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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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글에는 창백한 청년의 파토스와 조로한 남자의 회춘욕망이 섞여있다. 이 두가지 성향은 그의 글에 마성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작가개인의 미성숙‘과 ‘타인에 대한 적대적/피상적 이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못하는 한계를 낳는다. 그만한 가치는 인정하겠으되 경외나 찬탄이 크게 일어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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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7-11-16 0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문열/김훈 소설에 내재한 여성에의 몰이해, 가부장적 남근주의를 비판하는 평자들이 막상 ˝무진기행˝이나 ˝서울의 달빛 0장˝과 같은 작품들에 ‘그다지‘ 메스를 들이대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무진기행‘이나 ‘서울의 달빛 0장‘ 등은 문체의 분칠이 워낙에 잘된 작품이다. 근데 ‘무진기행‘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작중 여성들은 엄마, 한번 건드려 보고 싶은 내연녀(하인숙), 자살한 미친 여자(술집 여자), 애정 없는 부인(서울 아내) 이라는 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즉, 모성을 상징하는 엄마를 제외하면 나머지 여성들은 화자의 시선에서 모두 병리적/불온적/적대적 존재 등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화자의 엄마조차도 그가 다분히 이상적으로 여기는 존재일 뿐, 실제의 엄마와는 당연히 거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근데, 이게 과연 감수성의 혁명(유종호)이라고 상찬받을 만한 것인가?
나는 김승옥 소설을 졸작이나 범작이라고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재능이 탁월한 소설가이자 범상치 않은 문체의 소유자였고 당대 독자들의 감정을 흔들고 북돋울 줄 아는 대단한 재주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 속에서 엿보이는 미성숙(안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고 안주하려는 작가 본인)과 타인에의 도식적 피상적 적대적 병리적 인식은 비판적 검토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안한 얘기지만 김승옥 신화는 얼마큼은 벗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2:42   좋아요 0 | URL
구구절절 제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군요.. 그의 문체가 당대에는 세련되었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서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뭐 좀 구태스럽다고나 할까요..

수다맨 2017-11-16 13:20   좋아요 1 | URL
저는 차라리 김승옥이 좀 더 일찌감치 통속성의 세계ㅡ실제로 그는 창작 생활 후반에 ˝강변부인˝, ˝보통여자˝ 같은 작품들을 쓰기도 했지요ㅡ로 나아갔거나 아니면 진실성과 성실성이 담긴 사회파 색채가 묻어나는 글들(일례로 서울 1964년 겨울,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등)을 더 많이 썼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진기행˝은 재기와 감각을 갖춘 단편들의 모음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단편집만으로도 김승옥은 호평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지요. 문제는 김승옥을 신화적 존재로, 일국의 문호로 평가하려는 평자/문학사가들의 태도라고 봅니다. 저는 그 정도는 분명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의 세계 및 타인 인식에는 적잖은 결점들이 노출되고 있는데 이를 가리켜서 혁명 어쩌구 하는 건 난센스라고 봅니다.
저는 최인훈/김승옥 같은 이들을 볼때면 문지파로 대표되는 4.19세대가 선배 문인들(김동리, 서정주 등)과의 세대 투쟁에서 우위와 승리를 얻고자 다소 섣부르게 전설적 존재로 격상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김승옥만? 2017-11-17 01:3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근데, 벗기지 않아도 좋을만한 신화도 있나요?


수다맨 2017-11-17 13:35   좋아요 0 | URL
모든 신화에는 일정한 허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그 신화의 실상을 좀 더 분석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김승옥이 우리네 문학사에서 중요한 역할과 남다른 가치를 지녔던 작가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다만 이미 정전으로까지 자리잡은 그의 작품들 이면과 배면에 잠재하는 인식들에 대해선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마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2017-11-16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6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것은실로 2017-11-18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확하게 보신 것 같아요. 김훈이야 역사소설을 많이 썼고 그 시대상을 생각하면 일견 혐의가 덜 해지는 지점이 있죠. 그러나 김승옥의 서울의달빛0장, 특히 야행(여성 화자의 시점이라 더욱 폭력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의 경우에는 남성 독자의 시점에서도 좀 많이 갔다 싶습니다. 아름다운 문장과 구성이 빛나는 무진기행, 1964년 겨울, 데뷔작인 생명연습과 같은 작품들이 볼 만합니다. 지적하신 신화는 분명히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요.

그것은실로 2017-11-18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덧붙이자면 무진기행이나 서울의달빛0장 말미에서 드러나는 자기 연민의 제스처도 일차원적이고 나르시시즘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미성숙’과 ‘피상적 이해’와 분명히 맞물리는 접점이 있어요.

수다맨 2017-11-19 13:00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ㅎ 저는 김승옥이 존중과 애정을 받을 만한 작가이기는 하지만 역시나 그의 신화적 위치와, 그를 신화로 만들려는 동료 후학들의 노력에 대해선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아울러 말하면 이십대 작가의 명편 몇 편에 대해서 지나친 극찬을 덧붙이는 것은 이 나라의 문학사가 그만큼 빈곤하고 미흡하다는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요...

