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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 CEREAL Vol.12 - 영국 감성 매거진 ㅣ 시리얼 CEREAL 12
시리얼 매거진.임경선 지음, 최다인 옮김, 선우형준 사진 / 시공사 / 2016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하얀 눈밭 위의 펭귄 한 마리. 그만 사람에게 일상의 모습을 들켜(?) 버렸다. 그런데 오늘은 도리어
녀석의 처지가 부러워진다. TV를 틀때마다 보이는 발암인물에 관한 뉴스에서 벗어나고 싶고, 엉망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깝고, 이런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독립투사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호통이라도 쳐 주었으면 좋겠고....마음이 엉망이 될 수 밖에 없다. 국민
중 누구 한 사람도 예외없이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상실감. 허탈감에 관해서만큼은.....!
마음을 조용히 다스리고자 <CEREAL / 시리얼>을
펼쳐 들었다. '한국어판'에 특별기고를 올린 '임경선 작가'를 만나 볼 수 있다고 해서 신청한 잡지였다. 하지만 묵직한 무게의 잡지를 가슴에
품어 보고서야 깨달았다.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몽땅 마음 속으로 파고들어버렸다는 것을.
그 첫
시작엔 '빛이 밝게 빛나려면 반드시 어둠이 있어야 한다'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명언이 등장한다. 그리고 마음을 묵직하게 가라앉혀주는 사진 몇장이 등장하고 이우환 화백의 파리
스튜디오 소개와 그 인터뷰가 이어진다. 딱 좋을만큼의 기사 길이와 깔끔한 편집 스타일. 다음 권도 빼먹지 않고 소장해야지라고 마음먹게 된다.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편집 스타일과 마주했다. 유치하지 않고 조잡한 군더더기가 없으면서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페이지들이라니....무엇보다
눈이 먼저 알아챘다. 몇 번을 다시 들춰 보아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실로 오랜만에 안압에서 벗어나 시원한 느낌으로 감상했다. 그림
보듯이....!

임경선 작가는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자주 전학을 다녔어야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외톨이일 수 밖에 없었는데 외롭고 쓸쓸했던 '혼자만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버텼다고 한다.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성장 배경이 훗날 글을
쓰게 한 것 같다'(P42)는 고백이 가슴에 가까이 와 닿았다. 또한
사람들과 지지고 볶으며 일하는 것이 너무 소모적으로 느껴져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직업을 동경했다(P52)는 마음까지 똑같아서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다시 돌아가면 그때처럼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참 잘 해왔던 20대 시절은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이지만 결코 돌아가고 싶은 시간은 아니다. 친구들이 밀물처럼 쓸려왔다 썰물처럼 쓸려가곤 했던 잦은 전학생 신분으로 살았떤 10대도 마찬가지.
물론 전학이 잦아 새 친구들과 사귀는 것에도 용감할 수 있었고 적응력도 또래보다 빨랐으며 늘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아
1년이면 몇 상자씩 꽉꽉 채워지곤 했었지만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10대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이 좋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이 즐겁고 내일이 더 좋을 거라는 믿음으로 눈을 뜬다.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삶이 추가된 그녀보다 나는 한결 가볍게 살아가고 있다. 그저 여섯 마리의 고양이들을 책임지면
되니까. 더불어 동네 길고양이 밥터 몇 군데만 잘 관리하면 되고. 그렇지만 1년에 한 번 2~3일씩 훌쩍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온다는 그녀보다
자유스럽지 못하게 살아온 듯 하다. 지난 몇 년간. 변명은 그랬다. 고양이 집사이므로. 하지만 잘 안다. 변명이라는 것을.
다녀오려고만 한다면 2~3일 즈음은 훌쩍 다녀올 수 있다. 가족과 함께 할 때는 일 년에 몇 번씩도 훌쩍 다녀오곤
했는데 독립한 이후, 어쩌면 나는 심리적으로 더 발목잡혀 살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깨달음을 임작가의 글을 통해 '아, 그랬네. 그랬어'라며
얻게 된 것이다.
정말 내 마음 같은 구절들이 많았고 비슷하게 작업하는구나! 싶어져 임경선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졌다. 예전 어딘가에서 '불행한 엄마보다는 부족한 엄마가 낫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또한 임작가의
생각이었다니....조만간 바쁜 일들을 처리해두고 임경선 작가의 책을 제일 먼저 찾아 읽어야겠다. 그 생각들이 공기방울 같아서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줄 것만 같다.
작가의 글 외에도 푸르름이 깃든 조드푸르,
분홍빛 선명한 자이푸르, 화려했던 강가 람의 세밀화, 가까이서 보니 더 고풍스러웠던 타지마할, 페로제도의 멋진 풍광, 꼭 물감으로 콕 찍어
그려놓은 듯한 새_퍼핀에 이르기까지...볼거리가 적당했다. 너무 꽉찬 읽을거리가 아니어서 도리어 더 괜찮았달까. 여백의 한지를 마주 대하듯 보고
넘긴 감성 매거진 <시리얼>이 불편했던 마음을 깔끔하게 씻어주었다. 보는 내내 시국을 잊고, 복잡함을 걷어낼 수 있어
좋았다.
역시
마음이 무거운 날엔 책이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