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충분히 광적이지도, 속물적이지도, 논쟁적이지도 않다. 주인공을 식인귀이자 텅 빈 내면의 존재로 그리려고 했다면 이 인물의 태생과 성향에 대한 작가만의 입체적, 총괄적인 분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제대로 미치지도, 지적이지도, 악스럽지도 않은 인물의 나이브한 넋두리만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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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1-23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173쪽부터 175쪽까지 죽음과 연관된 문구들(죽어, 죽어버려, Kill you)만 반복해서 나온다. 작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이러한 집필 수법은 말장난도 아니고 그냥 종이 낭비라는 생각마저 든다.
참으로 논쟁적인 광인을, 또는 분열적인 인물을 문학적으로 만들고 싶었다면 누구를 죽인다는 외침만 맘속으로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진짜로 살인을 작중에서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적어도 이쪽이 (인명을 경시한다는 비판을 받을지는 몰라도) 광기와 잔혹성을 드러내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를테면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코프나 영화 ˝조커˝의 아서 펠렉처럼 말이다.

ㄱㄴㄱㄴ 2020-02-11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살인 하시니 저는 첫 소설집에 실린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가 떠오르네요 초기 김사과 소설이 비교적 구조적이고 서사적이었던 반면 근작들을 보면 심리적이고 수사적인 방향으로 가는 거 같습니다..

수다맨 2020-02-11 14:09   좋아요 1 | URL
살인은 광적/분열적인 인물의 성향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소설적 장치로서 말한 것입니다. 제가 김사과의 근작에서 비판하고 싶었던 부분은 작의(식인귀이자 텅 빈 내면을 가진 인물 만들기)에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차라리 ˝추격자˝ 같은 영화나 역대 베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조커들을 보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그런 작품에 나오는 빌런(!)들이 김사과의 최근작에 나오는 악인보다는 훨씬 더 무섭고 마력적인 것 같습니다.

ㄱㄴㄱㄴ 2020-02-11 14:43   좋아요 1 | 수정 | 삭제 | URL
네 저도 김사과의 주인공의 광기가 그치들에 미치지 못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 광기는 아주 얄팍하고 표면적이죠(기껏해야 죽으라는 저주를 반복하는). 다만 김사과가 심연으로 더 깊게 들어가려고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주인공은 애초 초등학교 교실 풍경을 두고 자기가 다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니까요. 반대로 말하면 사람 죽일 위인은 결코 못 된다는 거고요... 작가의 산문집이나 이 소설 뒤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작가 본인도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고요 보고 배운 위악이나 제스쳐에 한계가 있는 거겠죠? 여튼 저는 작가의 초기작보다 근작에서 본인의 약점이 더 잘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수다맨 2020-02-11 15:10   좋아요 1 | URL
초기작보다 근작에서 본인의 약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는 ㄱㄴㄱㄴ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예전에 김사과가 ‘더 나쁜 쪽으로‘라는 단편을 썼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지금 작가는 더 안전한 쪽으로, 박하게 말하자면 더 안이한(!) 쪽으로 서사의 방향성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천국에서˝와 같은 장편에서 엿보였던 불온성이나 사회성은 엷어지고 작가 개인의 성마른 자의식만 비대해져 가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ㄱㄴㄱㄴ 2020-02-11 15:58   좋아요 1 | 수정 | 삭제 | URL
말씀하신 마지막 문장은 특히 작년 여름에 발표된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를 보면서 저도 많이 느꼈습니다. 여튼 책 자체는 한달음에 읽었는데 수다맨님 리뷰 덕분에 곱씹어 볼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수다맨 2020-02-11 16:59   좋아요 0 | URL
리뷰랄 것도 없고 여기는 제가 읽은 책에 대해서 짤막한 감상평을 올리는 곳입니다.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