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 보스에서 렘브란트까지 그림 속 중세 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세상 중세편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보슈에서 램브란트까지 그림 속 중세 이야기

 

이 시기를 암흑기라고 평가했던 세력은 부르주아의 지지를 받던 인문주의자들이었다.

이런 인문주의자들이 칠해놓은 이데올로기를 걷어내고 보면, 중세는 고대와 르네상스 사이에 위치한 장애물이라기보다 고대의 유산을 가꾸고 다듬어서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근대에 전수한 시대이기도

했다.

중세인들은 순진했다. 여기서 순진하다는 건 분석적이라기보다 정서적으로 세계를 인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과 허위, 현실과 신화가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를 한번 상상해보자.

그 모호하고 완벽했던 시대가 바로 중세였다.

서양미술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라면, 서양의 근대 철학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죽음을 '사유'하려고 했다. 이때부터 죽음은 교회를 떠나 인문학의 자리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서양 철학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중세의 태도에서 발아한 푸른 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서양 근대 철학과 죽음을 둘러싼 중세

문화의 연관성을 밝혀내는 게 우리가 그림을 통해 중세를 읽는 목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들이다" 이 유명한 말은 르네상스와

근대로 이어지는 서양 문화의 발전이 실제로 중세의 유산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으리라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과학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서양인들은 죽음에 대항해 왔다.

이런 문화가 바로 중세를 근대로 이동시킨 근본 동력이었던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서양의 근대 철학이야말로 중세가 끝나는 자리에서

중세의 유산을 이어받은 적자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성스러우면서도 세속적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이 보여주는 건 인간의 삶에

부여된 이런 이중성이다. 중세는 이런 이중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시대였다.

중세의 종언은 이런 이중성을 이해하기 시작한 휴머니즘의 출현을 통해 서서히

다가왔다. 바로크는 이런 휴머니즘의 각성으로 인한 고통의 표현이었다.

인간과 신 사이에 가로놓인 거대한 간극. 이를 깨닫는 것이 바로 근대였다.

내가 어렸을때만해도 중세는 암흑의 시대. 무지의 시대. 중세 암흑1000년이라는 말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찬란한 인간중심의 문명에서 벗어난, 신과 종교가

지배하는 몽미의 시대가 바로 중세였다.

요즘에야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주장이 흔하게 나오지만 여튼 그랬다.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는 보스에서부터 렘브란트에 이르기까지 중세의 여러화가들과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중세시대 사람들의 사상과 생각. 그 시대가 의마했던 여러가지

정신적 조류들을 재미나게 풀어낸 글이다.

 

짧은 에세이 형식이지만, 종종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사상의 사유들도

등장하지만, 여전히 누구나 알기 쉽게 그림을 예로들며 중세의 사상과 사람들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설명하고 있다.

 

중세인들이 삶과 사랑과 인간과 신과 종교에 대해어떻게 생각했는지, 또 그사상은

근대로 어떻게 이어져나갔는지, 그림뿐만 아니라 가벼운 철학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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