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사 편력 1 - 고대에서 근대까지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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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라는 틀 속에 갇혀 현재라는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 선인들의 삶 속에서 다양성을 접하고 포용력을 기르면서 인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이 역사학이다.

 

존 로버트 실리는 ‘역사는 과거의 정치고, 정치는 현재의 역사다.’ 라고 말했다.

 

역사책을 읽고 공감받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가 과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경험이나 기억이 담긴 삶하고 연결되야 한다.  넘치는 책이나 인터넷으로 정보는 쉽게 찾는 세상이다.  “난 이걸 이렇게 봤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속에는 선악을 따지지 말고, 사람과 공간과 시대라는 수많은 가지로 연결되 있는 숲 안에서 나만의 관점으로 역사를 만날 수 있는게 역사책이 던져주는 매력이다.    

 

중세유럽은 이슬람 세계의 아랍어를 번역하면서 서유럽 문명은 도약했다. 우리는 어떤가? 대학에서는 영어로 강의하느니 번역을 장려하는 편이 낫다.  번역은 원본을 되씹어서 소화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는 과정이다.  트랜드 따라 서구의 새로운 학설만 들어올 뿐 소화불량에 걸린게 한국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피맛골이 재개발되면서 땅은 존재하지만 세월을 함께 한 우리의 기억은 사라졌다. 추억에 대한 반달리즘이다.  다른 지역에서  제2의 피맛골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원인을 조사하고 피맛골 재개발의 미친 영향을 연구해야 한다. 이러면서 역사물이 쌓이고 후대에 교훈이 된다.  

 

유럽에서 부러운 것이 에라스뮈스 프로그램이다. 유럽내에서 대학을 옮겨 다니면서 강의를 들으면서 다른 관점이 생기고 다른 나라 학생들하고 어울리면 분쟁의 벽은 사라질 것이다.  반면에 EU라는 장벽을 쌓아서 타 대륙 사람들은 오히려 만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해본다.  한국-중국-일본도 이런 노력을 하지만 가장 큰 장벽은 언어다. 아시아인들이 상대방 언어를 배우지 않고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현실은 소통을 어렵게 한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스위스에서 밤기차로 포르투갈로 가는 장면은 비행기로 일본이나 중국을 가는 현실과 비교된다. 

 

소통은 나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알고자 하는 시도다. 타인을 알려면 상대방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이해해야 한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나의 주관이 필요하고 나부터 먼저 알아야 한다. 서양사나 동양사를 공부하는 것도  배울점과 시행착오를 보면서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선 시대 정조 치하의  조선보다는 당시 산업혁명을 겪고 있는 영국이나 시민혁명을 겪은 프랑스를 보는 것이 지금 우리의 문제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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