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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전설 세피아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장편 소설 혹은 연작 단편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독립적인 작품들이 모인 단편집이군요. 내용도 그렇고 기대했던 것과 좀 달랐습니다.
첫 번재 실린 단편은 표제작인 도시전설 세피아입니다. 제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소재를 불쾌한 방식으로 서술해 놓아서 읽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일본 소설 읽다보면 가끔 마주치게 되는 음습하고, 꿉꿉하고, 신경을 건드리는, 어쩐지 병적이 느낌이 나는 그런 유형의 단편이어서 중간에 그만 읽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서 덮으면 다시 손대지 않을 것 같아서 참고 끝까지 읽었는데, 결말이 훌륭했습니다. 중간의 불쾌함을 완전히 날려버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불쾌함을 상당부분 씻어줄 정도로 좋았습니다. 나오키 상 후보에 오를 만한 작품입니다.
두 번째 단편은 어제의 공원입니다.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현실에서 비현실로 미끄러져들어가는 부분의 묘사가 매끄럽습니다. 여기 쓰인 소재는 영화나 소설에서 여러 번 접해본 것이라 심드렁하게 읽었는데 역시 결말이 좋았습니다. 반전이라고 할 종류의 것은 아닌데 좀 놀랐습니다.
세 번째 단편은 아이스 맨입니다. 이 단편을 읽으니 작가의 작품 성향이 또렷하게 다가오더군요. 슈카와 미나토는 호러 작가였습니다. 아이스 맨은 미국 호러와의 차이점이 강하게 느껴져서 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스포일러 나옵니다.(읽지 않은 분은 네 줄 건너뛰세요.)
만약 이 단편이 미국 호러였다면 결말이 달라졌을 겁니다. 주인공이 원하지 않았는데 공포스런 어떤 상황에 말려서(폭력 같은) 그 소녀(갓파)와 냉동창고에 갇히는 것으로 끝났을 겁니다. 일본 호러는 성향이 좀 다르네요. 주인공이 자기가 원해서(소녀에 빠져서) 소녀와 같이 사는 걸 택합니다. 확실히 달라요. 조금 병적이긴 하지만 무섭긴 일본 쪽이 확실히 무섭네요.
네 번째 단편은 사자연입니다. 40대 여인이 화자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목소리로만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아, 병적입니다. 기분 나쁜 단편입니다. 결말이 섬뜩했습니다.
다섯 번째 단편은 월석입니다. 이 책에 실린 작품 중 가장 좋았습니다. 내용도 좋았고 결말도 좋았고 작품을 감싸고 도는 따뜻한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후지타는 전철로 통근을 하던 중 우연히 창 밖을 통해 아파를 보던 중 의외의 사람이 베란다에 서 있는 걸 봅니다. 자신이 총대를 메고 해고시켰던 부하 직원이 물끄러미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나중에는 임종을 지키지 못한 어머니가 서 있는 게 보입니다. 전철을 타고 출근할 때마다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결국 후지타는 문제의 집을 방문하게 되고 원인을 알아내게 됩니다.
다섯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의외의 결말이나, 뭔가 찡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월석 같은 작품을 보면 슈카와 미나토는 단순한 호러 작가는 아닙니다. 주목할 가치가 있는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