지나가다가 2018-02-03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연히 지나가다 이 리뷰를 보고 댓글을 남깁니다. 학창시절 스치듯 읽었던 무진기행을 최근 다시 읽고 적잖이 실망한 1인으로서, 수다맨님 리뷰에 200% 공감했습니다 ㅎㅎ 저 역시 여성을 대상화하는 부분이 특히 불편했습니다. 이외에도 찰스 부코스키의 여러 책들에 관한 리뷰(저도 정말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관한 리뷰, 최은영, 정지돈, 김경욱 같은 작가들에 관한 코멘트에도 구구절절 공감하고 갑니다 ㅎㅎㅎ

수다맨 2018-02-04 15:50   좋아요 0 | URL
호의적인 댓글을 남겨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ㅎㅎㅎ
 
소망 없는 불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5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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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두근두근 내인생" 정도의 작품들이 '뜨는' 나라에서 이작품은 희귀종이다. 한트케는 세상의 엄마들이 겪는 학대와 광증에 대해서, 이곳의 아이들이 겪는 성장의 통증과 경이에 대해서 잔잔하게 서술하고 있다. 자신의 혈친에 대해서 이만한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는 소설은 흔치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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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7-10-3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이 여성을 다루는 소설들 중에서 상당한 수준의 깊이를 확보하는 경우, 그러니까 ‘진실하고도 리얼하다‘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여러 남성 작가들은 여성을 육체적 찬미의 대상(김훈)으로, 사회 질서를 저해하는 나쁜 X들(이문열)로 서술해 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한트케는 ‘소망 없는 불행‘에서 한 여자의 일생 그 자체를 통시적으로 서술하는 전략을 보여준다. 한 여자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태어나고, 낮은 교육을 받고, 몇몇 남자들과 동거하고, 그 중에서 변변치 않은 남자와 결혼하고, 몇 명의 아이를 낳거나 유산하고, 먹고 살고자 고된 노동을 하고, 남편에게 몇 차례 구타를 당하고, 그러면서도 가정을 끝내 유지하고, 아이 기르는 기쁨을 맛보고, 신이나 초월에 대한 환상을 버려나가고, 몸이 조금씩 망가지고, 성장한 자식들과 소원해지고, 늦게나마 문학에 눈 떠서 글쓰기를 시도하고, 노년에 들어서 우울과 광증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그야말로 한 여성의 일생에 나타나는 모든 희로애락을 한트케는 빠짐 없이, 냉정 섬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치밀함과 절제심이 바로 이 작품의 근간이자, 미덕이다.
 

적(滴, 물방울 적)

ㅡ 포에지 푸어

 

김신용

 

너는 없는 것처럼 있다 아무도 너의 존재를 몰라보지만
너는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듯이 있다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유령의 형체처럼 만져지지도 않지만 너는 너와 만나는
모든 것을 유체처럼 통과한다 유체처럼 통과함으로 누구도
너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너는 안다 자신이 지금
누구의 육체를 지나왔는지 무엇의 몸과 함께 머무르며
숨결을 심장의 두께를 느끼며 그것의 체온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차가왔는지 만져도 느껴지지 않는 손길로 눈빛으로 지나왔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너를 유령처럼 바라본다 꼬집으면
아프고 한 끼를 굶으면 허기에 시달리는 고된 육신을 가졌다는 것을
모른다 모른 척 한다 그냥 유체 이탈처럼 너를 바라보며
역시 유령처럼 스쳐지나간다 그 때마다 너는 일회용으로
포장되고 무덤이라고 느낀다 그것을 잊기 위해 사유 또한
유리의 벽을 투과하는 햇살처럼 차가운 언어의 벽을 혼신으로
스며들지만 그것 또한 일회성으로 포장되고 소모될 뿐―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누가 그랬지?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치욕일 뿐이라고― 혼자 책을 뒤적이며 사색에 잠겨 보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그냥 유체처럼 너를 통과해 간다 그렇게
유체 이탈하는 것은 생활일 뿐―남루하게 누더기
누더기 기워 입는 것 같은 사유만 광고 끝난 거리의 전광판처럼
녹슬고 쇠락해 갈 뿐이다 그래도 너의 눈은 빛난다
물방울 거울처럼 빛난다 물방울 거울에 비친 모든 것은
마치 얼음 조각처럼 맺혔다 스러지지만 너의 눈은 빛난다
자신을 유체 같다고 생각하므로 어느 무엇에도 일회용으로
소비되고 소모되지 않는다는 듯이―

ㅡ 제1회 한유성문학상 수상작

 

이 칠순의 시인도 드디어 문학상이라는 것을 받았는가 보다.

어느 신문 기사에서 발견하고 무단으로(!) 가져온 시이다.

정말로 이 사람은 기품 있게 늙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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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 그늘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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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이 단순한 영토/인민 지배를 넘어서 달러전쟁이었다는 점, 미국은 자본의 핵심거점이며 미제 상품들의 이윤을 실현 및 창출하는 공간으로 베트남이 뽑혔다는 점, 그리하여 식민지의 모든돈이 미국의 아가리로 들어가고 제3세계의 가난과 침체는 이어질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담아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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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7-10-0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권을 읽고서 총평을 내려야겠지만 황석영 최고의 작품은 바로 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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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문장으로 최대치의 여운을 만드는 글이 있다. 쓰인 문장보다 쓰이지 않은 여백에 더많은 정서를 심을줄 아는 솜씨이다. 조세희와 아고타는 전망과 희망의 부재, 삶의 지리함과 두려움, 고통을 삼킨채 핏발선 눈만 부릅뜬 이들의 모습을 에누리없는 단문으로 그려낼줄 아는, 고수이자 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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