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동화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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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가, 눈알이 이렇게 무섭게 느껴진 적이 또 있을까. 
오츠이치라는 작가는 출판사 북홀릭에 관심을 두면서 발견한 작가였다. 북홀릭이라는 출판사의 책들에 관심을 두면서 지난 주부터 그 출판사의 책들을 한 권씩 구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리플릿 한 장 속에는 중독되는 독서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읽고 싶은 책에 대한 광고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출판되지 않은 신간들도 있는 것 같았다. 리플릿에는 실렸으나 검색에는 뜨지 않는 책들이 절반이나 되는 걸 보면 특히 [고백]의 저자 미나토 카나에의 후속편이 빨리 번역되기를 바랬는데, [속죄]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불행히도 아직 출판된 것은 아닌 듯 하지만.

오츠이치는 "실종홀리데이"를 읽으면서 들어봤던 이름이긴 했지만 GOTH가 읽고 싶어 검색해 본 작가였다. 그의 또 다른 책 [암흑동화]를 읽으면서 솔직한 심정은 그 동안 눈알에 대해서 공포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점 정도였을 것이다. 눈. 언제나 달려있고, 언제나 끔뻑임 속에서 세상을 보여주는 신체기관. 하지만 이 신체가 이질감이 들고 언제부턴가 내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면 나는 정말 멀쩡할 수 있을까.

본다는 것과 보여진 다는 것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것인데,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한 날이었다. 

눈이 열리고 보여지는 영상이 아닌 기억된 영상이 보여지는 나날들이 계속된다면 그걸 견뎌낼 사람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 사실만으로도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공포가 느껴지진 않는지. 분명 나의 눈이지만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신체기관이라니...
오츠이치는 이런 상상들을 하면서 공포감은 전혀 느끼지 않았을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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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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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영원한 제자리 걸음일지도 모른다.

눈 오는 날, 눈이 쌓이면 발이 그 속으로 폭폭 빠져드는 것과 같이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인생은 그렇게 제자리에서 폭폭 빠져가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여러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가족들은 세상의 그것만큼이나 다양하다. 김려령 작가의 [우아한 거짓말] 속에서 그려지는 떠난 아이가 남긴 물음표를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반쪽 가족들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성의 인연]에서처럼 추리소설 탐문하듯 밝혀내야할 비밀을 가진 가족들, 소설 [애자]에서는 이별앞에서 화해하는 가족이었고, 박선희 작가의 [파랑치타가 달려간다]에서처럼 간섭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편하게 그려진 가족도 있었다. 어느 글에서는 유쾌하고, 어느 글에서는 잔인하며, 또 어느 글에서는 애잔함이 묻어나는 이 "가족"이라는 이름.

 

전작 [달콤한 나의 도시]를 쓴 정이현 작가라면 분명 매혹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끌고 오지 않았을까라는 다소 로또적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다. 그리고 바로 정글짐 속에 던져졌다.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것이 전부다."라고 출사표를 던진 작가의 굳은 결의와 다짐을 그냥 지나쳤던 결과였다.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처럼 김상호의 가족들을 위에서 바라보는 느낌은 묘했다. 그 가족들은 마치 천조각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듯 함께 하고 있지만 따로따로인 느낌을 주는 가족이었다. 중국을 오가며 장기를 밀매하는 가장 김상호, 사랑하는 남자를 따로 두고 바람을 피우면서 사는 부인 진영옥,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그의 원조를 바라는 전처 소생의 은성과 늘 자살충동을 느끼는 누나에 대해 무덤덤해져버린 동생 혜성, 그리고 오늘의 사건을 낳은 사라진 딸 유지.

 

유지는 김상호와 진영옥의 딸이자 혜성과 은성의 이복동생이다. 하지만 유지는 보통 드라마에서 등장하곤 하는 갈등의 해결요소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니 애초부터 이 가족은 법적인 서류상에서는 다닥다닥 붙어 있더라도 감정적으론 아무도 이어져 있지 않다. 세상엔 이런 가족도 있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가족 구성원은 이렇듯 독특했다.

