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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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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이라는 그의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잊기가 어렵다. 눈으로 보는 것은 물론 입으로 따라 읽기에도 동글동글한 느낌을 주는 그 이름은 처음 듣는 그 순간에도 익숙하게 다가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유일무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윤대녕 작가 이외에 그와 같은 이름을 들은 적이 없다. 전 세계를 통틀어 단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어떤 증표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다.

 

하지만 익숙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이름일 뿐, 나는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없다. 거기에 거창한 이유나 피치 못할 사정 따위 있을 리가 없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읽어봐야지'라는 생각만하다가 다른 책을 집어들기를 반복. 때문에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받았을 때는 "오오!"하며 감탄했다.

 

작가의 머릿속에는 보통 사람과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함께했던 이의 손짓하나 대사하나, 심지어 그 순간 그곳에 존재했던 공기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그 수많은 공간과 기억들이 그의 손을 빌어 완벽하게 되살아난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공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 그리고 다시는 될 수 없는 그때의 '나'. 분명 단 한 권의 책으로 윤대녕이라는 사람을 다 알기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책만큼 그에 대해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방을 체험해보지 못한 나는, 경기장을 찾아본 적이 없는 나는, 자동차를 소유한 적이 없는 나는 그의 이야기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 꿈이라도 한사코 복원하고 싶었던가 보다"라는 그의 말과 마음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그 시절의 나에게 느끼는 안타까움과 사랑스러움.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만들어냈으며 그 덕분에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또한 앞으로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이 '이제는 당신 차례입니다'며 내 이야기를 되살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는 기억을 아는 것은 그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만큼 그에 대해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통해 내가 알게 된 윤대녕이라는 사람은 꽤나 어려운 사람이다. 다른 누군가가 들어설 수 없을 만큼 빈틈없이 '나'로 메꾸어진 사람. 그 때문에 깐깐하고 까칠하며 고집 센 느낌을 주는 사람. 한없이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고요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 그 자신이 너무 단단해서 잘못 다가갔다가는 단 한 번의 부딪침으로 내가 가루가 되어 버릴 것 같은 사람. 이렇게 말하고 보니 그의 작품에 쉽게 손 내밀지 못할 이유가 진짜로 생겨 버린 것도 같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을 마주하고 싶을 때 그를 만나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한 명의 '어른'을 만난 것 같은 느낌. 윤대녕 작가와의 첫 만남은 그와는 다른 나라는 존재로 또 한 명의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름이 주는 느낌과 그에 대한 느낌이 완전히 달랐지만, 느낌과는 별개로 또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다, 는 것이 리뷰를 쓰며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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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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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샛노란 표지 (그야말로 이 책을 목표로 서점에 들어간 사람을 위한 장점!) 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마술 라디오>라는 제목에서는 싱그러운 느낌이 묻어나고, 오른쪽에 치우쳐 그려진 그림에는 방금 그려 넣은 듯 한 자연스러움이 존재했다전체적으로 여백이 많은 깔끔한 구성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거기에 더해진 '정혜윤'이라는 세 글자는 친근하다 못해 운명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라디오 피디로서,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듣고 묻는자'로서 그녀는 많은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었고, 그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라디오 한 대를 가지고 있음을 자진해서 밝혔다. 그녀는 그것이 "내 가슴속이 아니라면 어디에도 존재한 적 없는 라디오일 거야."라고 했다이어서 "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를, 말을 다르게 쓸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힘을 얻는 것을 숱하게 봐왔어. 지금 내가 바로 그것을 해보려고 해"  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의견''위로''충고''교훈'도 아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4개의 이야기가 마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스로를 자유라고 말하는 어부눈맛을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빠삐용의 아버지, 귀가 배지근해진다는 할머니자신의 주변을 아름답게 만드는 야채장수. 그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마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이자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무언가'였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멋지게 변신시켜주는 놀라운 마술사였다. 그들은 먼저 자신을 위해서 마술을 부렸고, 그 다음에는 서로를 향해 마술을 부렸다. 그로써 모두가 선명한 빛을 뿜어냈다. 이야기 속에서 혼자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 중 빛나지 않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에서,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는 듣는 이에게까지 전해지는 놀라운 힘이 있었다. 그 빛은 작지만 분명하게 전해져 때로는 질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각자의 가슴속에 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불러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전해진 빛은 완전히 새로운 빛을 뿜어냈다.  마술 라디오를 들은 사람들이라면 분명 이 빛이 일으키는 변화를 느꼈을 것이다.

