스티그 라르손'의 작품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느꼈던 것과 동일한 희열을 느끼게 만든 헨닝 망켈. <불안한 남자>,<빨간 리본>,<이탈리아 구두>,<불의 비밀>에 이어 5번째로 읽게 된 그의 소설은 밤을 꼴딱 새게 만들기 충분했다.

 

 

동터오는 새벽녘, 다크서클은 허리까지 내려 앉고 두 눈은 시뻘겋게 충열되었지만 심장만은 벌렁벌렁 뛰게 만든 문제의 화제작 <사이드 트랙>은 설렁설렁 읽을만한 소설이 아니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해도 좋을 복지국가 스웨덴이 현재 봉착하고 있는 문제점들과 나날이 흉악해지는 범죄를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아 '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 잔혹해져가야만 하는가?'를 함께 한탄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세상이 원래 그렇지 뭐,,,가 아닌 함께 고민하게 만들고 다같이 각성하게 만들어 결국엔 이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기를 희망하는 작가의 메시지를 엿 본 것 같기도 하고.

 

 

 

같은 두께의 책이라도 담고 있는 내용에 따라 읽는 속도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매년 2권씩 읽고 있던 '제프리 디버'의 추리소설의 번역본 출판이 주춤한 가운데 그처럼 공들여 쓴 크라임 소설을 찾다가 발견한 작가가 "헨닝 망켈"이다. 아, 북유럽 작가 중에 이토록 걸출한 필력을 지닌 작가를 왜 놓치고 있었지??!!! '요 네스뵈','스티그 라르손'의 작품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느꼈던 것과 동일한 희열을 느끼게 만든 헨닝 망켈. <불안한 남자>,<빨간 리본>,<이탈리아 구두>,<불의 비밀>에 이어 5번째로 읽게 된 그의 소설은 밤을 꼴딱 새게 만들기 충분했다.

 

 

동터오는 새벽녘, 다크서클은 허리까지 내려 앉고 두 눈은 시뻘겋게 충열되었지만 심장만은 벌렁벌렁 뛰게 만든 문제의 화제작 <사이드 트랙>은 설렁설렁 읽을만한 소설이 아니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해도 좋을 복지국가 스웨덴이 현재 봉착하고 있는 문제점들과 나날이 흉악해지는 범죄를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아 '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 잔혹해져가야만 하는가?'를 함께 한탄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세상이 원래 그렇지 뭐,,,가 아닌 함께 고민하게 만들고 다같이 각성하게 만들어 결국엔 이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기를 희망하는 작가의 메시지를 엿 본 것 같기도 하고.

 

 

 

 

 

헨닝 망켈에 열광하게 만든 발란데르 형사 시리즈 중 하나인 <사이드 트랙>은 한 십대 소녀가 샛노란 유채꽃밭 한가운데서 발란데르가 지켜보는 가운데 분신자살하는 엽기적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소녀는 흑수저로 태어난 남자 페드로가 8년간 함께한 아내를 잃은 날 얻게 된 귀한 딸이었다. 그런 소녀가 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멀리 떨어진 스웨덴의 유채꽃밭 한가운데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었을까.

 

 

소녀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수사를 펼치던 발란데르 앞에 펼쳐진 또 한 건의 사건은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 연쇄살인사건이었는데 추후 두 개의 사건은 하나로 묶여 그 추악한 진실을 토해내게 되지만 결과를 도출하기까지 그는 먼 길을 돌고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전직 법무부장관, 유명 미술상, 폭력적인 가장, 기업사냥꾼,,,,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살인자가 이들을 한 카테고리에 묶게 된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광범위하게만 보이던 조각들이 발란데르의 수사를 거치면서 한데 모아지기 시작했고 비록 제목처럼 옆길로 둘러오긴 했지만 결국 한 지점에서 뭉쳤다. 추악한 어른들의 놀이개로 짓밟힌 소녀들의 지난날이 밝혀지면서. 열네살 소년의 행동과 늙은 남자들의 지저분한 지난날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잔혹한 쪽일까. 무엇이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소녀들의 불행도 가슴아팠지만 알콜홀릭 엄마의 뒤에 숨어 벌벌 떨고 있던 꼬맹이의 신세도 안타깝긴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두려워 스스로 제 눈 알을 빼 버리려했다니....대체 낳아놓고 학대할거면서 아이는 왜 낳은 것인지......! 부모도 인간도 되지 못한 채 힘만 자란 성인 남자가 가정과 사회에 얼마나 해악적인 존재인지 이 소설은 잘보여주고 있었다.

 

읽다 보니, 순서대로 읽지 못해 시리즈의 끝부터 읽게 되어 버린 "발란데르 형사 시리즈"는 몇 번째부터 손에 쥔다해도 그 재미를 보장할 수 있는 멋진 범죄 소설임에 틀림이 없다. 치밀하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았고 문학성이 뛰어나면서도 사회를 비판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래서 스릴러 장르는 이제 북유럽 작가의 소설을 찾게 된다. 자꾸만.

 

 

 이제는 '믿고 보는 시리즈'가 되어버린 '발란데르 형사'이야기는 물론 그의 전 작품을 다 읽게 될 때까지 그 읽기를 멈추고 싶지 않아졌다. 67세의 이른 나이로 작년에 별세한 작가의 명복을 빌면서...더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없게 되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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