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
김재웅 지음 / 푸른역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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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자료들을 읽고 정리한 노고가 보인다. 50년대 동유럽 봉기와 중소분쟁이 김일성이 반대파를 숙청할 수 있었다는. 한반도를 좌우하는건 외부동향이라는 것. 북에도 아까운 인재들이 있는데 김일성의 이이제이 전략으로 무너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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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사원 갈등을 취재해 단편 영화를 만들었던 경북대 학생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사원에 대해 듣고 싶어 왔다는 그에게 어쩌다 관심을 갖게 됐냐고 묻자 해 준 이야기다. 경북대 편입생인 그는 어느 날 자취하는 골목에 걸린 혐오표현 현수막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어떻게 저런 게 버젓이 걸려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나자 그 현수막 앞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니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자 카메라를 들었다. 혐오가 나쁜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문제는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내 일이 아닐 때는 쉽게 참아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배타적이고 위계적인 집 만들기, 텃세 부리기도 어느 순간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혐오가 집이 되어 버리기 전에 상호 공존과 이해의 집을 만들어 가는, 우리 안 국경을 허무는 실천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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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어가 머리의 일만이 아닌 경험과 감각이 필요한 시간의 일이라는 사실은, 노력해도 당장 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에서 위로가 되지만, 한편으로 절망이기도 하다. 끝이 어디인지 모른 채 오랜 시간 지속해서 끊임없이 반복하는 일은, 말이 쉽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러니 우리는 알면서도 자꾸 욕심을 내는 것이다. 그래도 조금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목표에 다다를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서.

그러고 보면 외국어 공부란, 신화 속 형벌 같다. 바위가 다시 그 무게의 속도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바위를 산꼭대기에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 같은 것. 외국어를 배우는 일에 완성이 어디 있는가. 나는 프랑스어의 세계에서 20여 년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완성됐다고 말할 수 없고, 그런 날은 절대로 오지 않으리란 걸 안다. 외국어란 산 정상 위에 머무르지 않는 바위와 같이 완전한 단계가 없다. 그러니 외국어 공부의 진짜 고통은 그 끝없음의 허무와 싸우는데 있다.
알베르 카뮈는 에세이 《시지프 신화Le Mythe de Sisyphe》에서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을 인간 삶의 부조리에 빗대며, 우리 삶이 헛되고 의미 없는 것이라도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받아들이면서 그 과정을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문장으로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고 썼다.
여기에 빗대어 본다면, 외국어 공부도 매 과정에서 희열을 느껴야만 의미가 생기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다를 수 없을지라도 그 자체로 마음을 충족시켜야 하는 일. 언젠가 소멸할 것을 알면서도 일상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우리 삶이 다 그렇듯이 말이다.
― 곽미성,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어떤책2023, 100~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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