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의 탄생 - 어르신과 꼰대 사이, 가난한 남성성의 시원을 찾아서 이매진의 시선 2
최현숙 지음 / 이매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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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회적으로 꼰대나 광신으로 불릴 법한 노인들의 목소리를 받아적는다. 그들의 의식에 자리잡은 자기합리화(김용술)와 자기비하(이영식)를 비판하면서도 적자생존, 권위주의, 가부장제의 국가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고자 자기 내부에 모순성을 길러야만 했던 이들의 삶의 과정을 찬찬히 되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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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2-04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다한 통계와 사례를 나열하면서도 해당 사회의 특성을 밝히지 못하고 편향적인 프레임에 빠지는 저자가 있는가 하면, 단 두 사람의 육성을 충실히 받아적으면서도 과거와 현재의 사회적 문제점이 무엇인지 예민하게 포착하는 작가도 있다.
최현숙은 후자에 속하는데 노인들의 자기합리화(그때는 다 그렇게 높은 이들에게 복종하고 얻어맞으면서 사는 것이 당연했다)나 자기비하(자가주택도 처자식도 없는 내 인생은 비정상적이고 쓸모없다)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는지를 추적하면서 이들의 모순적이고도 굴절된 심리를 실천적이고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어야만 우리 사회가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세월호의 고난은 끝나지 않고, 공권력은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폭압하며, 여성가족부는 레즈비언은 여성 국민이 아니라고 몰아세우고, 정권 차원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와중에, 나는, 우리는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가난하고 늙은 파월 장병의 통장 입금 내역에서든, 연예인 위문 공연에 눈물 줄줄 흘리는 새까맣게 탄 젊은 파월 장병의 가슴에서든 이영식들이 말하는 조국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이영식들하고 함께 가닥가닥 발라내어 새로운 실마리를 만들어야겠다. 그래야 내가 살고 싶은 나라의 시민들을 그려볼 수 있다.

참전 용사들을 보수 할배로 취급하고 마는 진보는, 월남전 참전 용사 이영식이 자기 아버지를 혐오한 그 혐오의 다른 모습이다. 성찰 없는 자식들은 젊어 자기 부모를 혐오하다, 나이들어 자기가 그 부모를 닮은 사실을 알고서야 울면서 그 부모를 달랑 용서해버리고는, 자식에게 미움 받으며 살다, 죽는다. 아버지를 제대로 죽이지 못한 자식이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은, '너도 늙어봐라'가 전부다. 

새롭게 꾸려질 진보는 가난의 구조화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의 자기 비하에 개입할 길을 먼저 찾아야 한다. 가난한 사람은 왜 보수화되느냐는 질문에 내놓을 답도 그 언저리에 있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내면화는 지배자를 향한 선망과 숭배로 이어진다. 자기 속을 들여다보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자기 비하를 깊이 살피고, 그 사람들을 옹호하되 함께 분석한 뒤, 자기 긍정의 에너지를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힘으로 모아내야 한다. 그저 계급과 임금과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어느 시절 어느 순간이든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성찰과 직립과 통찰의 실마리가 거기에 있다. 거기서 이어지는 삶은 그것 자체가 실천이다.

ㅡ 최현숙의 "할배의 탄생" 마지막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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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고위 공직자를 만날 일이야 손톱만큼도 없겠지만 만약에라도 기회가 생긴다면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 두 권 있다. 하나는 변진경의 "흙밥 청년 보고서"이고, 다른 하나는 최현숙의 "할배의 탄생"이다. 각각 청년과 노인을 다루는 이 두 책은 저자의 성실성과 글의 현장성과 약자들에 대한 이해도가 두드러진다. 

미안한 말이지만 "90년생이 온다'와 같은 책이 국가 원수의 추천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풍경이야말로 나에게는 희비극적인 상황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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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나 취미 생활의 고상함과 천박함의 차이는 여유의 문제이며,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만든 구별 짓기다.

'데리고 논다', '건든다', '싼다', '줄줄줄줄', '미친다' 등 성애적 관계와 행위를 꾸미는 김용술의 표현을 천박하다고 낙인찍는 시각은 그렇게 해야 사정할 수 있는 배운 놈들의 자위일 뿐이다.

나는 고상함과 천박함의 구별 짓기를 지배자들이 계급과 정상성으로 약자를 차별하고 체계적으로 억압하는 규범으로 본다. 김용술 같은 여유 없는 사람들은 천박할 수밖에 없고, 나는 그 점을 말과 글로 옹호한다. 상대가 천박해서 불편하다면 내 소갈머리를 살펴야 한다. 천박을 옹호하려는 내 말과 글이 고상한 단어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내 삶과 언어의 치명적 한계다. 내가 그 사람들보다 덜 천박하다면 내 삶의 여유에서 비롯된 '배운 년'의 체면과 껍데기 때문이다.

김용술은 깊고 무거울 기회가 없었다. 생각이 깊고 무거웠다면 자괴에 빠져 생존이 어려웠다. 막 살아서 살아남았다. 천박한 덕에 자유롭기도 하다.

빌어먹으려고 탈탈 털고 패스보트 하나만 챙겨 혼자 떠나며 살았다. 다행히 낙천적이다. 어린 시절이 좋았던 게 평생 힘이라고 했다. 말하지 않았다 해서 고민과 후회와 자기 성찰을 하지 않았을 리 없지만, 몸과 마음의 발목을 잡지는 않았다. 마흔 초반에 돼지호박 5500원 어치를 니야까(리어카)에 싣고 다시 일어섰고, 혈액암에 걸린 채 일흔하나로 지하 모퉁이에서 사는 지금도 혼자서 온갖 생각을 다 한다.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하자는 사람도 많다. 의미 없게 살았다는 반성도 하고,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을 찾아서 실천도 한다.

