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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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적인 살인도 아니고 이왕이면 죽일꺼 화끈하고 완벽하게 뒤처리를 했어야지......! 읽는 내내 허술함에 불안불안하더니 결국 그들은 꼬리를 잡혀 버렸다.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을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지만 들킬까봐 걱정되는 그 마음은 같아서 꽤 두꺼운 양인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오쿠다 히데오의 [나오미와 가나코].

 

9만 엔짜리 월세 맨션에 살고 있는 나오미는 4년제 대학 문학부를 졸업했지만 원하던 큐레이터가 되지 못하고 '아오이 백화점' 외판부에서 7년째 근무 중이다. 당차고 딱 부러진 성격이지만 사회생활을 해 나가며 고집을 꺾고 비위를 맞추며 직장인 모드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백화점에 중국인 구매 고객들이 밀물처럼 들이닥치고 그 과정에서 고가의 시계를 도난 당했다.

 

그 여자다!!!

 

뻔뻔스러울만큼 당당했던 그 중국 여자. 첫인상은 분명 중요하지만 나쁘게 시작했다고 나쁘게 인연을 이어갈 필요는 없는 법. 뻔뻔했던 이면에는 사회생활 속에서 좌절감을 맛봐야했던 나오미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전해줄만큼의 청량한 그 무엇인가가 있었고 도난을 계기로 서로 윈윈하는 관게를 맺게 된 나오미는 종종 그녀의 가게에 들리며 차이나타운에 입지를 넓혀나가게 되었다.

 

나오미와 대학동창인 가나코는 대형 가전업체에서 일하다가 동료의 소개로 만난 은행원과 결혼하면서 전업주부가 되었다. 생활은 넉넉했지만 행복하진 않았다. 남편의 폭력 때문에.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고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흔들어대는 것은 물론 수시로 몸에 멍을 새기면서 가나코는 아무도 모르게 홀로 가정내 폭력을 견디며 집 안에서 시들어가고 있었다. 종종 들리던 나오미에게 들키기 전까지는

 

P 127     이것은 합당한 도리인가, 무리인가

 

폭력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동창의 불행을 볼 수 없어 적극적으로 살인을 돕는다는 설정이지만 이 역시 이해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감정이 이입되었다고 해도 제 3자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가나코와 함께 그녀의 남편을 죽이고 산에 묻어 버렸으며 비슷하게 생긴 중국인 남자에게 여권을 쥐어 중국으로 출국시켜 버렸다. 그리고는 끝???

 

우발범죄도 아니고 계획범죄 치고는 너무나 간단하고 쉬웠다. 이럴리가 없는데..... 급히 먹는 밥이 체할 수 밖에 없듯 그녀들의 살인은 시누이에 의해 의심을 샀고 종국에는 그날의 행적들이 낱낱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녀들은 도망쳤다. 멀리멀리-.

 

두 여자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만 듣고 나는 이야기가 <델마와 루이스>와 비슷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나오코와 가나코의 이야기는 달랐다. 이해할 수 없는 설정들이 몇몇가지 눈에 띄이긴 했지만 두께에 비해 가독성이 좋아 신나게 읽혔고 리아케미, 나이토, 요조 등등 캐릭터가 분명한 조연들이 등장해 재미를 가미하고 있다. 다만 좀 더 철저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두 여자의 살인계획.

 

가나코는 몰라도 사회생활 7년차의 순진하지 않은 나오미의 경우에는 여러모로 더 신경썼어야 했다. 계획 전에는 그래도 이것저것 재어 보더니 중국인 린의 출국 이후에는 너무 안심해 버린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람을 죽였는데, 태연할 수 있을까. 들킬까봐 조마조마해야하고 혹시 빠뜨린 것은 없는지 조심해야했으며 도심 곳곳에 CCTV는 당연히 고려되어졌어야만 했다. 도심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이라면. 그래서 아쉽다. 미야베미유키의 2000년 작 <화차> 보다 더 주의 깊지 못했다. 이 두 여인은.

 

죽여 버릴까? 네 남편??

 

친구가 물어온다면 "YES"로 답할 여성들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들에게 이 소설은 어떤 느낌으로 읽힐까.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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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규어 아티스트 쿨레인의 토이 스토리 - No Life without Toy
쿨레인 지음 / 이덴슬리벨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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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주변의 만류와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는 뚝심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어디서도 배울 수 없어 홀로 시작해 선구자의 길을 걷게 된 사람의 운명이야 더 말할 것이 무엇이 있으랴.

