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시장 365일 - 김민섭의 현장체험
김민섭 지음 / 글의세계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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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기교도 수식도 없는 담백한 수기이다. 한가로운 정취를 그린 글도 있지만 대개는 인력 시장에서 겪었던 생각과 느낌을 적어나가고 있다. 이 무명 수필가의 글에는 신달자 류시화 류의 낭만이나 감상이 한움큼도 없다. 삶이란 나날의 노역을 묵묵히 견디는 것이라는, 조용한 웅변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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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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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을 읽었고,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재치와 유머가 분명 있는 작가인 듯한데 그러한 강점을 반성적 사유로 이끌어내려는 에너지는 부족해 보인다. 그러한 에너지가 정말로 없는 것인지, 전략적으로 거세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책은 상금과 권위가 높은 문학상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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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하늘속에 2016-01-11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성적 사유로 이끌어내는 에너지란, 인류의 삶을 돌아보거나 현실을 환기시키는 힘이라고 해석하면 될런지요?

수다맨 2016-01-11 18:51   좋아요 0 | URL
넵. 말씀하신대로 현실 환기의 힘이라던가, 인간 내면의 음영과 굴곡을 살피려는 통찰 같은 것이겠지요.
 
희지의 세계 민음의 시 214
황인찬 지음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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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자의 상찬에는 논리적 과장이 있어보인다. 기실 모든 학사學史란 형식적 전도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어제의 고은이 지금 낡아 보이고, 그저께의 김춘수가 오늘은 새로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김춘수와 전봉건의 리바이벌에 가까운 시들에 문학사적 대결이란 칭호를 붙이는 게, 과연 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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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시작 창비시선 112
박노해 지음 / 창비 / 199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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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정 가치에 대한 맹목적 신념을 담은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글들은 허접한 프로파간다에 그치기 쉽다. 헌데 실천적 행동을 통하여 자신의 맹목이 최소한 가라는 아님을 증명하는 시인들이 있다. 김남주, 백무산, (과거의) 박노해의 시작은 그 바탕에 순결한 열의가 있기에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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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10-1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노해의 글은 딱 여기까지만 읽을 만하다. 그가 출옥한 이후에 보여준 글과 행동에는 투사의 풍모보다 도인의 기품이 어려 있다. 누군가는 이러한 태도 변화를 변절이라 보는 듯한데ㅡ나 역시 일리가 있는 해석이라 본다ㅡ내가 보기에는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열의가 소진되어 허무 가득한 체념으로 돌아올 때, 다수의 투사는 도인(또는 정치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피해갔던 사람 중 하나는 김남주인데, 그는 오래살지 못했기에 영원한 투사로 남을 수 있었던 영예(?!)을 누렸던 것 같다.

창고지기 2015-10-21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박노해가 무슨 글을 쓰던, 무슨 말을 하던 울림이 없죠. 어제인가요 작가1217명이 국정화교과서 반대 성명을 냈는데, 전혀 울림이 없더군요. 신경숙 표절과 창비의 표절 옹호에 대해 성명서 한 장 못내고, 시종일관 침묵으로 지조(?)를 지켰죠. 내부의 불의는 철저히 모르는 체 하고, 외부의 불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제가 보기엔 쑈로 보이더군요. 지금의 한국작가회의는 윤리는 없고 집단이익만 있는 단체입니다.

수다맨 2015-10-21 14:48   좋아요 0 | URL
저는 작가들(그리고 작가들의 단체?)이 무슨 발언을 하는지 사실 관심이 없어서요 ㅎㅎㅎ 다만 정치적 불의에 대해선 말할 줄 알면서 업계의 비윤리적 상도덕에 대해서 노코멘트한다면, 눈 닫고 입 닫고 가만히 있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차라리 일관성이라도 있지요.
저는 지금의 박노해를 좋아하진 않지만 과거 그의 시와 산문에 대해선 높은 점수를 주고 싶더군요. 제가 보기에 박노해는 분명 문학적 허영과 입신출세의 의욕이 없지는 않았지만, (한때나마) 자기의 문학을 자기의 삶으로 살아냈다는 점에서 호감이 가더군요. 저는 과거의 박노해가 (도덕적/정치적 위기의 시대에 은근히 눈감고 있다가 지금에 와서는 부와 명예를 누리는 원로가 되어버린) 몇몇 문인들보다는 낫다고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2 14:27   좋아요 0 | URL
얍삽하죠. 요즘 문단 보면 찍소리 못하다가 꼭 나랏일에는 애국지사가 되는....

수다맨 2015-12-02 14:43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맞습니다. 저 역시 작가들에게 거창한 윤리를 바라진 않습니다. 그들에게 리 호이나키나 마루야마 겐지 정도의 금욕주의와 순정함은 더더욱 바라지 않구요. 그냥 얍삽함만이라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국정 교과서 문제나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는 결의에 찬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백낙청이나 남진우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발언하기 주저하는 것 같더군요...
 
퇴근 Homecoming K-픽션 8
천명관 지음, 전미세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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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소설의 계보는 크게 두가지로, 오웰파와 헉슬리파가 있다. 전자가 미래를 전체주의적 지옥으로 그리고 있다면 후자는 무절제한 쾌락과, 이기적 자아가 들끓는 공간으로 미래를 인식한다. 나는 후자가 더 맞다고 보는데 작가는 전자의 길을 지향하는 듯하다. 고로 입담은 걸출해도 인식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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