 

그리고 유지는 어느날 사라진다. 유괴인지 가출인지 모를 사라짐. 그리고 가족들은 각자 의심가는 용의자가 너무나 많아서 섣부르게 경찰을 부를 수도 없다. 아이리스 요원들로 사는 것도 아니면서 그들은 살면서 너무나 많은 적들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눈물로 호소하거나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궁금하게 만드는 무엇. 작가는 소금밭을 거닐 듯 따꼼따꼼하게 읽도록 만들어 두었지만 설탕같은 결말을 기대하지 않아도 만족스럽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세상을 삐뚤어지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삐뚤어진 세상을 그저 두 눈으로 산 위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소설이랄까. 작가는 또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 우리에게 손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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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의 기적
마르코 레이노 지음, 이현정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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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크리스마스만을 위해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365일 중에 단 하루, 그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다. 산타클로스.
어린 시절엔 그를 믿다못해, 꾸벅꾸벅 졸면서도 기다리곤 했는데, 어른이 되면서 그의 이름은 서서히 잊혀졌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산타클로스를 우리곁으로 다시 데려다 주었다. 

잘 있어, 우리집!!
어린 니콜라스가 집을 떠나게 된 이유는 혼자 남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곱 살 인생에 니콜라스는 처음으로 혼자가 되었다. 바다는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는데, 하나는 아름다운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잔인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바다의 잔인함이 니콜라스의 가족을 삼켜버렸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여동생 아다까지.

아주 작고 가난한 어부 마을, 크로바요키.
삶이 넉넉치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번갈아가며 니콜라스를 1년씩 돌보기로했다.  마을사람들은 니콜라스를 사랑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크고, 제일 사랑하는 것을 잃은 니콜라스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1년을 머물던 집을 떠나게 되면서 니콜라스는 그 집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초가 되어 그는 매년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만들었고, 그 선물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 앞에 전달되었다. 이런 니콜라스를 도운 사람이 함께 살게 된 이사키 아저씨였다. 그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니콜라스와의 생활로 달래고 있었다. 슬픔이 그들을 가족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니콜라스가 떠났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은 아이들에게 배달된다. 그의 따뜻한 마음과 정신이 남아 마을에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코르바요키 마을 전체가 니콜라스의 가족이 되어 있었다.  유년시절 우리 곁을 떠났던 산타클로스는 이렇게 어느새 우리 마음 속에 되돌아와 있었다. 따뜻한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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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음모 - 가장 성스러운 곳에서 가장 참혹하게!
수사나 포르테스 지음, 변선희 옮김 / 뜨인돌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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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엔 보이지 않는 에피소드로 가득하며 잘 안다고 확신하는 것 중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

작가는 은연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대사화해서 소설에 숨겨둔다. 이것 역시 작가가 가지고 있던 생각 중 하나일 것이다. 확신하는 것 중 우리가 모르는 것들. 역사 속엔 분명 그런 것들이 가득할 것이다. 

1478년 성당에서 일어난 음모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가문의 경제력과 탁월한 통찰력. 남자 미실이라고 불려도 좋을만큼 최고의 지도자였던 피렌체의 "위대한 로렌초" 로렌초 데 메디치와 그의 꽃미남 남동생 줄리아노가 4월의 음모의 타킷이 될 줄은 음모자들밖에 모르는 일이었을 것이다. 운명으로부터 사랑받았던 그가 피렌체를 오늘날까지 회자될 예술의 도시로 만들어 놓은 일들을 보았을 때 그는 제거 대상이기보다는 보호대상이 되어야 하는 남자였다. 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질투를 허락하였을 때엔, 한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을 허락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4월의 음모 속에서 로렌초는 아끼던 남동생 줄리아노를 잃는다. 그저 한 차례 칼에 찔려서 죽은 것이 아니라 짐승을 해부하듯 찢어발겨 놓은 동생의 시신. 그리고 극적인 탈출. 이제 메디치 가의 수장은 처철한 복수를 시작했다.

