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들의 시간
김신용
계란의 다수확 생산을 위해
24시간 조도(照度)를 통제하는 양계장
낮이고 밤이고 밤이 낮이다
대낮에도 해가 떠 있고, 캄캄한 밤에도 해가 떠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날들의 백야(白夜), 그러니까 닭들에게 낮과 밤의 의미를 지움으로서
모든 시간을 산란의 시간으로 조장하는 것이다.
그 양계장의 천정에는 지지 않는 수백 개의 해가 떠 있다
백열등들, 핏줄 속으로 전기의 피가 흐르는 태양들
매일 그 유리알의 태양이 떠 있는 닭장 속에서
닭들은, 쏟아지는 빛 속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자신의 유전자 속에 입력되어 있는 시간을 무의식이듯 문득 일깨워 내고는
벌건 대낮에도 횃대에 올라가 우렁차게
긴 목울음을 뽑아내기도 한다
그 비명 같은 목울음 속에서 마치 발작이듯
산란을 하는 닭들
죽어버린 시간들이 묻혀 있는 무정란,
그 시도 때도 없는 배란에, 닭들의 항문은 염증으로 벌겋게 부어오르고
폐사된 닭은, 깨끗하게 털이 뽑힌 냉동된 알몸으로
자신이 낳은 알들과 함께 시장으로 팔려 가는,
그 닭들의 정서불안을 치유하기 위해
차이코프스키씨의 그림자가 구부정히 걸어 다니는
닭들의 해가 지지 않는 세계
폐사된 시간, 오로지 산란을 위한 눈빛들만 오로라처럼 휘몰아치는
빛의 무덤,
닭들의 신자유주의 공간.
ㅡ김신용은, 좋은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