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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드는 남자 ㅣ 밀리언셀러 클럽 76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서론이 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네요. 어떤 사고에 휩쓸려서 주인공의 몸이 줄어들고, 그 원인을 밝혀내서 몸이 주는 걸 저지하려고 노력하고, 그 노력의 결과 과학적 혹은 비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원인을 밝혀낸 후 모종의 사건을 통해서 재난을 극복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이야기는 예상과 많이 달랐습니다. 써놓고 보니까 헐리웃 블록버스터 줄거리 같군요^^
앞에서 말했듯 이야기는 바로 본론으로 진입합니다. 배경설정은 초반 한 쪽으로 모두 끝내버립니다. 주인공 스콧의 몸이 줄어드는 원인은 간단합니다. 방사능 안개에 몸이 닿은 때문입니다. 그리고 작가는 주인공 스콧을 바로 고난과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넣어 버립니다.
줄어드는 남자는 묵직한 직구 같은 글입니다. 잔가지는 쳐내버리고 몸이 줄어드는 남자의 고난과 절망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읽고 있자니 시쳇말로 안구에 습기가 차네요.
몸이 매일 작아진다니, 이것 참 곤란한 노릇입니다. 병원비는 쌓이는데 몸이 이러니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인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구경거리로 자신의 몸을 세상에 내놓는 일 뿐입니다. 아내와 관계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책 속의 표현대로 거인국의 여자를 범하려 한 음탕한 난장이가 된 기분에 스콧은 비참할 뿐입니다. 몸이 작아질수록 생활은 힘들어 집니다. 고양이, 거미에게 생명을 위협받는 처지에까지 빠지게 되고 죽음의 공포에 떱니다. 처음에는 안 됐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는데 나중에는 그의 고난을 은근히 즐기게 되더군요. 이번에는 또 어떤 위기에 처하게 되나 기대가 됩니다. 그러다가 스콧처럼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스콧이 계속 작아지면 어떻게 될까?
의문은 결말에 가서 풀립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행복한 결말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컷 고생시켜 놓고 마지막까지 절망 속에 던져버리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말이죠. 보는 시각에 따라서 이게 무슨 해피엔딩이냐고 느낄 분도 있겠지만 전 만족스러웠습니다. 제 기준으로는 해피엔딩입니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전작 나는 전설이다도 은근히 행복한 결말이죠. 나는 전설이다가 무슨 해피엔딩이냐고 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마지막의 멋진 장면을 떠올리면 이건 분명 해피엔딩입니다. 전설이잖아요^^
나는 전설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줄어드는 남자와 잠깐 비교를 하면 본편은 분명 나는 전설이다가 재밌습니다. 그러나 책 뒤에 실린 단편들은 줄어드는 남자가 더 좋습니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좋습니다. 몇몇 단편은 테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나서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우선 2만 피트 상공의 악몽부터. 이 단편은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의 한 에피소드로 다뤄진 적이 있습니다. 티브에서 할 때 재밌게 봤습니다. 그렘린 같은 괴물이 비행기 날개에 앉아 엔진을 부수는 이야기인데 우스우면서도 긴박한 분위기가 좋습니다. 기대했던 대로 드라마처럼 글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인 단편으로 결투가 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장편 데뷔작 듀얼(Duel: 티브용 영화)의 원작입니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국도를 달리다가 탱크가 달린 트럭을 추월하는데, 불행하게도 그 트럭의 운전사가 괴팍한 사람이라 샐러리맨은 죽음의 위협을 느낍니다. 국도에서 추월을 하는 일은 아주 일상적인 일입니다. 하루에도 수천 번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이죠. 별 것도 아닌 일인데, 정색하고 달려드니 겁나는 상황이 연출되는군요. 일상에서 튀어나온 공포가 역시 무섭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영화의 긴박했던 분위기가 생각나서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습니다. 트럭과 차 한 대로 그런 서스펜스를 만들어낸 스필버그는 확실히 대단한 감독입니다.
버튼, 버튼도 훌륭했습니다. 호기심, 참기 힘든 감정이죠. 노마의 행동이 이해가 갑니다. 판도라가 상자를 연 것도 그런 감정 때문이겠죠.
예약손님도 인상적인 단편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줍니다.
줄어드는 남자의 단편들은 전반적으로 환상특급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몇몇 작품은 스티븐 킹의 냄새도 강하게 풍깁니다. 단편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