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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슈호프는 바로 이 말을 기다렸던 것이다. 이제 그는 마치 나는 새처럼 가볍게 뛰면서 현관 문을 빠져나가 쏜살같이 구내로
달려간다.-164
무슨 말? 애인이라도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은 거 아닐까 싶지만, 그가 기다리던 말은 체자리가 웃으며 그에게 자신의 저녁을 양보한다는
겁니다. 그의 하루를 지켜보다보니 멀건 양배춧국 한 그릇과 빵 한조각을 위해 나는 듯 뛰어나가는 그가 보이는 듯 합니다. 아마 그의
입가에는 갑작스레 마주친 간수를 보면서도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지어져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지만 정당한 노동의 댓가로 챙긴 이 저녁마저도
이름만 대고 순순히 먹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치열하게 자리싸움, 눈치싸움을 해야하는거지요. 쟁반을 나르는 순간에도 자기 거라 맘속으로만
정해놓은 그나마 건더기가 헤엄치고 있는 국에 숟가락을 꽂는 그의 재빠름, 한 그릇의 국을 먹고 나서 다음 국으로 눈을 돌리며 안심하는
절박함, 그러면서도 낮에 있었던 것에 이어 저녁 역시 두 번째 국이라는 사실에 두근대는 그의 가슴떨림이 읽는 이에게도 옮아와 국 내용물이
신선하거나 꽉 차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신중하게 저어대는 그의 '한 그릇 더'가 전해주는 기쁨이 울리게 되는데요.
10년 형을 받고 지금 8년 수용소 생활을 하는 슈호프를 통해 제각각 사연을 가지고 저마다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설렁 설렁 일하는 밀고자들, 반장이라는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사람들과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늦된 사람들, 수용소라는 이름만 들어도 느껴지는
차가움속에서도 신을 믿어야 한다며 늘 착한 사람들까지 말입니다. 이런 힘든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약간의 권력이라도 손에 쥔 이들입니다.
주방 보조이면서 대들지 않는 등짝만 구별해 갈기는 이도 있고, 소포받을 때 자기 몫을 챙겨주지 않으면 심술을 어떻게든 부리는 이들,
그들뿐만이 아니죠. 보관계도 의사도 곳곳에 모두가 뭔가를 바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보면 인간의 얄팍함과 어떤 상황에도 존재하는 욕망의
어이없는 크기에 절망하게 되지만 수용소라는 곳도 사람이 사는 거구나 싶게 숨쉴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는 슈호프같은 이들을 보면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선하기에 이제껏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게 됩니다.
정당한 대가에 대한 수고를 딱 적당한 선에서 요구하는 그의 모습은 처지에 비해 너무 합리적으로 보여 오히려 더 요구해야 하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요. 어느 일 하나 대충하지 않는 그의 모습과 체자리의 짐을 '그냥'지켜주는 모습을 보니, 한 그릇의 국에 흐뭇해하는
게 더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주운 거 하나 버리지 않고 계획을 세우는 그를 보면서는 앞으로의 계획이 없다면서도 작은 것에서
갖게되는 삶의 희망이라는 게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뭐가 됐든 말한 시간안에 지키려는 그의 모습은 스스로의 약속을 배신하지 않는 이를 향한
존경을 갖게도 됩니다.
토끼들의 즐거움이다. 그래, 우리를 보고 놀라는 개구리들도 있다고 좋아하는 그런 즐거움
말이다.-151
저자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역시 수용소에서 8년 세월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어쩌면 이 이야기는 진짜 그가 지켜본 수용소에 같힌 이들의
모습이기도 할테지만 슬프게도 수용소에 너무 잘 적응한 슈호프는 일정 테두리 안에서 이리 저리 치이면서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슈호프가 들었다면 진짜 배부른 투정이라고 했을 겁니다만...) 하지만 그래서 그의 재빠름에 더 감탄하고, 행운이라는 말에 같이
좋아하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라는 그의 기도가 맞는 상황인건가 싶으면서도 같이 기도하게 되는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래서 1962년작이라는
오래된 시간, 다른 공간과 다른 문화라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가 같은 마음으로 쓸쓸해지는 건지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