 

 

P27  직접 나서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피규어 아티스트 쿨레인의 말이다. 그는 비보이를 컨셉으로 한 아트토이 시리즈 '몬스터즈 크루'를 만들면서 피규어 아티스트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고 후판매가 아닌 프리오더를 받으며 작업하고 있는 프로페셔널 아티스트다. 나이키, 리복, 푸마, 컨버스, 삼성,

LG, 네이버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기업들과 손잡고 작업해왔으며 홍콩, 베이징, 베를린, 런던, 이탈리아 등등 해외 토이 전시회에서도 소개되며 각광받아왔다. 28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서울행을 감행했던 젊은 남자의 인생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발견하면서 색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결국 그는 피규어아티스트가 되어 하나부터 열까지 손으로 만들어가면서 그 정보를 공유까지 해가며 성장해왔다. 홀로 독보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닌 함께 즐기기 위해 걸어온 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왜 하냐?' 고는 묻지만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냐?'고는 묻지 않더라고 과거를 회고하는 그에게 피규어는 살아 움직이는 대상이다. 와이어를 이용해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축구공을 두고 다투는 모습의 피규어(2010작)를 전시하면서 그저 유리나 플라스틱 통 속에 뻣뻣하게 서 있는 판매용 피규어의 모습들을 우리네 머릿 속에서 점점 몰아내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쿨레인 스튜디오에서 멤버들과 함께 고민하고 작업하고 작품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처음 시작보다 행복한 현재를 살고 있는 그가 꾸는 꿈이 여전히 'ING'상태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스타워즈 패러디 작품들을 계속 구상할 계획이며, 레드불 스트라토스 프로젝트의 경우도 작업을 추가하면서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히고 있었다.

 

 

 

P23  누구나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다보면 어떤 계기로 한 단계 올라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2.5인치, 5~6인치, 10인치 정도가 대부분이라지만 기업홍보나 개인 소장용으로 18인치 이상의 빅사이즈를 주문하는 사례들도 있는 것을 보면 세계적으로 피규어 시장은 점점 확대되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어떤 분야든 전문가가 되면 그 누구도 더이상 그의 인생을 흔들지 못한다. 불황의 시장 속에서도 뚝심있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사람에게 세상은 그 나름의 보상을 준비해두고 있다는 의미다. 쿨레인, 이현우. 그는 특이한 길을 걸어왔다. 10년간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온 분야가 여전히 생소한 피규어의 세상이다. 매니아가 늘어나고 활용도와 가치도 증가했지만 여전히 개척해 나가야 할 시장은 크고 넓다. 불모지를 벗어난 분야에서 1세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대한민국 최고의 피규어 아니스트를 향한 세상의 관심과 칭찬은 그래서 그 의미가 깊고 또한 벅찰 수 밖에 없다.

 

원작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조형만 하는 사람을 '스컬쳐'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는 토이 아티스트나 디자이너와는 그 개념이 상이하다고 하는데 아트 토이란 아티스트나 디자이너가 만든 순수 오리지널 토이를 일컫는다고 한다.  그는 스컬쳐가 아닌 아트 토이 아티스트로 작업하면서 혼자 어렵게 익혔을 그 과정을 책을 통해 오픈했다. 그가 작업해온 피규어 색인을 전시회 둘러보듯 구경하면서 소장품이나 전시작품 이상의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었는데 이는 아마 그가 하나하나 수작업하는 과정을 오픈한 페이지를 먼저 보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희열이 아니었을까 싶다. 

 

