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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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인훈의 초기작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패기와 포부는 크지만 필력이 그에 따라주지 않아서 어느문청의 현학적인 일기장을 읽는기분이 들어서이다. 내가 초기 최인훈에게 관심이가는 부분은 (상징이나 기법이 아니라) 바름과 맑음을 지향하며 고민을 거듭하는 어느 순일한 청년의 ‘핏빛‘ 방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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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9-21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품집 뒷부분에 실린 김현-김병익의 해설은 평자들이 각고의 노력을 들어서 썼다는 것은 알겠으나 어딘가 호사스럽다는 인상이 든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광장˝의 문학적인 위상은 인정하는 편이나 그 완성도나 흥미도가 대단하다고 여긴 적은 없다. 다만 이명준(˝광장˝)과 독고민(˝구운몽˝)이 겪어야 했던 고민과 고통이 청년 작가의 뜨거운 문학정신에서 배태되었으며 이러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도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만은 고평하고 싶다.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최인훈의 대표작이자 최대의 걸작은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인 (상하 권을 합쳐서 두께가 천 쪽이 넘어가는) ˝화두˝이다.
 
오르부아르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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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고 전후에는 차별과 빈곤을 겪었던 2인조의 국가를 향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이 책은 전쟁의 참혹과 자본(가)의 탐욕을 비판하면서도 나아가 국가가 희생자들을 농락할 수 있다면, 희생자들 또한 국가의 얼굴에 얼마든지 가래를 뱉을 수 있다는 것을 '전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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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9-16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유난히 내 마음을 자극했던 인물은 (작품의 주역들인 사기극을 벌이는 상이군인 2인조나 싸이코패스로 보이는 도나프라델이 아니라) 하위직 공무원으로서 평생을 살아 온 조제프 메를랭이었다.
메를랭은 사교성과 주변성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불쾌감과 경멸감을 불러일으키며 매사에 무관심과 냉소로 일관하는 퇴직 예정자이다. 그야말로 ‘비호감의 극치‘라고 할만한 인물이지만 적어도 자신의 직무에 한해서는 성실하고도 정직한 태도를 보이면서 도니프라델의 비리와 탐욕을 끝까지 파헤치는 데 성공한다. 그는 금전적인 유혹에 끝내 굴복하지 않았고, 조직으로부터 내부 고발자라는 낙인이 찍혀져서 소외와 모멸을 당하는 것도 감수한다. 그리고 전쟁에서 희생된 젊은이들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살아간다.
근년에 읽었던 소설들 중에서 이 작품에 필적할 만한 책은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제 저녁에 청문회를 보았고 오늘 아침에는 정경심 교수가 검찰에 기소되었다는 소식을 신문으로 접했다. 

나는 예전에도 조국을 좋아하지 않았고 여러 의혹들이 제기된 지금도 좋아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다수 갑남을녀들의 실존적인 위치와 그의 실존적인 위치 사이에는 아득한 거리가 있으며 그가 매우매우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이 차이를 실체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그가 장관에 임명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동정심이나 아쉬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반대로 쾌감이나 승리감이 들지도 않을 것이다. 조국 한 명을 낙마시킨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기득권(들)의 부/명예 세습 행위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검찰의 행보를 보면서 이것 하나만은 분명해졌다. 조국의 장관 임명 여부를 떠나서, 검찰이라는 이 적폐 조직은 반드시 개혁해야 하며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기소권, 수사권, 수사종결권, 경찰 지휘권 등)을 다른 기관에 이전해야 한다. 일단은 기득권의 타락보다는 구체제의 적폐(와 이를 조금도 고치지 않으려는 무리)에 대해서 논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달리 말하자면 조국을 통해서 사회 기득권에 대한 적극적/생산적/건설적인 비판을 개진하는 일은 아쉽게도 이 때문에 미루어진다.

앞서서 말했듯이 나는 조국이 낙마한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감정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청와대가 조국 임명을 철회한다면 그보다 더 나은 개혁적인 인물을 반드시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저 무소불위의 조직이 청와대의 개혁 동력-아직도 이것이 있는지는 회의적이지만-을 훼손시킬 것이고 나아가 촛불 혁명에 담겼던 사람들의 열망도 수포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현 정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조건부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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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가토 - 2012년 제45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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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대학내 운동권의 생활사이자, 수직적인 남녀 관계가 온존했던 풍속사로서는 읽을 가치가 충분하나 소설적 성취도가 대단한지 의문이 든다. 단순히 ‘하연이의 가족찾기‘가 아니라 학생운동 세대의 변모로 인한 운동성/실천성의 종언 문제를 핵심적으로 다루었다면 더좋은 소설이 되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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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8-27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로서는 이상하게도 소설 속 중심 인물들(하연, 인하, 정연 등)보다는 조연급 비중이라고 할 수 있는 유보살이나 권보살 같은 이들에게 호감이 갔다. 부언을 하자면 이들은 명리(인하)나 정의(정연)에 조금도 집착하지 않으며 결손 가족이라는 트라우마로 인해 생겨나는 분노와 슬픔을 쉽사리 표출(하연)하지도 않는다. 어제가 있었으니 오늘도 있고, 오늘이 있으니 내일도 있을 것이라는 체념적/달관적인 마음으로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꿋꿋하게 살아 나간다. 내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나 권여선은 먹물들보다는 이런 인물들을 그려낼 때 필력이 더 돋보인다.
 

