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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트 ㅣ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스타더스트는 여자를 위해서 별을 따러가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라는 아주 간략한 사전 정보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늘을 날아올라서 별을 딸까 내심 궁금했는데, 하늘로 날아가는 건 아니었다. 주인공이 땅에 떨어진 별똥별을 찾아서 동쪽으로 가는 이야기였다. 하긴 아무리 빅토리아 여왕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라도 하늘을 날아서 별나라까지 간다는 건 좀 그렇지.
여자가 예쁘고 사랑스럽더라도 별 따준다, 달 따준다, 황금 준다, 보석 준다, 식의 허풍 섞인 장담은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트리스트란 숀은 이것 저것 해준다고 제의하다가 경솔하게 떨어진 별을 가져다 준다는 황당한 약속을 하게 된다.
여자 쪽도 경솔하긴 마찬가지다. 여자는, 특히 예쁜 여자는 말조심을 해야 한다. 그러나 마을에서 아니 영국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예쁘다는 빅토리아 포리스터는 별을 가져다주면 키스를 해주고 원하는 걸 들어준다고 덜컥 약속을 해 버렸다. 곤란한 일이다. 허풍섞인 약속을 남발하는 멍청한 남자를 위해서도, 여자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은 아니다.
진짜 별을 따오면 어쩔거냐? 진짜 황금을 가져오면? 진짜 보석을 가져오면?
약속을 이행한 놈이 아주 멍청한 놈이라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트리스트란 숀은 멍청한 인물도, 못된 인물도 아니다. 여자 입장에서는 참 다행스런 일이다.
스타더스트의 표지는 예쁘장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별을 따러간다는 설정은 로맨틱하다. 이 두 가지 요소를 통해서 책은 낭만적인 동화의 냄새를 풀풀 풍긴다. 하지만 읽어보면 내면의 어두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환하고, 밝고, 발랄한 판타지 사이로 암울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 끝에 가서 사악한 마법이 모두 풀리고 그 결과 전부 예쁘고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 라는 식이 아닌 것이다. 작가 닐 게이먼은 필요없는 인물을 서슴없이 퇴장시켜 버린다. 얘는 끝까지 살아서 행복해질 거야, 라고 생각하는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 갈기면서 가차없는 죽음을 선사한다.
스타더스트는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가 아니다. 어린이와 어른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쓴 글인 줄 알고 읽다가 초반의 정사 장면을 보고 한 방 먹은 후, 가차없는 퇴장에 또 한 방을 먹었다. 시니컬한 유머도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면,
숀이 빅토리아의 아름다운 얼굴을 묘사하려고 하자 상대가 말을 끊고, 그래 아름답다고 치고 그 예쁜 여자가 어떤 어리석은 심부름을 시켰느냐고 묻는 대화, 그리고 숀이 그녀가 시킨 일을 말하자, 상대는 나라면 돼지우리에 얼굴이나 처박으라고 말하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지 않을 다른 여자를 찾겠다고 말하는 대화, 등등
아주 재밌게 읽었다. 스타더스트는 요정이 나오는 옛날 이야기를 비틀어 버린 현대적 판타지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전통과 맥이 닿아있는 느낌을 준다. 앞에 뿌려놓은 복선은 뒤로 가면서 척척 맞아 떨어져서 완벽하게 맞물린다. 훌륭하다. 스타더스트는 글읽기의 재미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