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의 "죽음 준비 학교"라는 책 표지에는 삶의 소풍을 즐기고 있는
이들을 위한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몇 편 되지 않는 시 중에서 천상병의 "귀천"이라는 시
를 좋아하는데...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면서 현재의 삶에 대한 조급한 마음이 여유롭고 느긋해진다.
심지어 상황이 변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해진다.
소풍...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
내 삶은 잠시 다니러 온 소풍이다. 이 소풍이 끝나면 원래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 그 곳은 고통도, 미움도 없고 차별도 없는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 평화로운 곳이다.
소풍은 즐겨야 한다. 소풍날 지독하게 날씨가 나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내 소풍 가방 뒤에는 맛있는 김밥도 있고, 과자도 있고, 음료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이 소풍을 즐길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천상병이 말하는 소풍 끝나는 날이 우리에게는 이 세상과의 이별 곧 죽음을 뜻한다.
죽음 준비 학교...
책 속에는 다양한 죽음이 이야기 된다.
이미 우리 기억 속에는 희미해졌지만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 되고 있을 다양한 사건들....
화성 씨랜드 화재 사건, 초등학교 소방안전 교육 추락사고,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그리고 다양한 천재지변으로 인한 죽음과 전쟁과 민주화 투쟁과정에서의 죽음 등
그리고 가족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기게 되는 죽음인 자살...
모든 죽음마다 마음 절절한 사연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아픔조차 마음껏 내색할 수 없는 죽음이 자살로 인한 죽음이다.
남은 가족들은 자살의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자살한 가족들을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긴 시간 고통에 시달린다. 주변의 위로조차 받지 못하며 가족들 간에도 비밀로 묻어둔다.
자살한 자는 이 미 죽음으로써 평화를 맛 볼지 모르지만... 남은 자는 곱지 않은 주변의 시선과 무언가 문제있는 집안일거라는 선입견과 맞서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로 죽음은 금기시되는 단어 중 하나이다.
책은 요즘 혼동되어 사용되는 안락사와 존엄사의 뜻을 명확히 구분해
주고 있다.
소생이 가능하지만 환자의 극심한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자연적인사망을 앞당기는 것은 '안락사'라고 할 수 있고, 그와는 달리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은 '존엄사'이다.
그래서 존엄사는 자연사이며, 이 때 환자의 통증관리 등을 위한 완화의료행위는 당연히 지속한다.
이 부분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건...생존시 유언서이다.
예를 들어 소생이 불가능할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말되,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한 조치는 최대한 해줄 것을 미리 가족들에게 이야기하거나 문서를 만들어 두는 행위이다.
태어나는 방법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의 방식은 이렇듯 준비하고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이 맞이하고 싶은 죽음의 방식을 미리 정해 놓은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두번의 죽음을 경험했다.
첫번 째 죽음은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내 어린시절 기억 한편에는 외할머니가 아직도 계시다. 첫 손녀였던 나를 너무나 예뻐해주셨던 할머니... 오랫동안 편찮으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는 몸도 마음도 아주 지쳐 계셨던 것 같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셨는데... 그날 오전에 있을 목사님의 심방예배를 위해 아침부터 깨끗이 목욕을 시켜 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예배를 마친 후, 외삼촌 부부가 잠시 목사님를 배웅하러 나갔다 온 사이에 조용히 임종하셨다.
나중에 외할머니 성경책 속에서 내 어릴적 사진을 발견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죽음이 무엇인지...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두번 째 죽음은 아직도 겨울이 되면 날 아프게 하는 사랑하는 친정아빠의 죽음이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 풀어 놓는 것 조차 아직은 너무 아프다.
삶에 대한 의지가 누구보다 강한 분이셨지만... 죽음은 본인이 제일 먼저 예감하는 것지...
수의 대신 평소에 자주 입으시던 등산복을 입혀달라고 하셨다. 모든 장례절차와 그 후 정리해야 할 것들을 차분히 이야기해 주셨다.
그리고 3일만 슬퍼하라고... 더 이상은 울지 말라고 하셨다.
준비하시는 분들께 어렵게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수의 대신 등산복을 입혀주셨다.
아팠던 아빠의 모습이 아니라... 햇살 따뜻한 봄날~ 산에 다녀오마 하고 문을 나서시던 아빠의 모습그대로였다.
고인의 뜻이 뭐였을까 ? 이런 걸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아빠를 보내드리며... 나 역시 그런 죽음을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다시한번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고 싶다. 내 죽음의 방식을 남은 자의 몫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남은 사람들이 편안히 나를 위해 슬퍼하고 차분히 떠나보낼 시간을 주고 싶다면 지금부터 죽음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