좋아하니까 지금까지 해왔고 오래 하다보니 잘하게 되었다는 인터뷰 답변은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했'고 정작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선택하기를 망설이는 젊은 세대'에게 하나의 톡 쏘는 결론을 만나게 만드는 도화선이 될지도 모르겠다. 디테일하게 정교한 작업을 하는 그의 큰 손이 만들어온 1만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모든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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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로큰롤
오쿠다 히데오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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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오쿠다 히데오는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날 펼쳐보기 좋은 책 <공중그네>를 집필한 작가다. 유쾌하다 못해 배꼽이 발바닥까지 내려가는 듯한 현기증을 느껴야했던 독특한 정신과 의사가 보여주는 웃기는 힐링은 '내게도 저런 주치의가 있다면 결코 우울할 날이 없을거야'싶어질 정도여서 살짝 부럽기도 했던 작품이다. 그리고 <남쪽으로 튀어>. 한국버전의 영화까지 재미나게 본 작품이라 잔상이 오래 남았다. 하지만 반대로 <올림픽의 몸값>,<꿈의 도시>,<인 더 풀> 등은 그다지 나와 코드가 맞지 않아 읽긴 했어도 기억의 창고에 며칠 머물지 못했다.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라 그의 신작이 나왔다고 하면 의례 다른 이들의 서평이 올려지길 기다렸다가 몇몇 내용을 읽어보고 구매를 결정하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그는 닥치고 믿고 바잉하는 브랜드네이밍 작가는 아니었던 것. <시골에서 로큰롤> 역시 처음 표지를 보며 이번엔 로큰롤? 이네 싶었지만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라고 해서 놀랐다. 1972년부터 1977년까지.....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시간에 소년기를 보내며 그는 어떻게 록음악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록을 만나지 않았다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 이라는 그의 고백으로 말미암아 더 궁금해져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p9  나는 현재 폭주 중이다

 

하루 평균 두 장씩 반년 사이에 300장의 아날로그 레코드를 사 모았다고 첫문장을 던진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작가에게 첫문장이란 출사표인 동시에 작품 전반에 걸친 줄거리의 첫 뜸이니까. 그래. 폭주중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창작의 삶을 살아낼 수 있겠는가. 그 열정이 글을 쓸때만 훅 지폈다가 이후 인간의 삶에서는 절전모드가 되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또 인간이라고 불리는 것이리라. 몰입하고 폭주하고 남들이 보기에는 적정선을 좀 넘는다 싶을 정도지만 오쿠다 히데오 답다 싶어진다. 1년 넘는 신문 연재를 잘 마무리한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치고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선택이 아닌가.

 

추억담 속에서 그는 진중하기보다는 그 나이때의 다른 소년들처럼 알몸의 여인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으며 수업료로 레코드 구매를 했고 밀린 체납금을 파친코로 메우려고 했던 엉뚱한 면모를 부끄럼 없이 고백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길을 택한 그의 주인공들의 성향은 그 자신 속에 내재된 것들이었음을 <시골에서 로큰롤>을 읽으며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란 독자는.

 

그저 재미있게 썼다고 생각했던 그 소설들이 실은 가장 자연스럽게 쓰여졌던 것. 무엇보다 그 사실을 발견하고나서는 무척이나 유쾌해져버렸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 있을까? 했더니.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숨구멍이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이라는 곳에.

 

저마다 즐긴다는 행위를 특별히 어려워한다는 일본인에게 록은 '우리 지금 즐기고 있어요'라는 표식이라고 했던가. 후회가 많다는 스스로의 인생 중에서 가장 잘한 선택중 하나가 바로 로큰롤과 함께 어른이 된 것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애정을 에세이 속에 듬뿍 담아 독자 앞에 내어놓으면서 그 자신 역시 향수에 젖어 버린 것은 아닐까. 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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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팅 3
조엘 샤보노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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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팅의 본 의도를 파악하고 실패한 학생들이 어떻게 쓰여지고(?)있는지 알게 된 대학 새내기 '시아'는  몰래 대통령과 접선 후 그녀에게서 명령을 하달 받는다. 테스팅을 주관하고 있는 반즈 박사 일당을 제거하라는 것. 일국의 대통령이 일개 대학 신입생에게 살인을 명하는 일이라니...그녀가 스파이나 남파 간첩녀도 아니고 어떻게 나라의 고위직 인사들을 하룻밤 새에 10명이나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돌연변이 인간이라고 해도 하룻밤에 10명은 불가할 듯 한데.....

 

 

p170   지도자들은 완벽히 보장된 진실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야.

         할 수 있는 한 근거 있는 결정을 내리고 그게 최선이기를 바라는 것 뿐이야.

 

 

테스팅과 헝거게임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십대 소년소녀들을 서바이벌 존으로 내몰아 살아남는 강한 자만을 취한다는 그 테스트 방법은 비슷하다. 하지만 헝거 게임과 달리 테스팅은 시아가 지도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가족 곁에서의 삶이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어른들의 그릇된 판단들을 뒤집기 위해 대학으로 돌아가는 결심을 하는 부분이 달랐다. 스스로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 그리고 아군과 적군을 두고 냉정한 판단을 하기에 앞서 한발의 여지를 두고 지켜보던 시아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한다. 그리고 스스로와 동지들에게 물었다. 지도자의 올바른 판단에 대해.