 

 

"여기 눈을 감은 채 더 높은 보수를 받고, 여기 눈을 감은 채 더 헐거운 정직성의 기준을 요구하는 데서 나는 286이니 386이니 하는 인위적 패거리가 만들어내는 실패의 교훈을 느낀다. 첨단 과학 발전의 세계화 시대에 정치적 정직성이니 정책의 공평성이니 하는 덕목들이 말짱 힘 빠진 주장임을 잘 안다. 그렇다고 거기 무슨 마땅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럴수록 이 시대에 더욱 절박한 제목이 정치적 정직성이라고 믿는다."

ㅡ 故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인 '영웅본색'의 한 대목

 

나는 조국에 대해서 잘 몰랐던 사람이다. 물론 단편적으로 아는 것들이 아주 없진 않았다. 그가 서울대 법대에서 교수를 했고 강준만이 분류한 이른바 '강남 좌파'에 속했다는 것, 그럼에도 강남이라는 수식어가 피수식어를 압도하지는 않을 만큼 친자본적/친기업적 행보를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 그렇다고 좌파적인 삶을 일관되게 살았느냐 하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사회의 부정과 불의에 대해선 쓴소리를 하려고 했다는 것. 범박하게 정리를 하자면 이 정도가 내가 아는 조국이라는 사람이었다.

최근 들어서 조국과 관련된 사적인 정보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고위 공직자에 임명되려는 사람일수록 그 이의 신상과 관련된 자료들은 대부분 미담이나 훈담보다는 탈법이나 위법과 근접한 경우가 잦으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웅동학원, 사모펀드, 종합소득세 지각 납부, 후보자 아들의 이중국적 보유 등등. 그 중에서도 이른바 속된 말로 '끝판왕'이라고 부를 법한 의혹은 후보자의 딸과 관련된 것들이다. 고등학생의 제 1 저자 의학논문 등록, 공주대 인턴 근무시 제3저자 논문 등록,  6학기 연속 장학금 수령(부산대 의전원), 단 3학점만 받았음에도 2학기 연속 장학금 수령(서울대 환경대학원) 등등 온갖 의혹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허위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이므로 신문과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명백한 불법으로 규정 지을 만한 것들은 생각보다 적다. 그럼에도 다수 사람들은 조국 일가의 과거사와 현 실상에 대해서 고운 눈길을 보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조국이라는 공직자의 언행 불일치를, 특정 기득권의 일가가 남보다 나은 학업적인 혜택을 받으면서 그로 인해 부와 명예까지 세습되는 것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이 정권이 강조한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성이 실은 공염불이라는 것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신평 변호사의 페북 글에도 나오듯이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로 나누면 (누가 귀족이고 누가 하층인지) 잘 보이지 않으나 기득권/비기득권 세력으로 나누면 누가 위계를 만들고 금권을 물려주며 권력을 휘어잡고 있는지 보인다. 물론 조국은 박근혜/최순실/김기춘과 같은 국정을 농단하여 부정부패를 조장하고 법 질서를 개판으로 만든 이들과 함부로 비교하면 안 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계급과 지위를 후손에게 대물림하고 있으며 이러한 행태는 지금은 자한당의 발호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사생활과는 별도로 검찰개혁을 수행할 이는 그밖에 없다는 이유로 부차적인 문제처럼 취급하는 이도 적지 않아 보인다. 실례를 들자면 작금의 민주당 지도부와 안도현/공지영 같은 사람들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들은 과거의 적은 군부정권과 그 하수인들, 지금의 적은 자한당과 그 추종자들이며 그 외의 사안들에 대해선 너무나도 협애한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이런 이들은 해당 업계(정계/문학계)에서 본인들이 더 이상 비주류나 피억압자가 아니며 이제는 기득권의 한 축이 되었다는 것조차 잊고 있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은 정유라라는 특정인의 언행에 대해서 크게 비난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 덕분에 그러한 특권을 누리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고 심지어 자신을 '금수저'로 보려는 이들에게 부의 세습도 일종의 능력이라는 식으로 답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처럼 무지하고 무례해 보였던 정유라는 좀 더 똑똑하고 유연한 기득권의 딸(들)로, 개정판이자 확장판이자 심화판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며 이러한 부활은 앞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조국 개인의 장관 임명 여부를 넘어서) 절차의 공정성과 정치(인)의 정직성에 대한 재인식과, 재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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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8-24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특혜는 세습된다는 것. 그 사실보다도 더 참담한 것은 특권층의 특혜를 위해서 국가 제도가 그들의 특혜를 위해 봉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보다도 더 참담한 것은 공평한 룰을 생명으로 여겨야 할 교육 제도의 시뻘건 민낯을 보야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보다도 더, 더더더더욱 참담한다는 것은이 불공평이 소멸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증후 !

수다맨 2019-08-24 18:57   좋아요 0 | URL
곰곰발님 말씀처럼 불공평이 소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 불공평이 심화, 확대되지 않으면서 교육 제도의 평등이 (조금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하는데 지금은 기득권의 이권 세습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