ㅡ 최현숙 "할배의 탄생" 139~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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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가난하고 늙은 남자의 육성을 받아 적는다. 그 이의 생각과 삶에는 모순과 위선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직성과 실천성도 공존하고 있다. 여성을 성욕 해소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던 지난 삶을 합리화하면서도 아내와 자식에게 상처를 주었던 자신의 행위를 뒤늦게야 반성하기도 한다. 이 사회에 특별히 기여한 것도 없지만 남들에게 민폐 만큼은 끼치지 않고자 고령의 나이에도 옷 수선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저자는 태극기 부대와 비슷한 정서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어느 노인의 인생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그는 특정한 프레임(예컨대 오찬호 같은 사람들의 18번인 이십대 개새끼론이나 태극기 부대를 일컫는 꼰대론)에 갇히지 않고 그 이가 살았던 질곡의 현대사와 야만의 사회상을 반추하면서도 결국에는 그 시대가 주입했던 관념(적자생존, 반공주의, 남존여비 등등)에 연관되고 동조했던 한 남성의 모습을 구체감 있게 그려낸다. 저자는 본인의 작업을 구술 생애사 집필이라고 정의하는 듯한데 내가 보기에는 몇몇 사회학자들의 저술보다 훨씬 더 가치있고 종요롭게 보인다. 

아직 전반부만 읽었지만 이 책 참으로 괜찮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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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주가의 결심 - 2018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은모든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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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미학도, 문장의 특색도, 서사의 박력도 찾아보기 힘들다. 힘 없고 ‘빽‘ 없는 청춘들이 비루한 일상 속에서도 농담과 웃음과 술에 의지해서 삶을 견디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줄 뿐이다. 진솔한 자기 위무와 애틋한 자기 긍정을 문장에 불어넣을 줄 아는 이 힘은 작가의 천품에서 비롯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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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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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광적이지도, 속물적이지도, 논쟁적이지도 않다. 주인공을 식인귀이자 텅 빈 내면의 존재로 그리려고 했다면 이 인물의 태생과 성향에 대한 작가만의 입체적, 총괄적인 분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제대로 미치지도, 지적이지도, 악스럽지도 않은 인물의 나이브한 넋두리만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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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1-23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173쪽부터 175쪽까지 죽음과 연관된 문구들(죽어, 죽어버려, Kill you)만 반복해서 나온다. 작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이러한 집필 수법은 말장난도 아니고 그냥 종이 낭비라는 생각마저 든다.
참으로 논쟁적인 광인을, 또는 분열적인 인물을 문학적으로 만들고 싶었다면 누구를 죽인다는 외침만 맘속으로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진짜로 살인을 작중에서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적어도 이쪽이 (인명을 경시한다는 비판을 받을지는 몰라도) 광기와 잔혹성을 드러내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를테면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코프나 영화 ˝조커˝의 아서 펠렉처럼 말이다.

ㄱㄴㄱㄴ 2020-02-11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살인 하시니 저는 첫 소설집에 실린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가 떠오르네요 초기 김사과 소설이 비교적 구조적이고 서사적이었던 반면 근작들을 보면 심리적이고 수사적인 방향으로 가는 거 같습니다..

수다맨 2020-02-11 14:09   좋아요 1 | URL
살인은 광적/분열적인 인물의 성향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소설적 장치로서 말한 것입니다. 제가 김사과의 근작에서 비판하고 싶었던 부분은 작의(식인귀이자 텅 빈 내면을 가진 인물 만들기)에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차라리 ˝추격자˝ 같은 영화나 역대 베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조커들을 보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그런 작품에 나오는 빌런(!)들이 김사과의 최근작에 나오는 악인보다는 훨씬 더 무섭고 마력적인 것 같습니다.

ㄱㄴㄱㄴ 2020-02-11 14:43   좋아요 1 | 수정 | 삭제 | URL
네 저도 김사과의 주인공의 광기가 그치들에 미치지 못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 광기는 아주 얄팍하고 표면적이죠(기껏해야 죽으라는 저주를 반복하는). 다만 김사과가 심연으로 더 깊게 들어가려고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주인공은 애초 초등학교 교실 풍경을 두고 자기가 다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니까요. 반대로 말하면 사람 죽일 위인은 결코 못 된다는 거고요... 작가의 산문집이나 이 소설 뒤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작가 본인도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고요 보고 배운 위악이나 제스쳐에 한계가 있는 거겠죠? 여튼 저는 작가의 초기작보다 근작에서 본인의 약점이 더 잘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수다맨 2020-02-11 15:10   좋아요 1 | URL
초기작보다 근작에서 본인의 약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는 ㄱㄴㄱㄴ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예전에 김사과가 ‘더 나쁜 쪽으로‘라는 단편을 썼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지금 작가는 더 안전한 쪽으로, 박하게 말하자면 더 안이한(!) 쪽으로 서사의 방향성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천국에서˝와 같은 장편에서 엿보였던 불온성이나 사회성은 엷어지고 작가 개인의 성마른 자의식만 비대해져 가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ㄱㄴㄱㄴ 2020-02-11 15:58   좋아요 1 | 수정 | 삭제 | URL
말씀하신 마지막 문장은 특히 작년 여름에 발표된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를 보면서 저도 많이 느꼈습니다. 여튼 책 자체는 한달음에 읽었는데 수다맨님 리뷰 덕분에 곱씹어 볼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수다맨 2020-02-11 16:59   좋아요 0 | URL
리뷰랄 것도 없고 여기는 제가 읽은 책에 대해서 짤막한 감상평을 올리는 곳입니다.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