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나갈사람이 행선지를 대지않고 미적거리더니 나가기 직전에서야 아이들에게 흘려 말하는 것처럼 어디를 가노라고 말한다.
가는곳을 들어보니 멀리도 간다. 오늘중으로 들어올수 있을까?
그는 과거의 동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아니, 나에게만 과거고 그에게는 아직도 현재다.
어제 그제 이틀을 내리 소주를 마시며 , 관계의 번다함이 논문에 미치는영향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던 그가 생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오늘 내리는 비는 유난히 번개가 잦고 천둥소리가 크다. 갑자기 아파트가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에 베란다로 나가 내다보니 더러 놀란 사람이 있는지 빗속에 우산을 들고 서둘러 내다보는 이들이 간혹 눈에 띈다.
이 빗속에 그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리라. 형체도 잡히지않는 문제들을 의논하며...
가끔씩 그가 학위문제니 자리문제니를 놓고 고민하는것은 다만 생활상의 문제를 대부분 내게 떠밀어놓고 있는것에 대한 민망함의 표현일까?
그는오지 않는다. 오늘 오리라 말하고 갔지만 십중팔구 그는 오늘중으로 귀가하지 않을것이다.
그가 고민하는 운동의 대의를 나는 머리속으로 이해하나 존중하지 않는다. 그운동의 언저리에서 만났기에 차마 아귀다툼하듯이 그를 끌어내리지 않을 뿐, 가끔씩 고단한 현실은 수도 없이 손톱으로 그의 등에, 내 가슴에 생채기를 내라고 말한다.
비가 내린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그는 아마도 내귀에도 익은 이름을 가진 몇몇과 기약없는 논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