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여자 - 개정판 발란데르 시리즈
헤닝 만켈 지음, 권혁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나비효과'일까. 우연히 발생한 하나의 살인이 억눌려 있던 키를 망가뜨려 버렸다.

기폭제가 되어 연쇄살인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다. 물론 수녀원에 잠입해 외국인 수녀넷과 나이든 여행자 한 명을 죽인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이날 그들이 알제리에서 저지른 일이 무엇의 시작점이 되었는지.....!

 

 

 

 

이번에도 헤닝 만켈이다. 나를 놀라게 만든 필력의 작가는. 대중성과 작품성은 평행선을 달릴 때가 많은데, 그의 작품은 그 두가지가 알차게 부합되어 있다. 그래서 놀랍다. 왜 그동안 그의 소설을 읽을 기회가 없었던 것일까. 트릭이나 반전이 없어도 결말이 시시하지 않았고 범인의 윤곽을 처음부터 드러내고 시작하는데도 불구하고 시시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경찰의 더딘 수사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원망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그들이 영웅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 수사 과정을 주의깊게 바라보며 사회범죄로 국가가 병들어가는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진배없다는 점까지 시사하고 있다. 부정과 부패, 폭력의 진화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감정이 무뎌져가는 것이 더 큰 문제임을 지적해내는 소설이 바로 헤닝 만켈의 작품들인 것이다. 그래서 범인이 누구인가? 그는 왜 살인을 이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보다 그 과정을 읽는 동안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나의 생각'들이 더 중요해진다. 특이하게도 채 10권이 되지 않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참 많은 생각들에 잠겼더랬다. 

 

분명 몰입도는 최고인 작품이지만 뉴스를 보며 그냥 흘려 보았던 것과 달리 헤닝 만켈의 소설을 읽으면서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효과를 내는 크라임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 그 재미보다 범죄의 파장을 염려하게 된 소설을 읽은 기억은 없다 .그래서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이 작가의 소설은-.

<다섯 번째 여자>는 국내 외국인을 몰아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인을 성스러운 임무로 받아들인 알제리 남자들의 살인으로 시작된다. 이 때 살해되었던 여인의 딸에게 어느날 도착한 편지 한 묶음은 왜 그녀의 어머니가 알제리 국가로 인해 익명의 '다섯번째 여자'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려주기에 충분했고 책의 제목이 왜 '다섯번째 여자'인지, 왜 중요한 의미가 될 수 밖에 없는지 알려주며 시작된다.  1993년 8월 20일..

 

 

78세의 시를 쓰는 노인, 아프리카로 '난초'를 보기 위해 떠난 꽃집 주인, 대학의 보조연구원이 왜 죽창에 찔려 죽고 나무에 목매달렸으며 호수에 내던져져 익사하게 되었는지를 수사하면서 그들이 찾아낸 키워드는 '용병'과 '여성을 향한 폭력'이었다. 그래서 용의자는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게 된다. 우리는 폭력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가정내 폭력, 사회적인 폭력, 집단적인 폭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폭력의 폐해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다섯번째 여자>에서도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진 않았다. 다만 '이대로 두어도 좋은가'라는 의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독자 스스로 내뱉게 만드는 영리함을 보여줄 뿐이다.

 

악인에 대한 정의는 애니메이션에서처럼 칼같이 정의내려질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은 어느 일면을 보고 있느냐에 따라 나뉘게 되며(희생자들의 보여진 삶처럼) 살인자라고 해서 그 사연까지 악하진 않다는 사실을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다만 '폭력에 대한 응대가 폭력'이어서도 안되며 여기에 절대 익숙해져서도 안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각성하게 되었다. 재미있게 읽고 성찰하게 만드는 힘을 얻을 수 있어 좋은 헤닝 만켈의 작품을 계속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이제 몇 권 남지 않았다.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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