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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인 더 다크 - 어느 날 갑자기 빛을 못 보게 된 여자의 회고록
애나 린지 지음, 허진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7월
평점 :
"어느 날 갑자기 빛을 보지 못하게 된 여인의..." 빛을 보지 못하는 것과 어둠, 곧 시력에 문제가 생긴 거 아닐가 싶었는데요. 우리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저자 애나 린지는 자신에게 생긴 광선과민증이란 희귀병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요. 광선과민증이라 찾아보니, 니콜 키드먼의 "디 아더스"란 영화가 뜨네요. 아!! 그 아이들, 햇빛을 절대 못보게 했던.. 이란 기억이 떠오르긴 하네요. 하지만 그 같은 일이 영화가 아니고 현실이 되니 너무 다르다는 걸 보게 됩니다.
그녀가 처음부터 이 병을 가지고 태어난 건 아닙니다. 직장에 들어가 평범한 매일을 보내던 어느 날부턴가 일이 시작된 겁니다. 처음에는 모니터를 많이 본 후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을 갖게 됐다고 하는데요. 그녀도 대부분의 우리가 몸에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면 쉽게 그러하듯 스트레스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휴식기간을 갖기로 합니다. 잠깐 쉬고나면 다시 원래 몸상태로 돌아올 거니까요. 하지만 점점 빛이 느껴지면 타는듯한 느낌이 강해지기만 하다는 걸 알게된 후 그녀는 어둠에 들어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햇빛... 때로는 너무 강렬해서 싫지만, 때로는 너무 희미해서 강렬함을 보고 싶게 만드는 건데요. 한가닥의 빛도 허용되서는 안 된다는 게 굉장히 힘들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알게 모르게 빛에 의존하는 삶에 길들여져 왔으니까요. 생각해보니 의도적으로라도 빛을 피해 인간의 활동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이 아니구나 하게 됩니다. 우리집 불을 꺼도 옆 집의 불, 가로등의 불, 심심하면 찾게되는 티비나 컴의 모니터 불빛,따끈한 차를 위한 가스불 역시 빛이니까요. 그게 안되니 내내 어둠속에서만 지내야 하는 겁니다. 가까이에 늘상 있을거라 여긴 이들이 하나 둘 멀어진다는 걸 느껴가면서 말이죠.
여름이면 나는 방에서.. 폭염이 계속되면서 날씨가 변할 기미도 없이 열기가 하루하루 더해지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곤 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삶은 단순해지고 감정은 사치가 되어 버린다. 육체적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므로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존엄성,위생,자존감,활동,손님,이따금 울음을 터뜨리는 사치, 그 무엇이라도.-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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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 한 가지 확실한 사실에 매달렸다. 내 발밑의 지구가 돌고 있고,열기의 계절은 반드시 지나갈 것이며, 지옥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몇 달 동안은 이 지옥을 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124
이렇게 현명하고 참을성 많은 그녀지만 사랑하는 남편 피트나 투닥거리면서도 딸을 챙기려하는 어머니나 남동생, 그리고 어렵게 찾은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그 넘어갈 수 없을 거 같던 시간들을 지금처럼 넘어갈 수 있었을까 하게 되는데요.
"기쁨은 모든 일상의 뒤에 가만히 숨어서 우리가 찾아 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사랑은 이유가 없다."-255
조금씩 나아지는 걸로 보여 다행이다 싶고 드라마틱한 게 없으니 현실맞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게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인간의 희망과 기다림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합니다. '절대적으로 할 수 없다'고 우리가 선을 그어놓는 일들이 과연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들도요. '합리적인 가능성이 아무리 위협해도 감당하기 힘든 삶이 이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그녀는 말하는데요. 조도를 맞춰가며 밖으로 나가는 시도를 즐겁게 해가는 그녀를 보니 정말 그렇다 싶기에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네요. 내가 아는 그녀가 말하더라고,"좀 기다려봐. 지금이 쭉 갈거같지만 그렇지않아. 결국은 힘들더라도 삶이 이긴다고 하더라고..."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