 

이야기도, 사람들도 분명 특별하지 않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다. 나와 내 곁에 있는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들이자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누구나 그들처럼 자신 안에 저마다의 마술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점이라고는 이야기속의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마술을 꺼내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고맙게도 그들은 정혜윤 그녀만의 이 마술 라디오를 통해 우리에게 그 마술을 전달해준다. "길을 잃었을 땐 도처에 무수히 많은 스승을 만들면서 한 발 한 발 갈 수 밖에 없어요. 게다가 내가 길을 잃었을 때 어두운 길모퉁이에서 등불을 들고 서 있을 누군가를 상상해보면 떠오르는 어떤 얼굴이 있을 거예요. 그 얼굴은 필시 무척 낯이 익을 거예요. 내가 길을 잃을 때 나를 이끌어줄 은인은 뜻밖에도 내 곁에 있을 수 있어요." 라는 그녀의 말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 낯익은 스승들의 도움으로 각자의 마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다시 우리들의 마술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것이다. 그를 위해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가슴속 라디오에 좋은 이야기를 엄선해서 차곡차곡 쌓아놓는 노력을 해야 한다. 즉 언제든 필요한 순간 필요한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스스로 빛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할 수는 없으며, 의도하지 않은 새에 잘못된 길로 다른 사람들을 이끌 수 도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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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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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사람들은 보통 책을 읽기 전에도 그 책의 장르나 줄거리 같은 정보들을 알고 있다. 그런 간단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자신이 읽을 책을 고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직접 고르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책의 앞뒤 표지를 통해 먼저 정보를 알게 된다. 아니면 조금 수고스럽긴 하겠지만 인터넷에 책 제목을 치는 것만으로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자신만의 "기대" 형성하고, 책을 펼쳐들게 된다. 대개의 경우 이 "기대"에 딱 들어맞거나 아니면 그 이상 혹은 이하로 나눠진다.

 

그 당연하다면 당연한 과정을 왜 이렇게 길게 늘어 놓느냐 하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가 이 자연스러운 과정을 완전히 파괴해버린 책이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내가 직접 선택한 책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가의 작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지 않은 나로서는 줄리언 반스라는 이름 자체도 생소하다그래서 책을 읽기 전 내가 가지고 있던 정보라고는 "심장을 도려내는 상실과 이를 견디는 영원함의 이야기"라는 카피와 "아내를 잃은 고통과 그 아픔에 맞서 살아온 5년 동안의 이야기를 출간" 했다는 것, 그리고 "19세기의 실존 인물 프레드 버나비와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 사진가 나다르의 이야기와, 아내를 잃은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줄리언 반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결합된" 책이라는, 정확히 말해서 책 뒤표지에 프린트 되어 있는 내용이 전부였다. 이 내용들을 토대로 내가 형성한 기대는 더 말 할 것도 없다. '사랑과 이별' 어떤 이야기든지 결국 그 둘을 이야기할 것이라는 게 내가 가진 기대였다.

 

하지만 이 책은 내 기대를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첫 장 "비상의 죄"를 읽으며 나는 몇 번이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게, 사랑, 이라고?" 급기야는 책이 잘못 온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분명 표지에서 언급된 이름들이 나오기는 하는데, 눈 씻고 찾아봐도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기구에 열광한 사람들, 즉 프레드 버나비와 사라 베르나르와 나다르의 비행과 그들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 전부였다. 흥미롭기는 했지만, 반전이라는 말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책을 덮고, 인터넷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아주아주(!) 명쾌하게 해결됐다. 출판사 다산책방에서 나온 책 소개에 따르면 1부는 "일종의 역사서이자 르포르타주"이고 2부는 "허구적 러브스토리"이고, 3부가 내가 기대한대로인 저자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경우 나의 무지와 게으름, 성급함이 문제였다. 이후로는 책 읽기가 수월했다.

 

 

 

2.

