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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그와 다시 마주하다 - 우리가 몰랐던 제갈량의 본모습을 마주해보는 시간
류종민 지음 / 박영스토리 / 2021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드라마 심지어는 만화 속에서도 본 적 있는 유비, 장비, 관우 그리고 제갈공명.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이야기는 중국의 24 사 중 하나인 <삼국지>가 아닌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속 인물들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삼국지>는 동진의 역사학자 '진수'가 쓴 역사서로 <삼국지연의>와는 그 내용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중 매력적인 캐릭터인 '제갈량'에 관한 부분을 이 책을 통해 꼼꼼히 살펴보았다.
유비로 하여금 '삼고초려'를 하게 만든 은둔 고수 '제갈량'. 이제껏 그에 대한 이미지는 키가 크고 조용하며 명석한 지혜로 주군을 보필한 킹메이커의 이미지가 강했다. 영화 '적벽대전'에서도 제갈량은 미남 배우가 맡았던 것처럼 잘생김까지 덧붙여져 훈남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를 통해 본 제갈량의 모습은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100% 일치하는 인물은 아닌듯하다.
<삼국지/제갈량전>에서는 8척 키에 용모가 훌륭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어 지금으로 따지면 184cm 내지는 189.6cm 정도로 생각할 수 있기에 꽤 장신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그러나 키 재는 기구가 없었던 시절이라 정확한 수치보다는 그냥 키가 큰 남자였던 것만 짐작할 수 있다. 특이한 건 부인에 대한 기록이었는데 <배송지 주석본 삼국지>에 따르면 황승언의 딸과 결혼했다는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노란 머리에 얼굴이 까만 부인이라는 대목과 부인의 외모로 인해 당시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오르내렸다는 내용이 실려 있던 것. 흔해빠진 정보보다는 사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정보가 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법이다. 이렇듯 딱딱할 것만 같은 내용은 생각지도 못한 귀가 솔깃해지는 정보와 함께 탄력적으로 술술 읽혔다. 책의 두께가 제법 두꺼운데도 단박에 읽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 [적벽대전] 속 제갈량은 뛰어났다. 하지만 저자는 '제갈량이 적벽대전의 전투에 참여하기는 했을까?'(p88)라는 의문을 품는다. 놀랍게도 전투 참여나 기여했다는 언급은 없다고 한다. 정말 재미나게 본 영화지만 기억을 뒤집고 다시 책이 이끄는 대로 정사삼국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우선 제갈량은 '방통','법정'과 함께 대업의 초석을 닦아나가면서도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주군에게 더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 사람으로서 질투가 날법도 하지만 라이벌이 아닌 동지로 본 까닭이다. 또 가족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었던 '공정의 가치'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요즘 한참 뉴스 타임을 달구고 있는 대권주자들과 저절로 비교가 되어버렸다. 특히 사면에 인색하다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세상을 다스릴 때는 큰 덕으로 해야지 작은 은혜로 해서는 안 되오"(p158)라는 자신의 소신을 꺾지 않았던 제갈량. 그는 빠르게 승진하여 결국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54살의 나이에 사마의와 대치 중 사망하기 전까지 제갈량은 굴곡진 삶을 살았다. 평화롭게 책이나 읽다가 유비에게 이끌려 세상으로 나온 신선같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어린시절엔 조조로 인해 '서주대학살'을 겪어야했고 형제인 제갈균과는 서로 다른 군주를 모셔야했으며 여러 인재들과 더불어 '촉'을 세우기 전까지 전쟁을 치르며 살아남았다.
분명한 사실은 소설 삼국지건 정사삼국지건 간에 제갈량은 뛰어난 인재였다는 점이다. 농업,염업, 비단산업, 교량과 도로건설에 이르기까지 외교술 외에도 여러 면에서 두루두루 뛰어난 사람이었다. 경영, 조직, 리더쉽 어느 것 하나 빠짐이 없어 보인다. 다만 너무 꼼꼼해서 아랫 사람들은 참 힘들었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렴하면서 솔선수범한 윗사람을 존경한 부하도 있지 않았을까.
백성들을 비롯한 후대 황제들에 이르기까지 이미 죽고 없는 제갈량을 그리워했으며 타국의 장수 이순신이나 재상인 율곡이이까지 언급했을 정도였으니 그가 당대에만 반짝하고 사라진 인재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책을 통해 제갈량과 다시 마주하기 전까지 그는 내게 그저 이야기 속의 한 캐릭터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제갈량, 그와 다시 마주하다>를 읽으면서 아주 예전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치열하게 살다간 한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띄엄띄엄 등장하는 연도별행적 도표와 그림을 참고하면 더 이해하기 쉽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닌 역사속 실제 인물을 뒤쫓는 이런 책들이 더 다양하게 출판되어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성인인 내게도 이렇게 재미나게 읽히는 책인데 한참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 혹은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더 유익하게 읽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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