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5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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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민주화 항쟁을 사실적, 총체적, 중층적으로 형상화한 단 한편의 소설을 꼽자면 임철우의 ˝봄날˝이다. 피흐르는 대지에서 슬픔과 치욕을 견뎌야 했던 수많은 인물들의 면면을 대하大河소설이라는 방대한 시공간 속에서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작가정신의 소산이라고 부를만한 역저이자, 명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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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엘리트들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자신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자신들의 일원이 아닌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계급"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다른 이들과 분리하고 구별지어 주는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엘리트들은 훨씬 더 "잡식성"이어서, 사회적 경계나 차별점들을 꽤나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들을 문화적으로 구성해 낸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배제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가지고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 그들이 가진 힘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데서 생겨난다. 엘리트들을 엘리트로 특징짓는 표식은 단일한 관점이나 단일한 목적이 아니라, 사회계층 전반에서 (나오는 것들을) 고르고 선택하고 결합하고 소비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에 있다. "인텔리 속물(고급문화만을 향유하려 하는 인텔리층)"은 이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 자리를 대체한 건 상류 문화와 하류 문화,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소비하는 범세계적인 엘리트이다.

그들은 세상 어디에 있든 편안해 안다. 우리는 심지어 우리 사회 엘리트들에게 이런 잡식성 다원주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귀족적인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영국 여왕과 함께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알지만 동시에 맥주 한 잔을 놓고 접이식 의자에 앉아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편안해할 줄 아는 사람이다. 

ㅡ 셰이머스 라만 칸 "특권" 281~282쪽



저자는 과거의 특권층이 일종의 배타적인 귀족주의를 보였다면 오늘날의 엘리트들은 잡식성 다원주의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전자는 가시적인 장벽을 세워서 엘리트와 비엘리트를 구분했다면 후자는 외관상으로는 벽을 허물어서 공생공락의 미덕을 강조하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벽을 구축해서 여전히 경계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각주에도 나오지만, 오바마와 문재인 같은 일국의 지도자들은 일반 서민들과 함께 맥주 미팅을 갖는 장면을 종종 연출한 바 있다. 이들은 과거의 지도자들과는 다르게 권위적(백악관)이거나 폐쇄적(궁정동 안가)인 공간에서 과감히 나와서 자신도 일반 서민들과 다르지 않으며 누군가를 함부로 배제하거나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2010년경에 "진보집권플랜"의 공동저자였던 조국 교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피씨방에 들러서 트위터로 다수의 네티즌들과 열띤 소통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이날 조 교수는 3000명이나 되는 네티즌들로부터 팔로워 신청을 받았고 트윗을 통한 대화는 약 75분 동안 이어졌다. 

저자인 셰이머스 라만 칸의 견해에 따르자면 우리 시대의 엘리트는 일견 개방적이고도 민주적인 이들로 보이며 나아가 평등화라는 가치를 전파하는 전도사들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평등하지 않고 접근 기회와 가능성은 모두에게 골고루 주어져 있지 않으며 도리어 일부에게 편중되어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언론인/교수 같은 이들이 대중문화(SNS, 유튜브, 치맥 등)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거기에 편안감과 즐거움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면 일종의 착시 현상이 생긴다. 이곳은 기울어진 운동장이자 장벽이 세워진 벌판인데 저들이 모두의 친구이자 아군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특권이란 일반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접촉하게 되는 지배층/상류층의 어떤 표식(자산가 부모, 고스펙, 고학비, 인맥, 학맥, 증여 등등)을 뜻한다. 엘리트와 기득권은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배타적인 서클이 아니며 오히려 민주적인 집단이라고, 아이돌의 음악도 들을 줄 알고 온라인 상에서의 소통도 할 줄 알며 서민적인 식당에 들러서 다른 이들과 소주잔을 부딪칠 수 있다고, 이처럼 개방되고 평등한 세상 안에서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여기서 상술했던 이들이 가졌던 표식은 희미해지면서 저들은 노력해서 출세한 재능 있는 사람들이자 포용성과 개방성을 겸비하고 있다는 시각이 생겨난다. 그리고 (실제로 공정하지도 않고 자신의 능력만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님에도) 공정과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부상해서 엘리트를 정당화하는 무기로 사용된다.

이제 삼 분의 이쯤 읽은 셈인데, 이 책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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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무지개
최인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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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의 대결의지와 유토피아를 향한 희구는 최인석 소설의 지배적인 특징이라고 할만하다. 썩어문드러진 세상을 전복해야 한다는 열정과 더 나은 미래를 얻고자 자신의 몸까지 내던지는 인물들의 투신이 웅숭깊게 느껴진다. 뜨거움과 파격성이란 젊은 작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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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디의 왕 - 할인행사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니로 (Robert De Niro)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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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의 아서 펠렉보다 잔혹성은 덜하나 강박성은 몇 수 위인 인물이 등장해서 영화의 시공간을 쥐고 흔든다. 평생을 바보로 사느니 단 하룻밤만은 왕이 되고 싶었다는 주인공의 고백은 인기와 성공과는 동떨어진 소외자의 절망적인 내면과, 아메리칸 드림의 기만성 및 허구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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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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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성은 있으나 자기색과 자기모색이 안 보인다. 젊은 작가들이 최근 문단에서 유행을 타고 각광받는 주제들(페미니즘, 퀴어, 비혼, 이주, 비정규 등)만 전략적으로 골라써서 문학성을 획득하려는 인상마저 든다. 신진의 미덕이라면 이단과 도발인데 그런 것들은 드물고 안정성과 전형성만 살아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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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툽 2020-04-25 12: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지금 읽은 작가들만 봐선 많이 실망스러워요. 한국 문학의 가족 사랑은 끝이 없어서 엄마 형제자매 이모, 이제 고모까지 나오네요. 장류진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도 대체 왜 베스트셀러일까 싶었고 이번 <연수>도 특정 여성들이 좋아할 법한 소설이라고 생각해 찜찜했습니다. 장희원은 신인의 패기가 안 보여 전혀 기대가 안 됩니다