 

기계를 만들고 고치는데 능력이 탁월한 그녀를 행정섹션으로 보내 지도자감으로 길러내려했던 어른들의 판단은 옳았다고 생각된다. 그녀에게 던져진 운명적 과제는 언제나 지도자의 그것이었으므로. 판엠에서 캣니스가 살아남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면 테스팅 센터에서 시아는 테스팅을 없애는 방법에 대해 몰입했다. 그것부터가 달랐다. 리더로서의 자질을 가진 두 소녀의 인생방향은.

 

테스팅을 독립적으로 주관하고 실패한 학생들을 제거해왔던 반즈 박사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된 2권을 지나 3권으로 넘어오니 이야기는 또 다른 반전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놀랍게도.

 

 

p319 세상일이란 게 꼭 우리가 바라는 대로 돌아가진 않지

 

어느 쪽이 진실일까. 테스팅을 없애기 위해 반즈 박사와 척을 지고 대항군을 조직했지만 그마저 반즈 박사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시아와 그녀의 친구들을 암살단으로 선택한 콜린다 대통령과 더 강력한 테스팅을 원한 대통령에 대항해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해가며 테스팅을 없애고팠다고 고백하는 반즈 박사. 과연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는 쪽이며 테스팅을 진정 없애고 싶어하는 쪽일까. 또한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실은 입시 거부로 제거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아는 반즈 박사의 도움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에게서 전해 듣게 되었다.

 

낙오자들을 보내 실험체로 쓰던 숨겨진 식민주였던 데카주를 대통령과 함께 둘러보았던 시아는 평화로운 고향에 머무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억누르고 행복을 뒤로한 채 마음이 원하는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젠 예전의 그 소녀가 아니었으므로. 달라졌고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 버린 시아는 그러나 반대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할 일이 아주 많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면서.

 

반즈 박사의 말대로 보통의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편을 택하고 만다. 제도가 잘 작동하니까 그냥 묵인하는 편이 편하다는 게다. 하지만 그 숨은 논리가 완벽하지 않고 순수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챈 후 변화를 위해 앞장서는 사람들도 있다. 시아처럼. 그들의 이름을 우리는 '리더'라고 부른다.

 

p301  당신이 판단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대답은 무엇입니까?

 

시아에게 주어졌던 질문이 책을 다 읽고난 내게 남겨졌다. 지금의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토수시티의 상황은 이야기를 다 읽고난 후에도 화두를 남겨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다른가.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며 매일매일을 살고 있는가. 라며.

 

p35 ​ 사람들이 다른 이의 지도력쪽으로 등을 돌린다면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의미가 없다

p36  대통령이란 자신 앞에 닥친 문제들을 이해할 만큼 영리해야할 뿐 아니라

       가능한 한 해결책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지시를 따르도록 고무

       시킬 방법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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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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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전지현이 출연했던 <설화와 비밀의 부채>속 두 소녀의 우정은 시간이 갈수록 묵혀진다. 물론 오해도 있었고 갈등도 있었고 서로의 삶이 달라진 부분들도 등장하지만 시대는 달라도 우리네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기에 두 소녀의 우정이 여인의 우정으로 변모해가는 것 역시 물흐르듯 지켜봐진다. 그 마음 그대로 읽히는 또 다른 소설 한 권이 이도우 작가의 <잠옷을 입으렴>이었다.

 

구성작가, 카피라이터 등으로 활동했던 저자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후 이종사촌간인 수안과 둘녕의 이야기를 담은 <잠옷을 입으렴>을 내어놓았는데 전작을 잃지는 못했지만 현재의 둘녕과 과거의 둘녕을 오가며 뱉어내는 추억들이 진한 진국맛이 나 전작 역시 훌륭하리라 짐작케 만든다.

