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나 취미 생활의 고상함과 천박함의 차이는 여유의 문제이며,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만든 구별 짓기다.
'데리고 논다', '건든다', '싼다', '줄줄줄줄', '미친다' 등 성애적 관계와 행위를 꾸미는 김용술의 표현을 천박하다고 낙인찍는 시각은 그렇게 해야 사정할 수 있는 배운 놈들의 자위일 뿐이다.
나는 고상함과 천박함의 구별 짓기를 지배자들이 계급과 정상성으로 약자를 차별하고 체계적으로 억압하는 규범으로 본다. 김용술 같은 여유 없는 사람들은 천박할 수밖에 없고, 나는 그 점을 말과 글로 옹호한다. 상대가 천박해서 불편하다면 내 소갈머리를 살펴야 한다. 천박을 옹호하려는 내 말과 글이 고상한 단어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내 삶과 언어의 치명적 한계다. 내가 그 사람들보다 덜 천박하다면 내 삶의 여유에서 비롯된 '배운 년'의 체면과 껍데기 때문이다.
김용술은 깊고 무거울 기회가 없었다. 생각이 깊고 무거웠다면 자괴에 빠져 생존이 어려웠다. 막 살아서 살아남았다. 천박한 덕에 자유롭기도 하다.
빌어먹으려고 탈탈 털고 패스보트 하나만 챙겨 혼자 떠나며 살았다. 다행히 낙천적이다. 어린 시절이 좋았던 게 평생 힘이라고 했다. 말하지 않았다 해서 고민과 후회와 자기 성찰을 하지 않았을 리 없지만, 몸과 마음의 발목을 잡지는 않았다. 마흔 초반에 돼지호박 5500원 어치를 니야까(리어카)에 싣고 다시 일어섰고, 혈액암에 걸린 채 일흔하나로 지하 모퉁이에서 사는 지금도 혼자서 온갖 생각을 다 한다.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하자는 사람도 많다. 의미 없게 살았다는 반성도 하고,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을 찾아서 실천도 한다.
ㅡ 최현숙 "할배의 탄생" 139~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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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가난하고 늙은 남자의 육성을 받아 적는다. 그 이의 생각과 삶에는 모순과 위선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직성과 실천성도 공존하고 있다. 여성을 성욕 해소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던 지난 삶을 합리화하면서도 아내와 자식에게 상처를 주었던 자신의 행위를 뒤늦게야 반성하기도 한다. 이 사회에 특별히 기여한 것도 없지만 남들에게 민폐 만큼은 끼치지 않고자 고령의 나이에도 옷 수선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저자는 태극기 부대와 비슷한 정서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어느 노인의 인생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그는 특정한 프레임(예컨대 오찬호 같은 사람들의 18번인 이십대 개새끼론이나 태극기 부대를 일컫는 꼰대론)에 갇히지 않고 그 이가 살았던 질곡의 현대사와 야만의 사회상을 반추하면서도 결국에는 그 시대가 주입했던 관념(적자생존, 반공주의, 남존여비 등등)에 연관되고 동조했던 한 남성의 모습을 구체감 있게 그려낸다. 저자는 본인의 작업을 구술 생애사 집필이라고 정의하는 듯한데 내가 보기에는 몇몇 사회학자들의 저술보다 훨씬 더 가치있고 종요롭게 보인다.
아직 전반부만 읽었지만 이 책 참으로 괜찮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