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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평점 :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의 유쾌함을 갈아치울 소설이 나타났다. 박연선 작가의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를 읽으며 궁금함 보다는 '넌 해낼 수 있어!!'응원하게 만드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했는데 대입실패 후
가족에 의해(?) 외딴 시골 할머니 집에 버려진 무순은 할매랑 함께 기어코 일을 내고야 말았다.
드라마 <청춘시대>의 작가에게 이토록 유쾌한 웃음코드가 있었다니. 대체 옆구리에 나왔단 말인가!!! 이런 엉뚱발랄함은....!
자칫 납량특집으로 변질 될 수 있었던 이야기는 게으른 손녀와 집요한 할매 캐릭터로 인해 재미에 재미를 더하고 있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는
산모퉁이가 아홉 개라서 이름 붙여진 '아홉모랑이'에 살고 있는 홍간난 할머니에게 어느 날 손녀가 맡겨지면서 시작된다. 강무순이라는 다소
순박해뵈는 이름을 달고 21년을 살아온 그녀가 15년 전 어느날 마을에서 한 날 한시에 사라진 네 명의 소녀 사건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야기는
탄력을 받기 시작하는데, 동갑내기도 아니고 공통점도 전혀 없었던 그녀들은 왜 같은 날 사라져야 했던 것일까! 무순의 궁금증은 독자의 궁금증과
일치했다.
하필 마을 최장수 노인의 백수 잔칫날, 어른들이 몽땅 온천 여행가서 마을이 텅빈 날 단체로 사라진 네 명의 소녀. 경찰조차 찾지 못하고
포기한 그들을 무순이 찾아냈다. 살아있는 쪽도, 죽어버린 쪽도.
그리고 짙은 컬러로 이야기 중간중간에 짧게 삽인된 또 다른 이야기인 '그 남자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스물세 살 때부터 로리타 컴플렉스에
휩싸여 있지만 겉으로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듯 정상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다는 남자의 고백은 '나는 죽는다'로 이어졌다.
손녀가 할매의 집을 방문한 여름동안 짧게 펼쳐진 이야기는 영화 <집으로>처럼 향수에 젖을만큼 서로의 추억을 쌓는 이야기로
진행되지 않았다. 수상해 보이는 부부를 미행하다 고령의 할매는 멀미에 시달리기도 했고 당연히 죽었을거라 여겼던 소녀가 버젓이 살아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는가 하면 살아주었으면 한 꼬맹이는 무너진 동굴 속에서 백골로 발견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에서 누구나 칭찬하던 종갓집 바른 소녀의 숨겨진 사연까지....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사정을 담고 있지만 그 시선이 할매와
손녀여서 바닥까지 무거워지진 않았다. 한없이 따뜻했던 그들의 시선이 있어 하드보일드가 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