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짇고리 - 작은 상자에서 시작되는 따뜻한 삶의 이야기
송혜진 옮김, 무라야마 히로코 사진, 이치다 노리코 취재.구성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마음이 어진 사람도 부럽지만 솜씨가 야무진 사람도 참 부럽다. 특히 주변에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성격까지 조용조용해서 마음이 불편한 날 찾아가면 따뜻하게 맞아주어 더욱 더 좋다. 혼자 있고 싶지는 않지만 고요한 시간이 필요한 날, 그녀들을 찾게 된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네 어머니들은 왠만한 건 다 만들어서 쓰곤 했다. 당연했던 일인데,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해서 이젠 무엇이든 사서 쓰는 세상이고 보니 오히려 만들어 쓰는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 눈에 띄인다. 전문가, 베테랑, 파워 블로거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그녀들 외에도 주변을 돌아보면 손재주가 특별한 이웃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블로그이웃 중에서도 도자기를 빚으면서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을 수 있을 정도의 미니멀한 소품들을 만드는 이웃이 있는데, 그녀의 따뜻한 감성이 녹아든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꼭 한 겨울에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어 참 좋다!!

 

 

처음에는 수공예 작가들의 도안과 만들기 기법이 담겨 있는 줄 알고 책의 도착을 기다렸던 <나의 반짇고리> 속에는 기대했던 도안은 없었다. 하지만 배신감(?)이 들진 않았다. 일곱 개의 반짇고리에 담긴 세월, 그 손때, 일곱 가지 이야기가 얼마나 다정다감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자수공예가, 원단 작가, 아동복 작가 등등 손바느질을 좋아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소소한 오늘이 담겨 있어 오늘 하루 종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는 프라다를 신었던 최씨 여인과 사뭇 비교 되기도 했다.

 

 

 

"너무 무리하지 않고, 너무 부담 갖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한다(p35)"

 

 

 

항공 승무원(네덜란드 항공)으로 살다가 전업주부가 되어 자신의 교실을 열었다는 자수 공예가 오쓰카 아야코씨는 55세에 제 2의 인생을 연 케이스였다. 자수공예가였던 어머니의 솜씨를 물려 받았지만 승무원이 되어 넓은 세상으로 나갔던 아야코씨. 올해 예순 넷이라는 그녀는 "오십이 지나고부터, 지금까지 쌓아둔 저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젊었을 때의 조바심도 버릴 수 있었고.



그런가하면,
240년 이상되는 가옥에 살고 있는 스즈키 테루미씨는 71세지만 101세에 별세하신 시어머니의 뜨개질 솜씨를 여전히 그리워하며 살고 있었다. 낡디낡은 우유통도 물려 받은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곳에 단추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도 궁색맞아 보이질 않고 고풍스러워보인다. 앤티크하게.....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최고령의 바느질 장인은 80세의 도미나가 치카코 여사인 줄말 알았는데 등이 살짝 굽은 무라야마 후사에씨는 91세의 나이에도 자동차 시트를 직접 바느질해 만들고 있었다. 세상에!! 바늘 구멍이 작아 눈이 침침하고 손가락이 아프다고 핑계를 댄 지 사흘이 지나지 않았는데, 91세의 할머니는 어두운 눈으로 바늘을 부지런히 놀리고 계셨다.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할 일이다. 젊디젊은 나같은 사람은.....!


 

70세, 80세, 90세의 여인들의 손에서 멈추지 못한 바느질의 매력은 무엇일까. 새옹지마인 긴 인생을 겪어오며 곁에서 친구가 되어주었던 소중한 존재는 아니었을까. 하나를 완성해 놓으면 뿌듯한 마음에 종결! 이라고 외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태양이 뜨지만 내일도 태양이 뜨듯 그녀들에게서 바느질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을 거라 감히 짐작해 본다.

 

 

바느질을 하는 사람을 마음을 헤아려 본 일이 없었다. 그러고보면. 늘상 그들의 결과물만 보고 감탄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거기에 깃들여져 있는 숨결에 궁금증을 가져보려 한다. 그 작은 한땀, 한땀 속에도 개인의 역사가 스며 있고 그 작은 마디마디 마다 누군가의 지문이 쓸려 있음을 이제는 충분히 알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20대에 읽었어도 틀림없이 좋았겠지만, <나의 반짇고리>는 지금의 나이 때에 읽어도 참 좋다. 세월의 연륜이 그래도 한겹 더 덧입혀진 상태에서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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