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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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영원한 제자리 걸음일지도 모른다.

눈 오는 날, 눈이 쌓이면 발이 그 속으로 폭폭 빠져드는 것과 같이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인생은 그렇게 제자리에서 폭폭 빠져가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여러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가족들은 세상의 그것만큼이나 다양하다. 김려령 작가의 [우아한 거짓말] 속에서 그려지는 떠난 아이가 남긴 물음표를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반쪽 가족들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성의 인연]에서처럼 추리소설 탐문하듯 밝혀내야할 비밀을 가진 가족들, 소설 [애자]에서는 이별앞에서 화해하는 가족이었고, 박선희 작가의 [파랑치타가 달려간다]에서처럼 간섭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편하게 그려진 가족도 있었다. 어느 글에서는 유쾌하고, 어느 글에서는 잔인하며, 또 어느 글에서는 애잔함이 묻어나는 이 "가족"이라는 이름.

 

전작 [달콤한 나의 도시]를 쓴 정이현 작가라면 분명 매혹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끌고 오지 않았을까라는 다소 로또적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다. 그리고 바로 정글짐 속에 던져졌다.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것이 전부다."라고 출사표를 던진 작가의 굳은 결의와 다짐을 그냥 지나쳤던 결과였다.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처럼 김상호의 가족들을 위에서 바라보는 느낌은 묘했다. 그 가족들은 마치 천조각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듯 함께 하고 있지만 따로따로인 느낌을 주는 가족이었다. 중국을 오가며 장기를 밀매하는 가장 김상호, 사랑하는 남자를 따로 두고 바람을 피우면서 사는 부인 진영옥,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그의 원조를 바라는 전처 소생의 은성과 늘 자살충동을 느끼는 누나에 대해 무덤덤해져버린 동생 혜성, 그리고 오늘의 사건을 낳은 사라진 딸 유지.

 

유지는 김상호와 진영옥의 딸이자 혜성과 은성의 이복동생이다. 하지만 유지는 보통 드라마에서 등장하곤 하는 갈등의 해결요소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니 애초부터 이 가족은 법적인 서류상에서는 다닥다닥 붙어 있더라도 감정적으론 아무도 이어져 있지 않다. 세상엔 이런 가족도 있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가족 구성원은 이렇듯 독특했다.

 

그리고 유지는 어느날 사라진다. 유괴인지 가출인지 모를 사라짐. 그리고 가족들은 각자 의심가는 용의자가 너무나 많아서 섣부르게 경찰을 부를 수도 없다. 아이리스 요원들로 사는 것도 아니면서 그들은 살면서 너무나 많은 적들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눈물로 호소하거나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궁금하게 만드는 무엇. 작가는 소금밭을 거닐 듯 따꼼따꼼하게 읽도록 만들어 두었지만 설탕같은 결말을 기대하지 않아도 만족스럽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세상을 삐뚤어지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삐뚤어진 세상을 그저 두 눈으로 산 위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소설이랄까. 작가는 또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 우리에게 손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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