 

비상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과 그를 위한 노력을 알 수 있는 1부는 그 건조한 기록 속에서 기묘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 자신이 살아있음을 소리로 들을 수 있"기를, 빅토르 위고가 "새가 되기를 기다리는 알이 하늘에 떠 있군. 새가 알 속에 있으니 곧 나타나겠지"라고 말한 상태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거기에 더해 사진과 항공술을 합친 나다르의 이야기는 감탄이 나올 정도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친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2부에서는 아슬아슬한 비상이, 그리고 추락이 이야기됐다. 3자인 내가 불안할 정도로 위태로웠던 로맨스는 결국 비극으로 끝났다. 어쩌면 '비상의 죄''평지에서' 이루어진 것일지도 몰랐다. 2부 시작에서 보았던 "때로는 합쳐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문장은 일종의 예언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각자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던 1, 2, 3부가 모두 3부로 이어지기 위한 하나의 길임을, 그리고 이곳이 3부로 이어지기 위한 마지막 단계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는 첫 문장이 3부에 와서는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로 바뀌었다는 것이 그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했다.

 

고통. 절망. 아픔. 슬픔. 좌절. 그 어떤 단어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 역시 나의 짧은 언어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가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었고, 아내의 죽음과 더불어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그는 피하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똑바로 마주봤다. 아내의 죽음과 그로인한 부가적인 것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그 치열한 과정이 책에는 담담하게 펼쳐졌다.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 저자의 이야기는 심지어 허구의 이야기, 즉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온전히 그의 것이기 때문에 차마 '공감'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아마 그의 나이가 되고, 그와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나는 그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공감이라는 말로 포장된 얕은 이해라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3.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있을 것이라고는, 아니 이런 글이 나올 것이라고는, 아니 이런 글의 존재 자체도 나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더 당황하고 버벅거렸던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이 리뷰 속에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 조금 당황스러운 기분이다.

 

쓸데없이 길기만한 횡설수설이라는 것을 깨닫지만,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부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완전히 다른 성향의 저자와 독자의 만남이랄까. 왠지 저자의 다른 작품들은 항상 내 읽을 책 목록에 남아있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리고 이쯤에서 생각나는 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제외하고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저자의 작품.

 

정말이지, 당황스러울 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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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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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에 대한 내 생각을 정의하자면, '영화 같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그녀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며, 매끄럽고 흡입력 있다. 특히 그녀의 작품 중 제일 처음으로 만났던 <내 심장을 쏴라>10분이 고작인 학생의 쉬는 시간을 모두 쏟아 붓고도 점심까지 굶으며 봤을 정도였으며, 이후 그녀의 이름을 달고나오는 책은 무조건 내 읽어야 할 책 목록 1위가 되었다나는 소설가를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녀의 팬으로서 그녀가 가진 능력과 에너지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그녀야 말로 진정한 이야기꾼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엔진에 이상이 생겼단다. 새 소설을 떠올려도 뜨거워지지 않는 피, 써지지 않는 원고글을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감마저 생겼다는 그녀였다. 글을 쓴다는 단 하나의 공통점 속에서 나는 그녀가 느꼈을 그 공포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그건 "선택사항이 아니""생존의 문제"였다. 이야기꾼에게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결국 엔진을 찾기 위해 그녀는 여행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 승민이 꿈꾸었던 신들의 땅, 안나푸르나가 그녀의 목표였다. 생애 첫 해외여행지로 안나푸르나를 선택하는 작가의 모습은 엔진에 이상이 생겼다기보다 브레이크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조금 아이러니랄까하지만 그게 또 그녀다워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물론 속으로 '난 안해. 아니 못해'라고 생각하면서.

 

후배 작가 김혜나와 가이드 검부, 포터 버럼과 함께 떠난 환상종주. 실제로는 끔찍할 정도로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버겁고, 차라리 죽고말지 싶을 정도로 지쳤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입을 통해 듣는 이야기는 꽤, 아니 굉장히 즐거웠다. (물론 이 말을 작가님 앞에 대놓고 할 용기는 없다)

 

