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택견전수관에 갈때까지만해도 상쾌한 얼굴이던 건우가 쭈글쭈글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녀석은 수련복도 벗지 않고 마음이 멍한표정으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건우: 엄마 나 전수관에서 많이 혼났어요?

나: 왜? 건우가 여간해서 혼날일을 할 애가 아닌데...전수관 동생이나 형하고 다퉜니?

건우: 아니요.

나: 억울하게 혼난것 같은 생각이 드니?

건우: 쪼금요.

연우를 방으로 들여보내고 엄마한테 얘기를 해보라고 하자 울먹거리기만하고 말을 안한다. 혼날일이든 그렇지 않은일이든 물어보면 사실대로 말하던 아이였는데 그냥 꽉다문 조개모양 입을 다물고 있는것이 자존심이 좀 상한 표정이다. 그러더니 땀사이로 눈물이 찔금거리며 흐르는듯하자 벌떡 일어나 목욕탕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러기를 두어차례하더니 수학문제집을들고 문제를 푼다.

문제집을 보고있는 녀석의 목뒤에 축축히 남아있는 땀냄새에 수긍반 오기반의 기운이 느껴져 더이상 캐어 물을수가 없다.

나: 얘기를 안해주니 엄마가 좀 서운하네.

건우: 그래도 더이상은 말하기 싫어요.

나: 알았다. 세상에서 제일 씩씩한 우리아들...

전수관의 관장이 턱없이 아이를 나무랄사람도 아니고 건우또한 혼날일을 하고 다닐 아이도 아닌데 무언가 단단히 속이 상한 모양이다. 녀석은 문제집을 풀고 동화책을 읽겠다고 들어가더니 소리도 없다. 한참이나 지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샤워도 제대로 하지않고 잠이들어 땀내새가 흥건한채로 잠이 들어 있다.

속내를 다보여주지 않는 아이가 조금 걱정스럽기도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건우가 크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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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6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06-06-1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이 깊은 아이군요..
오늘밤엔 또 잘 생각해 보고 이야기 하겠지요...
속으로 저도 다듬고 있는 중일것 같아요..그런 모습 보고 있는 엄마는 얼마나 속타는지 모르는건 아니니까요..

연우가 억울하지 않도록 오늘 다 풀어지겠지요...이럴땐 다음날 다시 그곳 다녀와서 오해 풀고 행복해 하더라구요..기다려 보지요..

Mephistopheles 2006-06-1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내놈들은 아뭏튼....ㅋㅋㅋ

건우와 연우 2006-06-1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메피님, 전 건우가 상냥한 아이라 생각했었는데 사내아이 특유의 무뚝뚝함을 기본으로 지니고 있나봐요.ㅠㅠ

건우와 연우 2006-06-16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 하루이틀 잘참고 기다려주면 말해줄까요? 이녀석이 오래 버티지 말고 말해주면 좋겠구만요...^^

로드무비 2006-06-17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저렇게 고집이 좀 있는 아이가 좋아요.^^

건우와 연우 2006-06-17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그렇긴한데요, 이녀석이 아직도 말을 안하네요 글쎄...^^

한샘 2006-06-20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아버지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아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대요.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방에 조용히 들어가서 잠든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우리 아들이 크느라고 고생하는구나"
아버지는 나가시고 잠자고 있는 줄 알았던 아들의 눈에선 눈물이 주루루...
글내용이 정확하진 않지만 어른이 된 그 아들이 아버지를 회상하며 썼던 이야기인데 건우이야기를 듣다보니 생각나서 적어봐요^^

건우와 연우 2006-06-2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좋은 말씀이예요.
묵묵히 기다려주는 늙은 아버지에게서 어느날 문득 느끼는 그 사랑...
저도 그렇게 기다려주는 엄마였으면 좋겠는데 자꾸 안달하게돼요. ^^

치유 2006-06-2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저 한샘님 댓글 퍼갑니다..괜찮지요??

건우와 연우 2006-06-2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당근이지요 ^^
 

오후의 졸음에 겨워 인터넷을 뒤지다가,  베를린장벽에 미선이와 효순이의 영정사진이 그려져 있는 기사를 보았다.

기사속에서 두 아이는 아주 오래된 옛날 사진처럼  흐릿하다.

흐릿해서 더 마음이 짠한 얼굴로 요며칠 월드컵에 들떠있던 마음을 슬며시 부끄럽게 한다.

