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오후, 집에 오는길에 땀이 끈끈한 얼굴로 짜증이 묻어있는 연우가 예사롭지 않다.

 

나: 연우야, 유치원에서 무슨일이 있었니?

연우: 엄마, 나는 참을수가 없어요.

나: 뭘 못참는데?

연우: 엄마, 오늘 *규가 자꾸 나를 놀리고 말도 안돼는 억지를 부리잖아요....

나: 그래서?

연우: 너무 화가 나서 제가 *규한테 바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규가 <바보라고 하는 사람이 바보> 이러면서 저를 놀리는 거예요..

 나: 우리딸 짜증났었겠네...

연우: 근데 더 중요한것은요. 바보라고 한 사람이 어떻게 바보인가요?  엄마가 저를 연우야하고 부른다고해서 엄마가 제가 되지는 않잖아요.  그리고 *규엄마가 *규야 하고 부른다고해서 걔네엄마가 *규가 되지는 않잖아요.

나: 그래서?

연우: 그러니까 제 말은요. 제가 *규한테 바보라고 했다해도 제가 바보는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요, *규가 그걸 모르고 자꾸 저한테 <바보라고 한 사람이 바보>라고 하고 도망가는 거예요...

 

놀리고 도망가는 사내아이와 뒤에서 쫓아가며 씩씩거리고 설명했을 연우를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하였다. 슬며시 연우의 손을 쥐어보니 아직도 채 열이 식지 않았다.

 

나: 연우야 <바보라고 하는 사람이 바보> 이런 말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남에게 함부로 욕을 하지 말라고 타이르는 말인데 내 생각에도 네 말처럼 바보라고 욕한사람이 바보라고 생각하진 않아. 하지만 친구에게 바보라고 하는건 잘한 일은 아닌것 같은데...

연우: 그래도 걔가 먼저 절 많이 놀렸다구요...

나: 그래? 엄마는 화를 너무 참아서 나중에 네 마음속에서 참을수 없는 상태가 되는것보단 그자리에서 적당히 푸는게 좋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너무 심한 욕을 하는건 네가 미워보일수도 있으니까 연우가 알아서 조금만 해. 안하면 더 좋겠지만...

연우: 네.... 그런데요, 바보라고 한 사람이 바보인건 아니지요?

나: 그래. 근데 그건 여러가지 해줄 이야기가 많은데 좀 어려워서... 우리, 좀더 공부를 하고 얘기하자. 엄마가 좀더 쉽게 설명해줄수 있으면 얘기해줄께.. 하지만 엄마는 네생각을 지지해...

 

연우의 인생에서 나는, 언제나 이해하기쉬운 지침서이고 싶다.

그러나 그게 언제까지일까.  아이는 자라고, 나는 늙어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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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9-0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우는...꼬마 철학자...^^

물만두 2006-09-07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방 옵니다. 언제 컷나 싶게 우리도 그리 컷잖아요. 그나저나 저 연우팬할래요^^

비자림 2006-09-07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정말 연우는 꼬마철학자에요. 어떻게 키우면 꼬마철학자가 탄생하나요? 그 비법을 좀..ㅋㅋ 우리집 아이들은 꼬마먹보나 꼬마 축구마니아는 된 것 같은데. ㅎㅎ

반딧불,, 2006-09-07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드셨삼. 어쨌든 연우 대단합니다. 그 논리정연한 머릿속이 궁금합니다.

건우와 연우 2006-09-0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라기보단, 엉뚱한 추리꾼에 가까워요...^^ 가끔 기특한 소릴 한마디씩만 하는...^^
숨어계신님/ 무얼 그리 숨어계실것까지야...^^ 제서재는 오시는분만 오신다구요...^^님의 서재엔 이미 마니아가 형성돼서....^^ 연우한테 님이 어머니한테 느끼시는 감정을 기대한다면 과욕일까요...^^엉뚱한 탐정딸 엄마^^
물만두님/ 아마도요. 금방금방 자라겠죠, 아이들은...만두님 그럼 양가에 팬레터가 왕래하게되나요..^^
비자림님/ 남자아이들은 대부분은 축구광이죠...^^ 축구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요...^^ 참고로 건우가 축구광이랍니다..^^
반딧불님/ 저는 그렇게 퍼즐이랑 성을 맞추는 노랑이랑 파랑이가 궁금해요...^^

기인 2006-09-07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사랑스러운 연우 :)

씩씩하니 2006-09-07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연우님..혹시 제가 이 글에다 남긴 댓글,,,못보셨어요...
어제 분명히 댓글 남겼는대...없어졌어요...어찌 된 일이지???

또또유스또 2006-09-0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도 울 엄마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답니다...
울 엄마이기때문에 저에게 주실수 있는 것들...
사랑아닐까요?
엄마의 사랑이 세월이 흐른다고 변함이 없듯이 님과 연우 사이도 세월의 흐름따위와는 무관하겠지요...
저도 님처럼 우리 아들에게 세상을 사는 가장 쉬운 지침서가 되었으면 해요 ^^

건우와 연우 2006-09-07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잉 @,@ 씩씩하니님/ 도둑이 들었어요, 댓글 훔쳐가는 도둑이요!!
이런...그러고보니 이건 오늘 올린 페펀데요...^^
기인님/ 발칙한 꼬맹이랍니다...^^

건우와 연우 2006-09-0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또님/ 건강하시지요? 일교차가 심한데 혹 감기라도 앓으시는건 아닌가 좀 걱정했어요...^^
님이라면 분명 좋은 친구에 즐거운 지침서가 돼주시겠지요...^^

내이름은김삼순 2006-09-07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는,,,연우가 이리 의젓하고 이쁘고 귀여운 이유는요,,
바로 님이 훌륭한 어머님이시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연우라면 커가면서 스스로 현망하게 깨우칠 듯 합니다,,멋져요~언제 봐도^^

치유 2006-09-07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하게 엄마를 닮았나 봐요...

건우와 연우 2006-09-07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순님, 그리고 배꽃님/ 저는 연우가 서재에서 만나는 다른분들처럼 다정다감하고 씩씩하고 그랬으면 싶은걸요...제가 생각보다 무뚝뚝해요. 삼순님이나 배꽃님같은 분을 만나면 제마음속까지 얼마나 따뜻해지는데요... 연우도 그렇게 봄볕처럼 따사로운 아이였으면한답니다....^^

해리포터7 2006-09-07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우는 님의 거울일게 확실합니다..늘 모녀의 대화를 듣다보면 느끼는 겁니다..저는 반성만 하고 갑니다...

2006-09-07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9-08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대말을 꼬박꼬박하는 게 더 예쁘고 부러워요.
이제 와서 후회해도......=3=3=3

건우와 연우 2006-09-0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애들을 너무 잡았던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주하의 적당히 거침없는 터프함과 예리함이 좋은걸요. 어린아인데도 그 당당함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요...

건우와 연우 2006-09-08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어계신님/ 저는 그 꽃미남 눈웃음에 반했다니까요...^^ 그 미남은 자분자분 대화가 통하게 생겼더만요....^^
해리포터님/ 제 거울이면 안된답니다. 가끔 친절하지만 자주 무서운 마녀랍니다...^^

춤추는인생. 2006-09-08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회가 된다면 연우의 그 조막만한손을 한번 꼬옥 잡아주고 싶어요.^^

건우와 연우 2006-09-11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기회가 된다면 꼭 잡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