무엇 하나 꼽을 것 없이 모든 것이 환상적이었다. 소설과는 또 다른, 아니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듯한 그녀의 입담은 심지어 고산병으로 죽을 뻔한 위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가슴속에 품어놓았던 기억들을 펼쳐놓을 때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검부와 나누는 대화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는 혼자 빵 터져서 킥킥댈 수밖에 없었다. 진지할 때는 그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감탄할 정도로, 평소(...) 때는 너무 솔직하고 시원시원해서 보는 사람이 다 웃어버릴 정도로, 그리고 힘들 때는 혼자서 링으로 들어가는 선수처럼 이를 악물고 강단 있게. 정말이지 그녀의 완급조절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게다가 글에 더해진 안나푸르나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파랗게 펼쳐진 하늘과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대지의 모습은 현실 같으면서도 현실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사진보다 그녀의 이야기가 더 현실감각이 더 떨어지는 탓에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가 사진이 등장하면 그때서야 ", 이거 에세이지?"하는 심정이었다. "이거 소설이 아니었어!"하는 깨달음이랄까. 어쨌거나 글도 사진도 모두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또 안나푸르나를 향해 그녀가 물었던 질문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나 자신과 싸울 수 있을까. 그때 답해왔던 목소리가 똑같은 답을 들려주었다. 죽는 날까지.", 종주의 마지막에 검부가 그녀에게 했던 말 "you are a fighter", 그녀 스스로의 다짐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도 모두 눈물날정도로 멋졌다. 그녀의 기나긴 싸움에 박수를 치며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게도 묻고 싶어졌다. "넌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니?"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이나 즐겁고 또 행복한 일이었다. 끊임없이 나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그녀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엔진으로 우리에게 돌아왔고, 누구보다 열렬하게 에너지를 뿜어냈다. 굉장하다. 멋지다. 존경스럽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차오름이었다. 그녀처럼 안나푸르나 환상종주를 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나 역시 그녀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책으로 인해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진정한 이야기꾼이라고. 그리고 거기에 더해 몇 가지 수식어를 더 붙이려고 한다. 최고의 파이터, 멋진 언니, 함께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굉장한 에너자이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You are a best"라고. 그리고 당신의 엔진이 언제나 힘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소설가를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녀의 팬으로서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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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 길 위에서 배운 말
변종모 지음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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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혼자 중얼거리는 듯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아듣지 못할 말로 독백하는 어린 배우를 보고 있는 것 같았고그것이 못내 불편하기까지 했다. 몇 번이고 손에 잡았다가 놓으며 "그래도"를 반복해야만 했다. 당연히 읽는 속도는 더뎌지기만 했다.

 

결국 내가 선택해낸 최후의 방법은 펼치는 대로 보는 것이었다. 이 책을 순서대로 읽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시간이나 장소 같은 흐름에 따라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다른 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그제야 나는 "그래도"라며 각을 잡고 앉았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다시 책을 잡았다최근에 내가 한 선택 중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오랜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 작가는 많은 것들을 겪고 느끼고 생각했다. 만남과 이별, 나눔과 얻음, 새로움과 친숙함, 깨달음과 후회그리고 그 속에서 수많은 말들이 그를 지나갔다. 어떤 말들은 그와 마주보았고 어떤 말들은 그를 스쳐지나갔으며 또 어떤 말들은 그와 함께 걷다가 그 자리에 멈춰서 손을 흔들었다. 말 하나하나에 잊지 못할 추억이, 치열한 고민이, 소중한 감정이 담겼다. 작가는 그 말들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는 것은 내가 작가의 시선으로 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같지만 다른 시간에 다른 공간에서 다른 것을 경험을 한 작가와 나는 같을 수 가 없었다. 한 순간에 나를 잡아끄는 낯설고도 어지러운 풍경에 헤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나는 작가의 시선을 하는 대신 나만의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영원히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었다.

 

나만의 시선으로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새로운 경험을 진심으로 즐거워할 수 있었다나는 작가가 지나간 길을 나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보고 느끼고 음미했다. 그리고 남겨진 말에 공감하고 감탄하며, 그 밑에 혹은 그 옆에 나의 말을 덧붙였다. 내 안에도 차곡차곡 말이 쌓여갔다. 그것은 내 안의 것이기도 했고 작가의 것이기도 했고 내가 만났던 그 누군가의 것이기도 했다. 분명한건 그것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하는 말들도 누군가의 눈에는 독백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즉 이해할 수 없고 답답하기만 한 혼잣말 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더 느슨한 마음으로 조금 더 끈기를 갖고 지켜본다면, 그리고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분명 생각이 바뀔 것이다.

 

''라는 존재는 이미 나 아닌 다른 무엇, 다른 누구와 함께하며 이루어진 것이기에 온전히 혼자인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말이라는 것 역시 나와 나 아닌 다른 무엇과 누군가가 서로 만남으로서 탄생하는 것이기에 온전히 한 사람만의 것일 수 없다. 결국 나의 말이 당신의 말이자 우리의 말이며,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 역시 나의 말이자 당신의 말이자 우리의 말 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시선으로 말들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어설프게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프롤로그를 통해 작가가 직접 "모든것은 나로부터 비롯되고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아야 세상의 다반사를 의식하고 너의 마음을 인식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한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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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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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2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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