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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6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다 읽은 후 쾌락을 주면 대중소설, 불편함을 주면 문학(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어디서 읽은 구절인데, 정확한 말은 아니다. 다른 단어가 쓰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이 문구를 통해서 보면 아웃은 예술이다. 아니, 재밌으니까 예술이 아닌건가. 아웃은 불편하지만 재밌다. 대충 타협해서 재밌는 문학이라고 하자.
기리노 나쓰오의 몇몇 작품은 장마철의 꿉꿉한 느낌을 준다. 그녀가 여자의 심리 상태를 묘사한 걸 보면 섬뜩하다.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혀 정말 여자들은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웃은 그 정도까지 나가지는 않지만 불편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일본 소설이 붐이다. 예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가 유명하고 다른 작가는 어쩌다 대표작 위주로 한 두 권씩 나왔던 것 같은데, 지금은 듣도 보도 못한 작가의 작품까지 쏟아져 나온다. 인세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그 많은 일본 작가들 중에서 가장 재밌는 글을 쓰는 이가 기리노 나쓰오다. 그녀와 비교할 수 있는 작가는 미야베 미유키 정도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웃은 기리노 나쓰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아웃은 대표작다운 재미를 안겨준다. 작가의 여타 작품처럼 꿉꿉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상황부터가 구질구질하다. 셋을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사코의 가정은 해체되기 일보직전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퇴학을 당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아들은 집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 직장에 적응을 못하는 남편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산다. 각방에서 생활하며 등을 돌리고 살아가는 그들은 남보다 더 못한 관계처럼 보인다. 요시에는 쓰러진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6년째 들고 있다. 남편은 예전에 죽었고, 두 딸은 모두 이기적이다.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에 열등감을 갖고 있는 구니코는 물건을 사대다가 카드빚에 시달린다. 다른 이들은 남편, 가족, 사회의차별 때문에 인생이 오그라든 경우라면 구니코는 자신의 허랑방탕한 삶 때문에 궁지에 몰린 여자다. 넷 중 가장 정이 안 가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삶을 혼란으로 몰아넣는,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하는 야요이가 있다. 야요이의 남편은 술집 여자에게 미친데다 도박에 빠져서 함께 모은 적금 500만엔까지 날려버린다. 그런 주제에 폭력까지 휘두른다. 야요이는 남자 잘못 만나서 인생 꼬이는 여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네 여자의 삶은 엉망진창이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휘발유가 가득 뿌려진 듯한 그녀들의 볼온한 환경에 어느날 불씨가 당겨진다. 네 여자 중 하나가 사고를 치게 되고 세 여자는 그 뒷처리를 돕게 되면서 생활은 궤도를 이탈한다. 휘발유에 던져진 불씨는 활활 타올라 넷의 현실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경찰이 개입하고 경찰보다 더 무서운 사내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 삶을 위협한다.
여자들은 잡힐까? 잡히지 않을까?
이왕 일이 벌어졌으니 넷이 똘똘 뭉쳐서 위기를 헤쳐나가길, 화끈하게 살아나기길 바랐는데 일은 기대했던 것처럼 굴러가지 않는다. 독자를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여사의 글솜씨는 여전하다.
글의 전개상 베드엔딩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정이 가는 캐릭터가 있어서 불행쪽으로 빠지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어느 정도는 파국을 각오하고 읽었는데 예상 외로 결말이 만족스런 쪽으로 달려갔다.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였다. 물론 기리노 나쓰오 글답게 일그러진 면이 있다. 그 여자의 마지막 감정상태는 솔직히 이해가 안 갔다. 차라리 파국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