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미스터 피넛 1
애덤 로스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3월

아내 살해를 꿈꾸는 사람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심상찮은 시작입니다. 흥미진진하기도 하고요.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페핀, 결혼한 지 오래 되었고 슬하에 자식은 없습니다. 아내인 앨리스는 문제아를 가르치는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그녀는 130킬로그램의 뚱보로 무의미한 다이어트를 반복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남편과 자주 다툽니다. 이야기 초반에 꽤 짜증나는 캐릭터로 등장해서 남편이 그런 꿈을 꿀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나중에는 생각이 바뀝니다.). 남편이 심각하게 살인을 계획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교통사고나 벼락같은 재해로 아내가 죽는 걸 상상할 뿐입니다.

데이비드는 자유 시간에 소설을 쓰는데 그 내용을 아내에게 숨김으로써 평범한 내용은 아닐 거라는 인상을 독자에게 심어줍니다.

이쯤에서 사건이 발생할 거라는 예상이 가능하고 그 예상대로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건이 발생했으니 이제 형사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해스트롤과 셰퍼드 형사가 사건을 담당하는데 이 둘도 데이비드와 앨리스처럼 평범한 캐릭터는 아닙니다.

두 형사 공히 결혼생활이 정상은 아닙니다. 어쩌면 데이비드 부부보다 더 비정상적인 부부입니다. 해스트롤 형사 부인은 앨리스보다 더 괴팍한 여자로 비춰집니다. 그래서 해스트롤이 과격한 행동을 했을 때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그 장면에서는 말이죠.

여기 나오는 부부는 배우자의 생각을 잘 모릅니다. 소통 부족이 갈등으로 이어져서 결국 일이 터졌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랑은 호르몬 작용일 뿐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역자 해설에도 나오는데 호르몬에 의한 사랑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삼년이랍니다. 결혼은 보통 삼년보다 더 길게 이어지죠. 사랑이 식은 이후에는 무엇으로 살아갈까요. 미스터 피넛은 그 유효 기간이 지난 부부의 삶을, 평범한 부부는 재미없으니까 극단적인 경우를 통해서 들여다봅니다.

주의- 스포일러 나옵니다.


아내가 남편을 죽였을 때 열에 아홉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대목이 본문 중에 나옵니다. 이 작품에서는 아내가 죽는데 과연 그 이유가 합당한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 결론은 합당하지 않다로 나왔습니다. 결혼이 파탄난 데는 앨리스보다 데이비드의 책임이 더 커 보입니다. 특히 미스터 피넛을 감안하면 말입니다.

덧-앨리스가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걸로 나옵니다. 그래서 미스터 피넛은 그녀가 땅콩 알레르기가 있고 그것 때문에 죽는다는 걸 암시한다고 생각했는데(땅콩 껍질 속에 해골이 들어 있는 표지를 보고 그런 예상을 했습니다), 전혀 다른 걸 상징하고 있네요. 

매력적인 주인공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1 ㅣ 밀레니엄 (뿔)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2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밀레니엄이 출판사를 변경해서 새로 나왔습니다.(정확하게 말하면 나온 지 좀 됐군요.). 전에 나온 책 표지도 괴작의 향기가 풍겨서 나름 정이 가긴 했습니다만 표지는 이쪽이 세련되어 보이네요. 번역자는 그대롭니다.

해리 포터, 다빈치 코드처럼 수천만 부씩 팔리는 메가 베스트셀러를 읽어 보면 오락성이 아주 강한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도 오락성만 따진다면 거의 정점에 도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에 들면 놓기가 힘듭니다. 그 자리에서 끝을 보게 만듭니다.

