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과 캐릭터, 음악 다 좋았지만

마지막 반전에서 힘이 빠진다.

공포영화라고 여성을 무조건 희생시키진 않겠다는 생각이 아닐까 싶긴 하지만

좀 억지스러운 반전이지 않았나 싶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연출이 기가 막힌다.

거기다 토마신 맥켄지의 연기도 훌륭하다.

안야 테일러 조이가 연기한 샌디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남성 캐릭터가 좀 약한 감은 있지만 

애초부터 남성 캐릭터가 중요한 영화는 아닌 듯 하니 건 그렇다치고.


허나 앞서 말했다시피 반전이 좀 억지스럽다.

반전에서 별점 다 깎아먹는 기분이랄까.


다른 방향으로 이야길 풀어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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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 마케팅이 잘못된 거 아닌가' 하는 것.


17세기의 동성애 스캔들을 바탕으로 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이니만큼

사실 베드씬이 너무 많을까봐 걱정하며 갔더랬다.

퀴어 그 중에서도 레즈비언을 다루는 영화들은 이상하게 투머치 베드씬인 지라

그 부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는 베드씬이 적었다.


아무래도 영화 내용상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동성애적인 부분이고

그래서 그것에 초점을 두어 마케팅을 한 것 같긴 한데

(원작도 아예 부제가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 이니)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동성애보다는 종교에 좀 더 중심이 치우쳐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성녀에서 창녀로, 신성한 곳에서의 성 스캔들 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보다는

영화가 그리는 종교에 좀 더 치중한 홍보였다면 좋았을텐데.


기독교를 믿지 않고 역사학적 지식도 모자란지라

영화가 묘사하는 당시 시대상에서 종교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별 볼 일 없던 시골마을이 성인 한 명 나타나자 순례자들로 번영했다 는 극 중 묘사를 보면

아마 현대로 치자면 슈퍼스타 한 명이 나온 거랑 비례하지 않았을까.


다만 아직까지도 의문인 것은

베네데타는 정말 스스로가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래서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이 주님이 시키신 일이라 여겼는지 하는 것.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당당하고 어떤 후회도 수치스러움도 없어 보였던 걸까

그런데 베네데타의 환영이나 믿음은 요즘으로 치면 정신장애의 증상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는 거의 자신을 주님과 동일시 하는 듯 싶던데... 


한 번 봐선 이해가 좀 힘들 영화지 싶다.

영화를 보고 나니 원작이 궁금해져서 찾아봤지만 그새 품절이더라.

....영화도 개봉했으니 다시 풀리려나....


아무튼 종교에 대한 얘기 좋아하시면 한 번쯤 봐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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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리뷰는 여기에.

https://blog.naver.com/cheshireee/90101755391




오래된 영화라 굳이 표기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스포일러 포함. 감상 예정이신 분들은 피하시길.















첫번째 리뷰에 의하면(?) 아마 이번이 3~4번째 감상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전부 다 집에서 본 것. 그래서 좀 아쉽긴 하다. 

극장에서 봤더라면 TV나 혹은 컴퓨터, 휴대폰 에서 느껴지는 것의 몇십 배의 감상이 나올 텐데

이제 와 내가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손바닥만한 휴대폰 화면 뿐이니.

물론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난 극장 경험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긴 했지만

아무튼 이제 와 돌이켜보면 아쉬울 따름이다.

이 작품을 고작 휴대폰 화면으로 들여다보고 있다니.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참 말이 많았던 게

아내 행세를 하는 딸이라는 요소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K-장녀 프레임이다 싶긴 하지만

그 때 당시는 파더 컴플렉스니 전향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다른 용어가 있었던 듯 한데 잊어버렸다)니

뭐니 하면서 리뷰와 해설 모두 오직 '수미' 가 아내 행세를 하는 것

그리고 그런 수미와 아버지와의 관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거의 2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보니 겹겹의 방어기제를 표현한 작품이지 않나 싶다.

동생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 하고 자신이 지켜주지 못 했음 또한 인정하지 못 하며

자신이 외면하고 걸어나가 동생이 죽은 게 아니라 

알려주지 않아서 동생이 죽었다며 정당화시키기 위해 가상의 존재(새엄마)를 만들어 

끊임없이 동생의 죽음을 복기한다. 

그리고 그 복기의 끝에 있는 것은 마침내 동생을 구했다 가 아닌 

결국 동생을 구하지 못 했다가 된다. 실제로 동생이 죽어버렸으니까.

그것은 어떻게 대체할 수 없는 거니까.


