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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기담 - 왕조실록에서 찾은 조선 사회의 뜻밖의 사건들 ㅣ 기담 시리즈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뒷담화가 재밌듯 정사보다는 야사가 재밌죠. 조선기담에 실린 이야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서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이야기를 가려 뽑아 엮은 것이라 완벽한 야사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교과서에 수록될 만한 역사는 아니니 야사라고 해도 크게 무리될 것은 없어 보입니다.
조선기담은 세 개의 주제 아래 19편의 기이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회기담에 여덟 이야기, 왕실기담에 여섯 이야기, 선비기담에 다섯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조선기담을 읽으면서 역시 옛날은 옛날이다, 라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옛날 일을 지금의 잣대로 들여다보는 건 불공평한 일이 되겠지만 사람들이 참 어리석다, 라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꼽자면 옛날에 태어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기담에 실린 이야기 가운데, 가장 재밌었던(가장 어처구니없었던) 이야기는 일곱 번째 이야기 비가 오지 않아 실패한 혁명입니다. 말 그대로 비가 오면 반란을 일으키기로 계획을 짰는데 가뭄이 들어 비가 오지 않는 바람에 반란을 일으켜 보지도 못하고 흐지부지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입니다. 어째서 반란의 신호를 비로 정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기 예보도 없던 시절인데 말이죠. 계획을 짜는 걸 보면 비가 오더라도 실패할 게 뻔하지만, 그래도 아쉽네요. 세 번째 이야기 용산에 버려진 두 발 잘린 아이나, 여섯 번째 이야기 사람의 간과 쓸개는 명약이 되니, 같은 이야기는 참 가슴이 아픕니다. 시절이 어려우면 가장 고통 받는 건 어린아이 같은 약자이기 마련이죠.
왕실기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세 번째와 여섯 번째 이야기였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비록 한 나라의 왕이지만 딸의 아비이기도 한 중종의 부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딸이 구박을 받다가 죽자 그 원을 풀어주려고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위와 사위의 첩을 처벌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여섯 번째 이야기는 소현세자가 살아서 왕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역사에 있어서 이런 가정을 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선비기담에서는 조선 시대 바바리맨 이야기가 제일 좋았습니다. 피해자가 숨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군요. 그리고 가해자가 활개 치는 것도. 지금도 이러니 옛날은 더 했겠지만 여자를 희롱한 선비가 뒤에 벼슬자리에 오르는 건 꽤나 입맛이 씁쓸한 일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라 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