그아이들이 죽은게 이때쯤이라니, 아마도 그아이의 부모들은 월드컵의 열기가 상처에 들이붓는 소금같았으리라.

함께 아파하며 어깨를 두드리지는 못할망정 어린자식을 키우는 어미가 되어, 이리도 쉽게 그참담한 죽음을 낯설어하게 될줄이야...

월드컵이 열리는 축제의 함성뒤로 땅에 묻힌아이는 땅속에서,  살아남은 어른은 땅을 딛고, 이땅 어딘가에서 더 생생히 살아오르는 눈물을 씹고 있었겠구나.

오늘은 월드컵 호주와 일본의 경기가 있는날.

히딩크가 있어 마치 우리나라대표팀이 뛰는것같은 날이지만, 히딩크보다 더 익숙한 얼굴을 한 효순이와 미선이의 영정사진이 세상엔 월드컵만 있는게 아니라고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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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6-12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쩔 수 없어 잊고 싶나 봅니다. 6월의 그 모든 일들을요.

치유 2006-06-1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기사를 보며 맘 아팠었어요..
쉽게 잊혀지는 기억..하지만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있는이도 있다.

건우와 연우 2006-06-1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만두님,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도망가고 싶었는지도요...
배꽃님. 문득 이렇게 잊고사는 내가 야속하다 싶었어요..

2006-06-13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6-13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감사하죠..연우가 아주 좋아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넙죽 받아도 될까요?


2006-06-13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6-14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6-15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비도 그치고 좋은 아침이예요.
"땅은 엄마야" 안그래도 님이 써 놓으신 리뷰보고 아이들이랑 함께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어요. 저야 너무 감사하죠.. 근데 너무 뻔뻔한가요?^^

2006-06-15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6-15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텔레비전 경기를 보면 막상 조금 흥분되고 응원을 하게 되는데
사람들이나 방송의 지나친 열기는 정말 공포스러워요.

건우와 연우 2006-06-16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도 그러신가요? 저도 재미나게 응원을 하다가도 문득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2006-06-16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1 2006-06-27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아이들까지 죽었는데도 아직까지도 왜 sofa개정을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정도면 대단한 일인데요. 쳇....

건우와 연우 2006-06-27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사람이 죽는다는게 이렇게까지 무참하게 잊혀질수는 없는 일인데요ㅠㅠ
 

아침에 나갈사람이 행선지를 대지않고 미적거리더니 나가기 직전에서야 아이들에게 흘려 말하는 것처럼 어디를 가노라고 말한다.

가는곳을 들어보니 멀리도 간다. 오늘중으로 들어올수 있을까?

그는 과거의 동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아니, 나에게만 과거고 그에게는 아직도 현재다.

어제 그제 이틀을 내리 소주를 마시며 , 관계의 번다함이 논문에 미치는영향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던 그가 생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오늘 내리는 비는 유난히 번개가 잦고 천둥소리가 크다.  갑자기 아파트가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에 베란다로 나가 내다보니  더러 놀란 사람이 있는지 빗속에 우산을 들고 서둘러 내다보는 이들이 간혹 눈에 띈다.

이 빗속에 그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리라. 형체도 잡히지않는 문제들을 의논하며...

가끔씩 그가 학위문제니 자리문제니를 놓고 고민하는것은 다만 생활상의 문제를 대부분 내게 떠밀어놓고 있는것에 대한 민망함의 표현일까?

그는오지 않는다. 오늘 오리라 말하고 갔지만 십중팔구 그는 오늘중으로 귀가하지 않을것이다.

그가 고민하는 운동의 대의를 나는 머리속으로 이해하나 존중하지 않는다. 그운동의 언저리에서 만났기에 차마 아귀다툼하듯이 그를 끌어내리지 않을 뿐, 가끔씩 고단한 현실은 수도 없이 손톱으로 그의 등에, 내 가슴에 생채기를 내라고 말한다.

비가 내린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그는 아마도 내귀에도 익은 이름을 가진 몇몇과 기약없는 논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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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0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6-10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매번 고맙습니다. 흉보면 안돼는데 제가 옹졸해서요...
그래도 위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치유 2006-06-12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좋은아침이지요??
옹졸해서 흉을 보시는게 아니라,애틋한 기다림과 사랑이 보여요..
오늘하루 웃으실 일만 생기시길,,바래요..^^.