어쩌면 수미는 계속 그 시간 안에서 혼자만의 모노드라마를 찍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영원히 배드 엔딩일 수 밖에 없는 모노드라마를.


그렇게 생각하니 영화는 더더욱 슬퍼졌고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음악의 제목이 '돌이킬 수 없는 걸음' 이란 게 가슴에 와 박혔다.


새삼 참 잘 만든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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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세버그지만 사실 진 세버그의 안티가 만든 게 아닌가 싶은 영화.


1. 처음 들어가는 장면부터 좀 그랬던 게 

   진 세버그가 잔다르크에서 화형당하는 씬을 촬영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는데 

   '정부에 의해 삶이 망가진 진 세버그' 라는 사실만 알고 있는 나로서도

   저건 너무 노골적인 비유가 아닌가 했더랬다.


2. 영화 전반에 걸쳐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왜 '급진주의자와의 불륜' 이 들어가야 하는가 하는 점.

   아무래도 진 세버그가 영화화될 정도로까지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점은

   그녀의 정치적 신념과 흑인인권운동에 지지를 보낸 그녀의 행보 탓일 텐데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흑인운동가와의 불륜은 갑자기 왜 등장하는지?

   그것도 불과 몇 시간 전에 만난 사람과.

   설령 그 불륜이 사실이었다 치더라도 각본 단계에서 뺐어야 하는 부분 아닐까.

   영화에서 진 세버그가 어떤 배우고 그녀가 어떤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나 가 보여지기도 전에

   불륜 부터 등장해버리고 스캔들의 중점도 계속 그 쪽으로 맞춰가니

   인권운동가 였던 진 세버그가 아닌 불륜을 저지른 진 세버그만 보다 나온 느낌.

   그러다보니 진 세버그가 정부의 표적이 된 이유도 

   흑인 인권 운동을 지지해서가 아닌 흑인운동가와 불륜관계여서 라는 것처럼 읽힌다.


3. 여기에 하나 더 '도대체 왜?' 싶었던 부분은

   세버그를 감시 및 도청하면서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는 요원의 등장.

   아무래도 세버그의 여자로서의 매력 혹은 배우로서의 매력 

   아니면 그냥 매력 등등을 얘기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이로 인해 더더욱 영화가 갈 길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인권 운동가로서의 진 세버그는 더더욱 희미해지고 말았다.


4.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임신한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

   멕시코에서 만난 다정한 사람의 아이라고. 

   ....이걸 농담이라고 넣었는지 아니면 진지하게 생각하고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로 인해 가벼운 여자까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5. 그나마 크리스틴이 볼 만해서 견딘 거지 아니었음 정말 안 좋은 영화가 되었을 뻔.


6. 차라리 흑인운동가와의 스캔들은 빼고

  그녀의 일생은 알려진 대로 가되 

  그녀를 지켜보며 연민을 느끼는 정부요원이 추가되었으면 더 나았을 듯. 


7. 근데 불륜이 사실이긴 한가?

   찾아보니 그것도 루머에 불과한 것 같던데.

   그걸 갖다가 마치 진짜인양 영화화 까지 하는 건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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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2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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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는 아마 이게 세 번째 읽는 것 같은데

블로그에 리뷰가 없는 걸로 봐서는 이번이 두 번째 읽는 걸지도 모르겠다.

스웨덴판 영화가 재개봉했을 무렵 극장에 가서 보고 이후 책을 사서 한 번 읽어봤지만

영화와 너무 다른.

마약이나 매춘 등과 관련된 직설적인 단어들 사용에 영 마음이 가지 않았더랬지.


그러다가 최근 들어 장르 소설들을 좀 읽다 보니 

다시 보고픈 마음이 들어 중고로 재구매하였다.

혹시 샀다가 또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싶어 새 책으로는 못 사겠더라고.


다시 읽어보니 내가 그 때 이걸 왜 싫어했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물론 그 직설적인 단어 사용에는 여전히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소설로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처음 읽었을 당시 싫어했던 이유도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간다.

직설적인 단어들만 사용된 게 아니라 장면을 연상시키는 표현들도 직설적이라

다소 정적인 분위기가 감돌던 영화의 느낌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싫었지 않았을까.


다른 뱀파이어 소설은 읽어본 게 없어서 

뭐 비교할만한 거리는 없긴 하지만

뱀파이어를 마냥 초인적인 존재로 묘사하지 않은 건 좀 색다르지 않나 싶다.



p.s. 이젠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스웨덴 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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