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滴, 물방울 적)
ㅡ 포에지 푸어
김신용
너는 없는 것처럼 있다 아무도 너의 존재를 몰라보지만
너는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듯이 있다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유령의 형체처럼 만져지지도 않지만 너는 너와 만나는
모든 것을 유체처럼 통과한다 유체처럼 통과함으로 누구도
너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너는 안다 자신이 지금
누구의 육체를 지나왔는지 무엇의 몸과 함께 머무르며
숨결을 심장의 두께를 느끼며 그것의 체온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차가왔는지 만져도 느껴지지 않는 손길로 눈빛으로 지나왔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너를 유령처럼 바라본다 꼬집으면
아프고 한 끼를 굶으면 허기에 시달리는 고된 육신을 가졌다는 것을
모른다 모른 척 한다 그냥 유체 이탈처럼 너를 바라보며
역시 유령처럼 스쳐지나간다 그 때마다 너는 일회용으로
포장되고 무덤이라고 느낀다 그것을 잊기 위해 사유 또한
유리의 벽을 투과하는 햇살처럼 차가운 언어의 벽을 혼신으로
스며들지만 그것 또한 일회성으로 포장되고 소모될 뿐―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누가 그랬지?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치욕일 뿐이라고― 혼자 책을 뒤적이며 사색에 잠겨 보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그냥 유체처럼 너를 통과해 간다 그렇게
유체 이탈하는 것은 생활일 뿐―남루하게 누더기
누더기 기워 입는 것 같은 사유만 광고 끝난 거리의 전광판처럼
녹슬고 쇠락해 갈 뿐이다 그래도 너의 눈은 빛난다
물방울 거울처럼 빛난다 물방울 거울에 비친 모든 것은
마치 얼음 조각처럼 맺혔다 스러지지만 너의 눈은 빛난다
자신을 유체 같다고 생각하므로 어느 무엇에도 일회용으로
소비되고 소모되지 않는다는 듯이―
ㅡ 제1회 한유성문학상 수상작
이 칠순의 시인도 드디어 문학상이라는 것을 받았는가 보다.
어느 신문 기사에서 발견하고 무단으로(!) 가져온 시이다.
정말로 이 사람은 기품 있게 늙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