수다맨 2020-04-25 14:05   좋아요 2 | URL
신진 작가들의 온갖 어려움(출판사 구하기, 원고 게재, 인정 받기, 이름 알리기 등등)을 십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자기만의 개성적인 주제를 서사화, 인물화하려는 공력이 저에게는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현재 문단에서 유행하는 특정 주제 및 서사에 경도되거나 편입되어 선배들과 독자들에게 ‘함부로 찍히지‘ 않고 ‘손해 없이 안전하게‘ 작품성을 획득하려는 어떤 저의가 있는 것도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사실 신인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작금의 문단 구조나 독자층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때가 왔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저는 이 수상집의 문제점을 꼽자면 시류 편승과 자가복제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원인은 창작 주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인정(문단)하고 소비(독자층)하는 집단에게도 있다고 보거든요.

야툽 2020-04-25 15: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문학은 여성 독자들이 주류라 많이 아쉬워요...남성 독자들이 늘어야 다른 서사들이 생길 텐데 정작 지금 이름 날리는 남성 작가들이 또 퀴어에 매달리니까. 제작년 젊은작가상 작품 중에 임성순 작가의 소설이 굉장히 충격이었거든요. 한국 순수문학은 서사성의 참신함이 없다는 저의 편견을 단숨에 깬 글이었죠. 그런 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독자분들도 다른 소재에 눈독을 들였으면 하고. 신선한 글에 목마른 독자들도 많다는 사실을 작가와 출판사, 그리고 지금 한국문학에 만족하신다는 독자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 영화와 달리 이건, 소설이잖아요! 작가의 지분이 99프로인데 말이죠.

수다맨 2020-04-26 12:01   좋아요 1 | URL
임성순 소설가는 단편보다는 주로 장편 창작에 몰두하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이라는 단편집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절반 정도만이 잡지에 발표한 작품이었고 나머지는 미발표작이더군요. 결국 단편 청탁이 없거나 드문 형편이기에 장편 창작에 공들일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서사의 참신도나 확장성에 대한 노력이 (단편 위주로 발표하는 작가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위에서도 썼듯이 문단 구조와 독자층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고찰해야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결국 이 풍토를 바꿀 수 있는 핵심적인 열쇠는 창작 주체들이 쥐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1960년대 일본 전공투는 ‘연대를 구하되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적이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이를 반대로 비틀어서 ‘고립을 구하되 연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농담조로 즐겨서 쓰고는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현재 한국 문단의 창작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슬로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 선배들의 인정을, 독자들의 애정을 얻는 데 주력할 게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노력을 극한대로 펼칠 수 있는 미지未知의 광야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야툽 2020-05-18 18: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제 답글 달아드려 죄송합니다..ㅎ. 작품집 마저 읽고 후회막심한 상태로 카페에서 나오는 길입니다. 당분간 최은영과 장류진 작가에 대한 관심은 없을 것 같아요. 강화길 작가는 자기 스타일이 확고해 2년 전부터 그분 소설집은 잘 읽고 있는데, 김봉곤은 출판사에서 왜 내세우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문학동네 편집자로 일하기 때문 아닐까요...? 다른 분들은 할말하않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임성순 작가는 장편에 힘과 정신을 쏟고 있는데 단편소설에도 많이 신경써주셨으면 해요. 장르문학을 허섭스레기 취급한다면 순수문학에서라도 재밌는 작가를 발굴하는 헌신을 문단이 보여줬으면 합니다. 언제까지 김영하, 박민규, 김중혁한테 매달릴 건 아니잖아요. 임성순도 젊은 나이는 아닌지라...암튼 임성순 단편집 사러 들어왔다가 답장 드리고 갑니다. 자주 소통했으면 해요:)

수다맨 2020-05-19 14:47   좋아요 3 | URL
죄송하실 이유 전혀 없습니다^^;;;;
단편은 문예지 청탁이 오지 않는다면 신경 쓰기가 좀 어렵지요. 제가 알기로는 투고를 한다고 하더라도 문예지에 게재될 확률이 높지는 않습니다. 설령 실어준다고 하더라도 잡지 편집위원들이 선차적으로 선정한 작품들을 먼저 실어야하기 때문에 게재일은 후순위로 늦추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김탁환과 임성순, 도선우와 주원규 같은 작가들이 장편 창작에 매진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사정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릴지도 모르는 단편에 공들이느니 (조금이라도) 장편소설로 반응을 얻었으면 차라리 이 길을 꾸준히 걷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섰을 수도 있구요. 물론 이들이 그만큼 완성도 높은 장편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사실 단편소설을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단편 정도로 문단의 주목과 각광을 받을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인 듯합니다. 오정희나 레이먼드 카버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저는 한 작가의 진정한 역량과 세계 인식을 알려면 그의 장편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