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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전쟁 ㅣ 샘터 외국소설선 1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뒷표지에 스포일러로 볼 수 있는 문구가 적혀있다는 평을 본 기억이 나서 표지를 읽지 않으려고 조심했습니다. 신경을 쓰니 더 읽고 싶어져서 참느라고 혼났습니다.^^
책을 읽어보니 스포일러로 볼 수 있겠더군요. 안 읽어서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래서 저도 경고-책 뒷표지는 가급적 읽지 말기를 권합니다. 그런데 심각한 스포일러는 아닙니다. 이 정도는 알아도 즐기는데 지장은 없어 보입니다만 민감한 분은 피하는 게 좋겠죠.
글을 가장 재밌게 읽는 방법은 뭘까요?
제 경우는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책을 읽었을 때 가장 큰 재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이 영화는 반전이 대단합니다, 라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은 말도 재미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식스 센스 생각이 나네요. 저는 이 영화가 반전이 대단하다는 평을 듣고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그 반전이 뭔지 영화를 보는 중에 알아차렸습니다. 반전이 있다고 해서 주의를 기울이는 바람에 알아챈 거지 사전정보가 없었다면 전혀 몰랐을 겁니다. 그리고 훨씬 재밌게 감상을 했겠죠.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스터리 장르가 대표적인데 반전이 있다는 말이 재미를 줄이듯 사전정보는 재미를 줄입니다. 물론 좋은 글은 스토리를 알고 봐도, 심지어 여러 번 읽어도 재밌습니다. 트릭이나 반전에 가장 크게 기대고 있는 장르인 미스터리조차 그렇죠. 범인을 알고 트릭을 알아도 다시 읽으면 재밌습니다. 살아 숨 쉬는 캐릭터, 위트 있는 대사, 진상에 다가가는 과정의 즐거움, 정밀한 배경 등등, 걸작은 즐길꺼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작품이 걸작인 것은 아니고 걸작도 모르고 접했을 때의 재미가 가장 큰 법이죠.
두서없이 적었는데, 어쨌든 모르고 읽는 게 가장 좋다는 말입니다. 서지정보를 읽지 않고, 서평도 읽지 않고 그냥 읽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런 정보가 없으면 재밌는 책을 고르기가 어렵게 된다는 문제 말입니다.
이 책이 과연 재밌느냐, 재미없느냐.
운에 맡겨야 되겠죠. 거의 폭탄 고르기 수준입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작가의 작품이나 특정 상의 수상작은 믿고 고를 수 있지만 처음 접하는 작가의 경우에는 서평을, 블로그의 평을, 서점이 제공하는 정보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혹시 과다한 정보를 접하게 될까봐 조심하면서 말이죠.
해서 요즘은 서평을 쓸 때 가급적 즐거리 나열을 피하고, 스포일러를 피하고, 반전이 있다는 식의 평도 피하는 편입니다. 그 결과 서평 쓰기가 어려워졌어요. 가장 형편없는 서평이 줄거리 나열하는 서평이란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 쪽이 제일 쓰기 편하죠.
그래서 우선 이 말부터 하겠습니다. 노인의 전쟁은 재밌습니다. 어느 정도 재밌냐구요? 2008년과 올해 읽은 쟝르 소설 중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노인과 전쟁을 재밌게 읽고 싶다면 이쯤에서 만족하고 다른 정보는 읽지 말고 구해 읽으시길 바랍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서평 씁니다.
노인의 전쟁을 읽다보면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원한 전쟁도 조금 생각나고 말이죠. 노인의 전쟁이 아류작 수준에 머문다는 말은 아닙니다. 노인의 전쟁은 두 작품이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유머네요. 책을 읽으면서 크게 웃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요새 웃을 일이 없어서 그랬는데, 덕분에 웃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설정도 인상적입니다. 75세 노인만이 우주방위개척군에 입대할 수 있습니다. 개척민은 사정이 달라서 젊은이도 나갈 수 있지만 인도, 파키스탄 같이 인구 문제에 시달리는 가난한 국가의 국민만 개척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같은 강대국 국민은 우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인공 존 페리처럼 75세 노인이 되어 입대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입대한 존 페리는 훈련을 받고 외계인과의 전투에 투입됩니다. 뻔할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작가는 매력적인 스토리 라인과 유머로 글을 재밌게 만들었습니다. 서두에 잡설을 풀었더니 그만 쓰고 싶어져서 서평은 여기서 줄입니다.
재밌는 이야기가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던 독서였습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