로드무비 2006-06-12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혼자서 술을 드셨나요?^^

건우와 연우 2006-06-1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핑계김에 와인반병마시고 확 퍼질러 잤습니다.^^
 

뭔가 눈앞에서 번쩍하는것이 지나갔다.

연우: 엄마 번개쳐요.

건우: 엄마, 비도 너무 오면 싫죠?

나: 왜? 올비는 와야지. 그리고 언제라도 올 비는 와..

오늘은 건우가 축구하러가는 날이다.

여태 신던 축구화가 너무 딱 맞아서 좀 넉넉한 사이즈로 새축구화를 사주었더니 아침내내 집안에서 축구화를 신고 겅중거린다. 안그래도 축구라면 자다가도 벌떡깨는 아이가 새신까지 신으니 마음은 벌써 운동장을 가로 지르는 모양이다.

 이미 예고된 날씨건만 건우는 컴컴한 하늘이 영 못마땅한 모양이다. 그래서 자꾸 묻는다.

건우: 엄마 적당히 내리는 비 말구요, 이렇게 자주 내리는 비는 싫지요?

뭐 며칠이나 내렸다구, 어제 오늘 내린비야 장마의 예고에 불과한걸. 건우에게 줄줄이 설명을 하려다 말고그냥 씩 웃었다. 녀석은 설명이 필요한게 아니리라.

그래 싫다 싫어 네가 싫어하는 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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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6-10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건우가 참 축구를 좋아하네요?/
울 아들도 활동적으로 축구나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로 잘 자라주길 바랬건만은 운동을 너무 싫어 해서 운동 잘하고 좋아하는 아이들 보면 너무 부럽답니다.
새 축구화 신고서 맘껏 뛰어보고 싶었을텐데 비가 와서 건우가 속상했겠어요..
여긴 종일 비가 찔끔질끔 내리다가 오후에 번개까지 치며 엄청나게 내리더라구요..
이제 정말 장마시작인가 봐요..
번개치며 내리니 너무 무서워서 꺄악~!두녀석도 호들갑을 떨며 한참을 아파트 들썩 거리게 하더니 이젠 얌전해 졌어요..ㅎㅎ
건우가 쉬는 날은 비도 안오고 축구하기 좋은 날 되길..

건우! 연우! 이름들이 부를수록 참 이뻐요..&^^&

건우와 연우 2006-06-10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여기도 좀전까지 번쩍번쩍했어요. 건우는 비가와서 실내체육관에서 축구를 하고 왔지요. 운동장에서 하는걸 더 좋아하긴하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나봐요. 비가오니 선선하죠? 감기조심하세요.^^

로드무비 2006-06-1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가 축구를 좋아하는군요.
책장수님은 우리 동네 조기축구회 열성회원이랍니다.
언젠가는 게임하다가 이도 한 대 다쳐서 들어오고 난리도 아니랍니다.
월드컵에 거는 건우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어요.^^

건우와 연우 2006-06-1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팀 누가 첫골넣나가 친구들과 하는 내기의 주내용이구요, 각국의 주전스트라이커를 어느틈에 줄줄 꿰고 있더라니까요.^^

모1 2006-06-2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라는 제목을보면서 순간..건우와 연우님도 물만두님처럼 비 팬이구나..했어요. 가수 비요..후후..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다른 내용이네요. 하하..

건우와 연우 2006-06-27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 저도 비좋아해요. 매력있잖아요.
잘생긴 남자앞에서 늘 흐믓..^^
 

노조임원들이 왔다.

지난번 노조선거에서 나는 반대쪽이었다.

그건 모두에게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선거기간 내내 모두에게 활짝 웃으며 격려와 안부를 보냈다. 그리고 모든 후보에게 지지의 인사를 날리곤 했다.

사람들은 내가 지지하는 쪽을 피곤해했고, 경영진은 과거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집요했다.

선거는 예상대로 무참히 깨졌다.

당선인사를 다니는 그들에게 활짝 축하하며 인사를 했었다.

그리고 계속 황당한 일을 하는 그들을 보며 속이 썩지만 오늘도 신뢰를 듬뿍 담아 인사했다.

....

음, 조만간 나도 노회한 40대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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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6-08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접대용 페이스를 너무 남발하면 그게 굳어져 버리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더라구요...^^

치유 2006-06-08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건우와 연우 2006-06-0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네. 안그래도 그게 고민이랍니다.^^
배꽃님/^^ 잘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