전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함께 모험을 겪었던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의 짧은 연인 관계는 2편에서 끝이 났습니다. 리스베트는 말도 없이 잠적해 버렸고 미카엘은 그녀를 찾다가 포기해 버립니다. 둘은 헤어진 후 자신의 일상을 채워나갑니다. 거금이 생긴 리스베트는 여행을 떠나고 미카엘은 밀레니엄 특집호를 만드는 데 열중 합니다. 접점이 없어서 다시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둘의 삶은 특집 기사를 통해서 이어지고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복잡하게 엮입니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미카엘의 비중이 컸는데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는 리스베트의 비중이 크네요. 예전의 악연이 튀어나오면서 감춰졌던 그녀의 과거가 조명됩니다. 1권의 삼분이 일 정도는 책장이 느릿느릿 넘어가는데(살짝 지루한 감도 들고) 그 이후로 가면 책장이 마구 넘어갑니다. 조금씩 쌓인 긴장이 살인사건으로 폭발하고 그 이후 숨돌릴 틈 없이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작가의 솜씨가 일품입니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는 그다지 반응이 없었는데(미스터리 팬들 사이에서는 유명했습니다만.), 새로 나온 건 반응이 좋네요. 대형 출판사의 이름값인지, 마케팅의 승리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좋은 작품에 어울리는 반응이어서 어쨌든 기쁘네요.

작가기 밀레니엄 3부작을 완성해 놓고 사망하는 바람에 그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뭐 인생이 그렇죠.^^

작가가 언론인 출신이어서 그런지 작품의 주제 의식이 분명합니다. 보통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내세우면 재미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은 한번 읽어보세요.

명탐견 마사

명탐견 마사의 사건 일지
미야베 미유키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1년 1월

명탐견 마사의 사건일지는 제목 그대로 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입니다. 마사는 경찰견으로 일하다 은퇴한 후 탐정 사무소로 넘겨집니다. 탐정 사무소가 탐정견 역할을 맡기려고 구입한 건 아니고, 키우던 주인의 건강이 나빠져서 반려견으로 들어간 건데 결국 탐정 일을 하게 됩니다.

개가 화자고 사건 해결에 깊숙이 개입하기는 하지만 역시 개이기 때문에 역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건은 대개 탐정 사무소 소장의 큰딸인 가요코와 콤비를 이뤄 해결합니다.

이 책은 단편집으로 다섯 개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마음을 녹일 것처럼-첫 번째 단편이라서 마사와 탐정 사무소 인물들이 간략하게 소개 되고 바로 사건이 등장합니다. 초등학교 여학생이 차 트렁크에 들어가는 걸로 시작되는 사건은 참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사건의 진상이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네요. 인상적인 단편은 아닙니다.

손바닥 숲 아래-이 단편도 흥미로운 장면으로 사건이 시작됩니다. 가요코는 마사와 함께 조깅을 하다는 시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가요코가 신고하러 간 사이에(핸드폰으로 신고하지 않는 걸 보면 핸드폰이 나오기 전, 혹은 대중화되지기 전에 소설이 발표된 것 같습니다). 그녀가 없는 사이에 마사는 어떤 중요한 사실을 목격하게 되는데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한 심정이 됩니다.

백기사는 노래한다-앞의 두 단편은 어쩌다 보니까 사건에 휘말려서 일을 하게 되는데 이번 단편은 의뢰인의 의뢰로 일을 시작합니다. 도모에는 살인으로 수배된 동생이 어쩌다 빚을 지게 되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고 가요코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경고한 후 의뢰를 받아들입니다. 보통 이런 경우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거라고 예상하게 되는데 그 예상대로 사건이 진행됩니다.

마사 빈집을 지키다-가족이 모두 여행을 떠나서 마사 혼자서 사건을 파헤칩니다. 마사는 진상을 추적하고 알아내지만 역시 개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직접 범인을 체포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해결은 다른 식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때문인지 관조적인 느낌이 들고 인간이 품은 악의가 효과적으로 전달됩니다. 인간보다 짐승이 낫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사의 변명-작가가 등장인물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궁금하네요. 설마 진짜 있었던 일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잠깐 서늘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총평하자면 어깨에 힘을 빼고 붓 가는대로 쓴 느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의 대표작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는 편입니다. 대가의 평범한 작품이랄까.

노인의 과거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ㅣ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과거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장면이 등장해서 독자에게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라는 궁금증을 품게 만든 후 이야기는 현대(1989년)로 건너뛰어 부랑자 노인을 보여줍니다.