소설은 처음부터 로렌초를 중심선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웬일인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들을 재조명하고 있었다. 

복원은 해석의 작업이다. 라는 말처럼 그 당시 그림 속에서 과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 또한 흥미롭지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역시 과거 속에 있다. 그 해 4월 그들은 어떻게 되었나. 그것이 요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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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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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여자, 누경...

누경. 그녀는 사막의 한 가운데 서 있다. 
기름지고 비옥해서 씨를 뿌렸다가 곡식을 거둬들이는 농토인 땅이나 건물을 올려 많은 많은 수익을 내는 도시의 땅이 아닌  심심하고 밋밋한 사막의 땅. 그 땅엔 가끔 바람이 불지만 그녀는 언제나 목마르고 쓸쓸하다. 

기다림과 목마름이 계속되던 그녀의 삶 속에 "같이 섬에 가실래요?"라고 말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 옛날 그 남자처럼. 그와는 가지 못했던 약속의 땅, 섬에 이 낯선 남자와는 갈 수 있었다. 그 남자와는 섬보다 남자가 중요했지만 이 남자와는 남자보다 섬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누경, 그녀는 그런 여자였다. 

이 남자도 누경에게 끌린 남자였다. 세상의 모든 남자를 가질 수 있어도 단 한 남자, 그토록 원하는 남자는 그녀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그 점이 누경을 매마르게 만들고 있었다. 사막의 한가운데 던져놓고 기다리게 만드는 남자. 그래도 그에 대한 기다림은 멈출 수 없는 누경. 

그런 누경을 두고 어떤 남자는 알 수 없는 감옥에 갇힌 포로라고 말했고, 실의에 빠진 채 취미도 없이 홀로 늙어갈 가여운 여자라고도 말했으며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다 살아버린 노파같이 이미 텅텅 비었다고도 하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고 구제 불능의 잠을 잘 여자라고 하거나 홀로 죽어서 고양이에게 먹힐 여자라고까지 악담을 늘어놓는 남자도 있었다. 


두 남자, 기현과 강주...

그들 모두 누경을 자신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녀의 심장에 새겨진 "얼룩"을 보지 못하는 남자들. 누경은 그런 남자들에게 관심없어 보였다. 그런데 한 남자가 계속 비집고 들어오려고 한다. 섬에 함께 다녀온 남자였다. 

사랑과 결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없다고 믿는 비혼족인 친구 상미조차 인정해준 남자 기현. 처음부터 끌림이 있었다는 기현을 두고도 누경은 사막을 건널줄을 모른다. 그녀에게 강주는 기다림인 동시에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인 존재였다. 

서강주. 엄마의 사촌의 아들인 남자. 누경이 열 여섯일때 결혼한 이 남자와 누경 사이를 정의할 단어가 사전 속에는 없다. 사랑이라고하기엔 모자라고 불륜이라고 하기엔 넘친다. 분명 누경에겐 사랑이지만 강주에겐 불륜인 관계. 그 어떤 교집합도 없는 관계를 우리는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그는 약속을 한번도 지킨적이 없었다. 치마를 사주겠다는 약속도, 섬에 함께 가자는 약속도, 전화조차도 먼저 걸 수 없게 만드는 남자. 이 남자를 기다리면서 누경은 점점 사막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누경을 따라 걷는 걸음...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누경의 그림자가 되어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녀의 인생을 한 걸음 뒤에서 따라 걸으면서 때로는 그녀의 속이 되고, 때로는 그녀의 겉이 되면서 누경의 눈으로 기다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친구나 가족조차 이해못할 그녀의 행적들을 그림자이기에 함께 나누면서 걷는다. 읽었다기 보다는 걸었다는 표현이 맞을 전경린의 [풀밭 위의 식사].  

누경을 따라 걷는 걸음은 언제나 일정하다. 한 걸음도 늦춰지거나 빨라짐이 없다. 항상 같은 속도다. 그래서 나는 누경이 더 안타깝다. 인생은 늘 같은 속도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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