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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BOOn 7호 - 2015년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 편집부 엮음 /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월간지)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 지리상 가장 가까우면서 정서적으로 가장 먼 나라가 '일본'이라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아주 비슷한 문화들이 엿보여
좀 가깝게 느껴지다가도 '독도 = 다케시마'라고 부른다거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들의 정치적인 성향, 몇몇 이해 안가는 문화적인
부분들 탓에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항상 아예 문화적 코드가 달라 그 다름을 일찌감치 인정해버린 아메리카보다 더 멀리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내게 매월 15일 격월로 발간되는 [BOON]은 다시 그 간격을 좁힐 수 있는 작은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벌써 7회. 꽤나 읽을거리가 많아 신나게 펼치게 만드는 잡지 속에는 겨울이 잔뜩 들어 있었다.여전히 화산활동의 영향을 받아 온천여행을 즐길
수 있을만큼 온천지역이 산재해 있는 일본에서는 비단 벳부와 유후인만이 유명한 지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벳부는 일본에서 제일의 용출량을
자랑하는 온천도시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운 우미지고쿠, 성분이 조금씩 다른 8개의 온천 지역인 벳푸 핫토, 역사가 오래된 지고쿠메구리 등등을 둘러
볼 수 있고 고젠인, 길린코, 아르테지오 등을 구경할 수 있는 유후인도 다녀오기 좋은 온천 지역이다. 특히 특집기사로 실린 '일본인과
온천문화'를 읽다보면 촤초의 온천인 유노미네는 세무천왕 당시 수행자들의 부정을 쫓는 공간이었으며 이로인해 고대 일본에서는 온천신사의 제신에게
제사를 시행하기도 한다는 재미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9세기에 이르러서는 불교 포교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온천이 12세기에 이르러서는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어 현대의 입욕문화가 이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짐작케 만든다. 온천 투어리즘이라는 주제하에 근대화, 정치학, 기행문
등으로 나누어 쓰여진 글의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그 유래를 알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읽는 내내 그 어떤 상식서적을 읽을 때보다 더 흥미롭게
읽어냈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대한제국시절 이미 수학여행을 실시 하고 있었다는 우리네 수학여행에서부터 충성심 함양을 위한 정치적 계략으로 행해진 조선으로의
수학여행을 감행한 제국주의 시절 일본에 이르기까지 여행이 그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보는 시선과 관점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갑자기 서글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저 즐기면서 그 느낌을 향유할 수는 없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서글픔도 잠시 접게 만드는 페이지가 있었으니 '겐지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었던 내 앞에 나타난 '겐지모노 가타리의 장편화'라는
글이었다. 신분의 위계가 엄격했던 시절 후궁 기리쓰보를 사랑했던 기리쓰보 천황이 겐지를 낳은 채 연인이 죽자 그녀와 닮은 여인 후지쓰보를
맞아들이는 것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하지만 최고의 갈등은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인 후지쓰보를 사랑하게 된다는 점이며 그 과정에서 아들 겐지의
아이를 낳은 후지쓰보가 황자를 낳고 그 아들이 왕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죽어도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들의 왕권을 지켜주기 위해
출가를 해 버린 후지쓰보로 인해 쓸쓸한 마음을 갖게 된 겐지는 그녀의 친조카를 10살 무렵부터 저택으로 데려와 함께 기거하며 이상형의 여인으로
키워낸다는 이야기이다. 어찌보면 사랑의 완성같고 어찌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이 이야기 속에 '우연'이 등장한다. 글쓴이의 말처럼 우리는 가끔
서로 닮은 사람들을 만난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게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리는 강력한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앞 페이지에서 느꼈던 쓸쓸함과 서글픔은 싹 잊혀지고 없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계속 읽기를 진행하던 도중, 특이한 페이지에서 그만 눈길을 사로잡혀 버렸는데, 소세키와 시키의 우정을 다룬 페이지였다.
p154 둘 다 누구하고나 쉽게 친해지는 성격은 아닌, 다소 예민하고 까다로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둘을 하나로 묶어주는
무언가가 있었으니 바로 예술/문학/시와 소설에 대한 물음이었다 에서 떠올려지는 친구가 둘 있었다. 그 시절 소세키와 시키처럼
밤새는 줄로 모르고 문학과 문화에 대해 열정을 탐하고 토론에 침이 마를 줄 몰랐던 내 어린날의 친구 하나와 지금 내 곁에서 꾸준하고 문화적
탐미를 함께 추구하고 있는 친구 하나. 전혀 다른 타입이지만 다소 까다로운 내 친구가 되어 곁에서 함께 공감을 형성해주는 고마운 벗들. 그래서
유명한 문인들의 우정의 마음을 나 역시 십분의 일, 백분의 일은 체감할 수 있을 듯 하다. 그 마음이야 똑같지 않겠는가.
그 외에도 드라마 <어젯밤 카레, 내일 빵>,제 132회 아쿠타가와 상 외 여러 상들을 수상한 작가 아베 가즈시게와의 인터뷰,
하루키가 쓴 '여자 없는 남자들'에 대한 서평 등등 너무나 읽을거리가 많아 활자중독 상태인 나를 거의 혼수상태로 이끌었던 [BOON]은 도중에
언급했던 지금의 내 소중한 벗에게 전달하여 이 내용으로 또 몇날밤을 지새우며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상상하게 만든다.
요즘 책값이 좀 비싸다. 물가대비 출판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가격 조차 저렴할지 모르겠지만 연봉은 발목잡혀 있고 책값은 예전과 다른
요즘, 그래도 문화 생활을 하고 싶어 책을 고르는 독자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같은 가격이라고 해서 내용도 다
똑같이 알찬것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격월간지 [BOOM]은 가격대비 정말 알찬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착한 내용이 가득해 흐뭇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게 만든다. 이름 그대로 '유쾌한 일본문화 읽기'를 한 권으로 끝낸 기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