부랑자로 보이는 추레한 노인이 전철에 탑니다. 그러고는 승객 앞에서 하모니카를 붑니다. 승객들은 대부분 싫은 기색을 비치고 노인은 비굴하게 굽실거려 가면서 연주를 합니다. 아사쿠사에서 내린 노인은 특별한 목적지가 없는 듯 도로를 배회합니다. 그러다 가게에 들어가서 땅콩과 말린 찰떡을 구입합니다. 가격은 400엔. 여기에 소비세 12엔이 붙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즈음에 소비세가 만들어진 모양입니다.(소비세는 한국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합니다. 한국은 세율이 10프로인데 일본은 3프로로 시작했군요. 이후에 소비세 세율을 5프로로 올렸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한국보다 낮네요. 이때 소비세를 올려서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보도를 본 기억이 나네요. 요 몇 년 사이에 소비세를 10프로로 올려야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죠.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해결하려면 그 수밖에 없다고 그랬는데 지진에 쓰나미 거기다 원전 사태까지 터져서 일본도 참 골치 아프게 됐어요.)

어쨌든 소비세가 처음 생겨서 일본 소비자들은 생소합니다. 노인도 그냥 400엔만 내고 가게를 나옵니다. 가게 주인은 노인을 따라 나와서 소비세 12엔을 더 내라고 요구합니다. 노인은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하고 가게 주인은 언성을 높입니다. 그러다 노인이 주인을 칼로 찔러 죽입니다. 노인은 그 자리에서 검거되고 세간에는 소비세 살인으로 알려집니다.

경찰은 치매 노인이 저지른 우발적인 범행으로 사건을 처리합니다. 그런데 요시키 형사는 뭔가 석연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사건을 파보는데 노인이 질문에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벽에 부딪칩니다. 신원을 알 수 없으니 과거를 조사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탐문에 나서는데 성과가 없습니다.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는 첫 장면에서 작품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기발한 트릭이 등장하는 신본격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후의 전개는 신본격의 틀을 벗어나서 사회파의 모습을 담아냅니다. 그래서 신본격과 사회파가 훌륭하게 어우러졌다는 평을 듣는 모양입니다.

1989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3위에 오른 작품이고 그에 어울리는 재미를 줍니다.
점성술 살인사건의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와 함께 시마다 소지의 대표적인 시리즈로  꼽히는 형사 요시키 다케시 시리즈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점성술 살인사건을 고르겠습니다.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는 몰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사사키 조의 경찰 이야기

제복 수사 ㅣ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1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2월

카와쿠보는 강력계에서 오래 근무한 베테랑 형사인데 훗카이도 경찰본부의 변화된 인사방침 때문에 시골 주재소에 단신부임하게 됩니다.(모종의 사건 때문에 그런 인사방침이 생겼다고 언급되는데 어떤 사건인지는 책 속에 분명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가 부임한 마을은 범죄율이 낮기로 유명합니다.

카와쿠보는 부임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런 평화로운 모습 속에 감춰진 그늘을 청소년 사건을 통해서 접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폐허를 바라다(사사키 조의 나오키상 수상작) 식의 허무적인 이야기로 귀결될 줄 알았는데 다행히 다른 식으로 전개되네요. 나름 박력 있고(?), 시원한 구석도 있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제복수사는 연작 단편집으로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일탈-카와쿠보가 마을의 실체와 대면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는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합니다만 마을은 폐쇄적이고 상부는 수사에 소극적이라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지는 못합니다. 전개가 조금 답답했는데 마지막이 시원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유한-잡종개가 산탄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개 주인 오니시는 범인을 잡아달라고 요구하고 카와쿠보도 적극 수사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상부의 시각은 다릅니다. 사냥꾼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심각한 사건이 터지고 카와쿠보는 수사에 착수합니다. 한 발 물러서서 조용히 정보를 수집하고 다니는 카와쿠보의 행보가 인상적입니다.

깨진 유리-앞의 두 단편처럼 심각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데 마을의 답답한 분위기는 더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카와쿠보의 마지막 행동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확실히 그는 얌전한 경찰이 아닙니다. 은근히 성질이 있어요.

이 마을의 유리창은 오래 전에 깨졌다, 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감지기-연쇄 방화사건을 다룬 단편입니다.

가장제-유괴를 다룬 단편입니다. 소재의 성격상 속도감이 빠르고 스릴도 느껴집니다. 카와쿠보가 가장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주재소 제복 경찰이라서 수사에 직접 참가하기보다는 뒤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감한 행동이 마음에 드네요. 
 

사사키 조의 작품은 대부분 읽었는데 제복수사가 가장 취향에 맞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일본경찰소설하면 요코야마 히데오가 떠올랐는데 이제는 사사키 조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