 

첫문장은 꿈속 이야기로 시작된다. #7 꿈속에서 조용히 울었다. 슬픈 꿈이었다. 포플러 신작로를 따라 그 아이와 타박타박 걷던 시절, 등에 멘 책가방에서 필통 속의 연필들과 빈 도시락 수저가 달그락거리던 날들의 이야기였다 라고. 분명 눈으로 읽고 있는데 내 귓가에는 그 달그락거리는 수저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조용히 울었다에서 예상 할 수 있듯 아주 그립지만 이제는 함께 할 수 없는 누군가 혹은 그 시절의 이야기구나 싶어진다. 꿈처럼 시작된 둘녕의 추억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데 늦은 밤 조용히 몇몇이 없는 영화관에 앉아 무묵히 화면을 응시하듯 구경하게 만드는 소설은 그렇게 내 마음을 조금씩 적셔 나갔다.

 

기억속에 두고 온 사람. 둘녕에게는 이종사촌 수안이 그랬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재혼한 아빠에게서도 멀어져 외가에 와서 더부살이하게 된 둘녕에게 수안은 처음부터 살갑게 굴지는 않았다. 그랬던 둘의 사이가 쫀쫀해진 것은 장에서 둘녕의 손을 놓았던 수안의 마음속에 미안함과 함께라는 의식이 불어넣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으리라. 그렇게 고둘녕과 정수안은 둘도 없는 자매이자 친구가 되어 학창시절을 함께 해 나갔지만 둘녕은 외가에서 함께 살되 가족일 수는 없었다. 잊을만 하면 툭툭 붉어지던 "넌 가족이 아니야"라는 표식. 이모부의 외도, 막내이모의 가출, 대학을 그만두고 내려와 버린 외삼촌의 지난 역사를 함께 겪었지만 물과 기름이 한 컵에 담긴듯한 이질감은 그녀를 더 쓸쓸하고 외롭고 눈치 보게 만들었으리라. 더부살이. 그래서였을까. 대학을 보내주겠다는 외가쪽 어른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녀는 손재주를 살려 알바 및 취업을 선택했다. 그리고 얼마 후 글을 써오던 수안이 사라졌다. 그녀의 인생에서.

 

 

P127  근사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선 학교에 다녀서는 안되는 거라고.

        모든 사람이 똑같은 걸 배운다면 다들 똑같아지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혼자만의 독특하고 멋진 이야기를 지어내려면 엘리너 파전처럼 학교 따위는 가지 않고,

        먼지 가득한 다락방에서 종일 뒹굴며 놀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시절 소녀들의 감성은 물오른 꽃망울 같았다. 현재의 둘녕은 편지를 쓴다. 삼촌에게, 아빠에게, 외할머니에게, 이종사촌 웅이에게, 삼촌과 결혼한 숙모의 동생인 산호씨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들을 썼다. 어쩌면 고백일지도 모를 그 말들을 가슴으로 부치기 위해. 그녀는 마지막에 또 다른 고백을 덧붙이고 있다. 한때 내 것이었다가 나를 떠난 것도 있고, 내가 버리고 외면한 것도,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던 것도 있었노라고. 그녀에게 인생은 셋 중 어느 것에 속해 있는 것일까.

 

떠났다기 보다는 본디 둘이 하나였던 것 같았던 수안과 둘녕은 어쩌면 한 몸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추억들을 끌어안고서. 어린 딸을 두고 집을 나가버린 엄마를 둔 둘녕과 그 어느 것도 맞지 않아 사사건건 부딪히기만 하는 엄마의 딸인 수안.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그 길도 달랐던 그들의 공통점은 그것이 아니었을까. 엄마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

 

 

P343   엄마란 여자는 세 종류야. 낳고 키우거나, 낳고 버리거나, 낳고 키우다가 버리거나

 

그 중에서 드물게 예외인 엄마는 낳고 버렸다가 다시 찾아 키우는 거 라고 말했던 구절이 기억에 남았다. 사춘기 소녀들에겐 부모나 가족보다는 친구가 더 소중한 시절이긴 하지만 혼자인 소녀와 혼자가 편한 소녀의 우정은 너무나 절절했기 때문에. 자기 주장 강해 보이던 수안보다 조용조용하기만 했던 둘녕이 더 강한 쪽이었을까. 결국 끝까지 남아 생을 이어가는 것은 둘녕이었으니.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은 영원히 자라지 않은 채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말았다는 소설의 내용처럼 나의 기억 너머 어딘가에도 성장을 멈춰둔 채 남겨놓고 온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문득 그 기억을 떠올려보며 그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려 한다. 꿈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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