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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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로 읽는 김언수의 장편소설이다. 

 

구암(狗巖)의 건달들은 아무도 양복을 입지 않는다.
부산이라는 이 세계적인 항구 도시에는 부두에 쌓인 컨테이너 숫자만큼이나 건달이 즐비 하고, 건달들은 개나 소나 양복을 입는다. 알다시피 건달이란 인간들은 처자식 밥은 굶겨도 자기 양복은 빳빳하게 다려 입고, 점심값이 없어 하루종일 밥을 쫄쫄 굶을지언정 구두 닦을 돈은 남겨두는 한심한 족속이니까.

서두가 강렬하다.

맛깔나는 문장은 여전하고 이번에는 구성이 탄탄했다.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면 어떤 배우가 출연할까를 상상할 정도로 영화같은 소설이었고 500페이지 넘는 책을 순식간에 읽을 정도로 흡입렸이 있다. 

구암은 없는 지역이라고 하지만 시대 배경은 노태우 정권 정도로 추측해본다.  소설에서는 건달 세계를 쓰고 있지만 조폭에 대한 환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의리도, 친구도 없고 현재의 이득을 위해서 이합집산을 하는 존재들이다. 이 점이 흔한 조폭 영화들과는 다른 장면이다.  

데뷔작인 <트렁크> 작가 인터뷰에서 저자의 성장환경을 알게 됐는데 앞으로는 이번 책 처럼 고향에 뿌리를 둔 책을 냈으면 한다.

국제시장이 있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성장사를 이해했고 항구에는 낭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밀수와 이를 둘러싼 다툼이 있다는 걸 흥미있게 읽었다. 

김언수 작가의 작가 후기는 언제나 소설 못지않게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람들은 이제 뜨겁지 않다. 뜨거운 것들은 모두 미숙하고 촌스럽고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죄목으로 촌충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구암의 그 지리멸렬한 삶이 그리워진다. 구암의 시절엔 짜증나고, 애증하고, 발끈해서 술판을 뒤집었지만 적어도 이토록 외롭지는 않았다.
이 밤에 혼자 소주병을 따며 나는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을 건넬 방법을 떠올려본다. 상처를 받지 않고 사랑을 받을 방법을 떠올려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든다. 그런 삶은 없다. 모든 좋은 것은 나쁜 것과 버무려져 있다. 문을 닫으면 악취가 들어오지 않지만, 꽃향기도 들어오지 못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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